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포대

2024. 6. 18. 22:50다음 역, 에덴/사냥매 (카이로스)

 우린 간신히 승리를 거뒀다. 임계 상태에 이른 카이로스의 힘과 속도는 평범한 사 람의 것이 아니었다. 비장의 일격에 알카이드가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알카이드]

너, 너희가 감히...! 

 

[카이로스]

에덴의 지배권을 내려놔. 

 

[알카이드]

원하는 게 겨우 그것인가요? 정말이지... 우습군요. 난 그저 에덴을 존속시기고 싶었을 뿐이에요... 방문자 중에서 적합한 상대를 찾으려 했는데, 당신들은 황당한 짓만 벌이더군요.

 

[나]

존속?

 

[알카이드]

두 사람이 이겼으니 이곳을 드리죠. 저의 에덴, 이 기생 세계는 그대로 유지될 수 있을 테니...

 

[나]

'기생'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죠? 

 

[알카이드]

세계는 오직 또 다른 세계와 맞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면 무슨 뜻인지 알겠죠. 이곳의 모든 건 모래에 뒤덮인 지 오래예요. 전 힘과 재앙을 함께 가져왔어요. 하지만 힘이 부족했죠... 영원히 더 많은 힘을 필요로 할 테고, 그렇게... 그렇게 계속될 거예요. 시간이... 얼마 없어요... 정말... 이젠 지졌어요. 방문자 3-0-7, 방문자 3-0-1. ...행운을 빌어요. 

 

 저 멀리 아득한 곳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의 알카이드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 순간, 그의 옷자락이 조각조각 흩어지기 시작했고, 이내 알카이드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난 카이로스를 쳐다봤다.

 

[나]

​카이로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는 차분하게 카이로스를 바라보며 해결책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에덴과 나의 고향이 정반대로 마주하고 있다면... 카이로스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하지만 카이로스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무언가에 맞서기라도 하는 듯 아무런 대답도 들려주지 않았다. 갑자기 눈을 감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카이로스]

내 이름은 카이로스. 그린 아일랜드는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1132번 지하 셀터. 사 막에서 본 능력자를 오해했으니 도와쥐야 한다...

 

 너무도 작은 목소리... 하지만 극심한 고통에 괴로워하면서도, 얼마 남지 않은 기억 을 더는 뺏기지 않으려는 듯 애쓰고 있었다. 

 

[카이로스]

울기만 하고 싸울 줄 모르는 미끼는 짐이 될 뿐. 나는 사냥매... 그 능력자의 이름은 ... 내 친구..

 

[나]

카이로스?

 

[카이로스]

건드리지 마! 

 

 평소와는 다른 목소리, 불안하게 빛나는 황금빛 눈동자. 하지만 그 모든 건 순식간 에 사라졌다. 

 

[카이로스]

그래... 기억나. 나는 카이로스, 내 앞에 있는 사람은...

 

 카이로스에게 힘을 북돋아 주고 싶은 마음에 그에게 다가가 어깨를 살짝 끌어안았 다. 

 

[나]

맞아요. 그건 바로 카이로스의 옆에 있는 내 이름이에요. 우린 줄곧 함께했어요.... 당신은 잊지 않을 거예요. 

 

 카이로스는 불안정한 상태로 옆에 있는 유리로 된 방에 들어가 혼자 머물렀다. 그리고 나에게 펄스 캐논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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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방법을 찾으면 찾을수록 더욱 어려위져만 갔다. 중앙 관리실의 장치는 에덴 외부의 기술보다 훨씬 복잡했다. 그리고 알카이드의 행동을 미류빴을 때, 그와 관런된 다른 영향이 있는 것 같다. 30분도 남지 않았다. 카운트다운다운이 다 끝나면 펄스 캐논은 곧 발사할 것이다. 목표는...

 

지구.

나의 고향 지구

우린 시간이 없다.

 

 나는 반드시 나의 고향 지구를 지길 것이다. 하지만 에너지가 없으면, 에덴은 멸망하고 만다. 나는 목표를 다른 세계로 바꿀 수도 있다. 에덴의 주인 알카이드가 말했던 것처럼 어느 한 세계의 희생으로 이 세계를 존속 시키는 것.

 목표를 바꾸는 방법까지도 찾아냈다. 지구를 대신한 그 세계는 괴물들만 사는 세계였다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세계가 또 다른 희생양이 될 수 있었다.

 모든 건 나의 손에 달려 있다. 마치 양팔저울에 엄청 무거운 추가 달려 있는 듯한 느낌이다... 카운트다운은 계속 나를 재촉한다. 째깍, 째깍. 

온기가 느껴지는 손이 나의 어깨를 잡는다. 고개를 돌리니 카이로스의 안정을 되찾은 눈이 보인다. 

 

[카이로스]

이러지 마.

 

[나]

카이로스, 몸은 좀 어때요? 

 

 카이로스는 씁쓸한 웃음을 지을 뿐, 내 질문에 똑바로 대답하지는 않는다. 

 

[카이로스]

종종 생각했어. 사람과 방랑자, 그 둘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 너를 기억하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이해할 수 있었지. 잊고 싶지 않다면, 잊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있다는 걸. 능력자에게 주어진 대가가 무엇이든 간에, 언제나 그것을 이길 힘은 있기 마련이야. 

 

 카이로스와 나는 손을 맞잡았다. 그에게서 나지는 온기가 위로와 힘이 되지만 한 편으로는 아쉽기도 했다. 

 

[나]

카이로스, 당신이 여기 있는 한 저는 이곳에 희생이 생기는 결정은 하지 않을거에 요. 나는 나의 세계를 지키고 싶지만, 당신의 세계에도 피해를 입히고 싶진 않아요. 훨씬 더 좋은 방법을 찾아내고 싶어요, 어떤 대가도 필요없는.

 

[카이로스]

내가 했던 말 기억나? 대가는 이겨낼 수 있다고. 인간의 노력과 신념은 그 어떤 힘보다 강하지. 엘리샤의 죽음 후 난 알게 되었어. 

 

 카이로스는 카운트다운을 손으로 가리키며, 내게 지시했다. 

 

[카이로스]

저걸 멈추지 않는다면, 너와 나는 에덴의 주인과 다를 바가 없어. 분명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어떻게 할 생각이죠? 만약 에덴의 침략으로 오아시스만을 유지시길 수 있다면, 포 기는 더 나쁜 거 아닐까요? 

 

[카이로스]

이건 포기가 아니야. 우린 그자가 만든 규칙을 따라선 안 돼. 

 

 카이로스는 내 손을 잡은채 나를 바라봤다. 사냥매 그는 사막 최강의 능력자이지만, 최후의 시간을 논할 때에는 냉정하고도 부드러웠다. 

 

[카이로스]

넌 다른 세계의 사람이야... 년 우리를 포기하겠다고 생각한 적 없어. 이건 우리 세계의 일이야. 결국엔 우리가 스스로 짊어져야 할 일이지. 계획이 있어. 그건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카이로스는 내게 그가 생각한 방법을 말해주었다. 그것은 그 혼자 에덴의 사막 밖 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일찍이 사람들은 이 사막에는 끝이 없어서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오늘날의 카이로스는 에덴의 방랑자를 쫓아낼 수 있는, 그 어떤 능력자보다도 뛰어 나다. 이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이다. 십여 년 전 일어난 사건이 이 세상을 폐허로 만들었고, 이제 그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이 폐허 위에 다시 집을 짓는 것이다. 에덴의 힘에 기대는 것은 오히려 포기와 도피일뿐이다. 

 카운트다운은 계속되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카이로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

알겠어요. 저도 함께 할게요. 우리가 함께 내린 결정인 이상 저는 카이로스를 버리지 않을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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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이로스와 나는 카운트다운이 다 끝나기 전에 지구를 목표로 하고 있는 저 기계를 멈추고 파괴 시킬 것이다. 

 

-

 

 나는 카이로스와 함께 천천히 에덴의 변두리까지 걸어왔다. 우리는 지금 에덴 주인의 권한을 가지고 있어서 이곳의 모든 시설을 조작할 수 있다. 

 

[나]

카이로스, 내 고향때문에 당신이 나를 도와주니까, 이제 나도 마땅히 보답해야할 때에요. 

 

 카이로스는 조금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나]

카이로스는 에덴을 재건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으니 나도 도울게요. 최소한 정보통이라도 돼서 일을 좀 분담할게요. 어쩌면 내가 행방불명 된 시간이 길 어질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당신을 도울 수만 있다면 이건 작은 일이에요. 

 

[카이로스]

너무 위험해... 내 말은, 나도 결코 안전하지만은 않아. 많은 것을 잊을 수도 있지만, 즐거운 일들을 생각하려고 노력할 거야. 어머니가 젊은 시절 가시던 카페, 네가 그리던 아름다운 그림... 그리고 고개를 들어 날 바라보던 너의 모습까지도. 

 

 그는 진지하면서도 조심스러웠고, 나는 빙그레 웃으며 그의 말을 이었다. 

 

[나]

그리고 같이 그린 아일랜드에 갔고, 오토바이도 탔었죠. 만약 카이로스가 이 날을 잊어버리면 기억해낼 수 있도록 내가 도울게요. 당신의 기억이 불안정할 때, 내가 돕고 싶어요. 그러니 사냥매는 친구의 도움을 받길 원하죠? 

 

 카이로스의 고글 뒤로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맑고도 단호했다.그는 살짝 아래를 바라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카이로스]

당연하지.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나의 손을 잡았다. 이건 마치 우리가 며칠 동안 함께 전투를 치르고 서로 신뢰했던 시간을 확인하는 것 같기도, 앞으로 우리가 겪을 험난한 앞길을 확인하는 것 같기도 했다. 

 

[카이로스]

내가 하려는 건, 이제껏 그 누구도 해본 적이 없던 일이야. 완전히 실패할 수도, 내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잊어버릴 수도 있는데... 겁나지 않아? 

 

 나는 카이로스 앞으로 다가가 머리를 그의 가슴에 댔다. 그의 가벼운 숨소리를 들은 뒤, 두 팔을 벌려 살짝 그를 안았다. 

 

[나]

무서웠으면 카이로스랑 여기까지 같이 오진 않았겠죠. 나는 당신이 약속을 지킬거라 믿어요. 그리고 나도 여기서 당신이 오기를 기다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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