4화. 황궁 밖 구경

2023. 12. 28. 00:36에르세르 대륙(完)/시작의 장

아침식사를 마친 후, 나는 알카이드에게 산책의 범위에 대해 물었다. 이 세계에 대해 알고 싶은 게 많았다. 
 
[알카이드]
저와 함께라면, 어디든 자유롭게 다니셔도 괜찮습니다. 
 
[나]
알카이드는 쉬지도 못하고 계속 내 곁에 붙어 있어야만 하나요? 
 
알카이드는 부드럽게 웃으며 답했다. 
 
[알카이드]
괘넘지 마십시오. 저는 마법사니까요. 
 
 그 말을 끝으로, 알카이드는 정말로 모습을 감추었다. 내가 편하게 다닐 수 있도록 배려해주어 일부러 나와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 같았다. 황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컸다. 수많은 방과 실내 정원이 존재했고, 사이사이 끝이 보이지 않는 복도는 잠시라도 넋을 놓았다간 미아가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이리저리 유유자적 돌아다니는데, 저편에 인영 하나가 눈에 띄었다. 
 대마법사 카이로스... 나무 아래 지그시 눈을 감고 서 있는 그의 주변에는 작은 새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소름 끼지는 냉혈한에게도 저런 모습이...? 신기해서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어느새 그는 홀연히 사라지고 없었다. 내가 잘못 봤나...?
 그러고 보니, 황궁을 돌아다닌 지 한나절이 다 되어간다. 알카이드는 모습을 나타내고 다가와 신기하게 생긴 과일 두 개를 건네주었다. 
 
[알카이드]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시나요? 
 
[나]
아... 카이로스 대마법사를 본 것 같은데... 아무래도 착각인가 봐요. 
 
[알카이드]
잘못 보신 게 아닐 겁니다. 황궁에 자주 오시니까요. 
 
알카이드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알카이드]
괜찮으시다면, 바깥구경을 하시겠습니까? 
 
[나]
정말요? 너무 좋죠! 
 
 알카이드는 시녀를 부르더니 나를 데리고 바람을 쐬러 황실의 별궁에 가겠다 일렀고, 나는 그를 조용히 따랐다. 황궁을 벗어나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건 황궁 밖으로 나가봤자 내가 도망칠 길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황궁을 나서기 전, 시녀들은 내게 두껍고 무거운 망토를 둘러주었다. 마차의 커튼도 두꺼운 재질인 걸 보니 바깥은 많이 추운 모양이다. 말들에겐 목적지까지 갈 수 있도록 마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내비게이션 같은 건가? 
 
[알카이드]
여긴 황성의 중양광장입니다. 황성에서 가장 떠들썩한 곳이었죠. 축제 시기엔 모두 이 광장에 모입니다. 
 
 황궁을 벗어나는 순간 신기하게도 싸락눈이 흩날렸다. 순간적으로 계절이 바뀐 느낌. 마법사 몇 명이 분수대에 마법을 걸고 있었다. 축제 분위기는 아직 느껴지지 않는데. 30분 정도 지났을까, 급격히 기온이 떨어졌다. 기온 변화가 이 정도로 심하다니 뭔가 좀 이상했다. 
 창밖의 눈발은 점점 굵어졌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마차를 바라보는 행인들의 시선에서 경계심과 적의가 느껴졌다.
 알카이드가 갑자기 마차를 세우더니 지나가던 행인을 불렀다. 
 
[알카이드]
이곳의 당직 마법사는 어디 있습니까? 
 
[평민 남자]
마, 마법사요..? 
 
[나]
무슨 일이죠, 알카이드? 
 
알카이드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알카이드]
마탑의 인력 부족 탓이죠. 최근 마법사들이 황성 중양광장으로 집중 투입되다 보니 여긴 순위가 밀린 것 같습니다. 
 
[나]
(마법사라는 게 순찰도 하고, 인력난도 있는 직업이었구나...) 
 
알카이드는 별일 아니라는 듯 내게 미소를 지어 보이고 다시 마차를 출발시켰다. 마차가 대로에서 한 골목길로 들어서던 때였다. 안쪽에서 잔뜩 공포에 질린 외침이 터져나왔다. 
 
[도망치는 빈민]
얼음 나비다! 도망쳐! 
 
사람들이 혼비백산해 달려 나왔다. 그들이 도망쳐 온 방향에선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시무시한 한기가 느껴졌다. 그 기괴한 한기는 도망치던 사람들을 순식간에 덮쳐버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살아 움직이던 사람들은 즉시 끔찍한 얼음덩어리가 되었고, 딛고 있던 땅까지 공공 얼어붙었다. 믿을 수 없는 참사를 일으킨 정체는 겨우 나비, 그것도 고작 몇 마리뿐이었다. 
 반짝이는 날개의 나비들은 무고한 사람들을 몰살시킨 주제에 아름답기까지했다. 
 알카이드는 차분히 몸을 일으켰다. 

[알카이드]
여기서 잠시 기다려주세요. 
 
 마차에서 내린 그는 주저하지 않고 나비들에게로 향했다. 그의 침착한 태도에서 알 수 있었다. 이런 일은 일상이란 것을.
 한 빛이 알카이드에게로 모여들었다. 하나로 모은 금색 및줄기를 나비들에게로 쏘자 빛에 닿은 나비들은 고통스럽게 날갯짓하다 가루가 되어버렸다. 고위 마법사라던 알카이드는 과연 공포의 대상인 괴생명체 나비들을 너무도 쉽게 처리했다. 그런데, 얼음 나비를 피해 달아나던 이들 중 몇몇의 움직임이 수상했다. 그들은 돌연 방향을 돌려 알카이드가 있는 쪽으로 달려들었다. 얼음 나비를 처리하곤 있는 틈을 노려 알카이드를 습격하려는 게 분명했다.

[나]
알카이드! 조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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