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에덴으로의 첫 걸음

2023. 12. 25. 00:27다음 역, 에덴/프롤로그

하루하루를 보내며 많은 일을 해냈다. 일단 고양이 녀석의 거처를 마런했다. 떠나게 된다면 녀석을 믿고 맡길 곳이 필요하니까. 그리고 이후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짐을 꾸려야 했다. 지난 여정은 강제로 소환되어 경황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사전준비를 할 계획이다. 지난 며칠 동안 카운트다운이 이따금 눈앞에 나타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내 걱정은 늘어만 갔다. 숫자가  0을 가리키게 될 때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어느 다른 세계가 우리에게 위협이 된다면 내가 막아낼 수 있을까? 혼자만의 힘으로 다른 세계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을까? 막상 이런 생각이 들으니 겁이 났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일을 정말 해야만 할 수 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왠지 그런 기분이 들었다. 소년이 속한 세상이 카운트다운과 함께 우리 세상을 위협하는게 원인일 것 같다는... 아이를 도울 방법이 있다면 카운트다운을 멈추게 할 수 있을까? 아이를 찾아 그 땅이 폐허가 되도록 만든 재앙을 해결할 수 있다면, 모든 게 해결되지 않을까? 

 그날 오후, 난 상점가를 찾아갔다. 모든 것이 엉망으로 변한 상점가는 평소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활기 넘치던 길거리는 썰렁하게 변했고, 문을 닫은 상점 위에는 당장이라도 떨어질 듯 위태롭게 간판이 매달려 있었다. 작업자들은 지진 지역에서 떨어지라는 듯 멀리서 날 향해 손을 저었다. 

 

[소년의 목소리]

...흐윽.

 

아이의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나]

이름이 뭐야?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나는 큰 소리로 아이를 불렀다. 지진 피해가 심각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소년의 목소리가 유난히 또렷히 들린다는 걸 깨달았다. 

 

[소년의 목소리]

누구...?

 

390726

390725

390724...

 

드디어 닿았어...! 누구신지는 몰라도... 제발 도와주요!!

 

[나]

말해, 듣고 있어! 누군지, 어디 있는지 알려주지 않을래? 널 돕고 싶어... 위치를 알려주면 어디에 있든 내가 널 찾아갈게! 

 

진심을 다해 말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소년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목소리를 대신해 눈앞에 숫자가 다시 나타났다.

 

523445

523444

523333..

 

"5차 교정 종료, 목표 확인."

"최종 공격, 에너지 수집 중."

 

소년의 대답을 더는 들을 수 없었지만... 방금 대화에서 흐릿하게나마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건 내비게이션이나 좌표 같았다. 특별한 부름을 통해 소년의 세상에 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그렇다면 도와주러 가야 해. 그런 생각을 갖고 앞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눈 앞의 숫자가 줄어들 때마다 카운트다운이 끝나기 전에 뭔가를 해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품고 아무도 없는 곳을 항해 달려갔다. 전방에서 뻗어 나온 강릴한 힘이 계속해서 날 이끌었다.

 

-

 

여긴... 어디지? 성공한 건가? 주변을 둘러봤지만, 사방에서 날아온 모래에 눈앞이 흐릿했다. 낯선 모래바다였다. 눈에 보이는 곳마다 끝없는 모래언덕이 필쳐져 있었다. 이곳에는 아군도 적도 없었다. 뜨거운 바람과 누런 모래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내가... 맞게 찾아온 걸까? 이곳에선 꿈속의 소년이 있던 세계와 달리 아무런 생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광활한 하늘과 땅, 마치 온 세상이 죽음의 고요 속에 빠진 듯했다. 자신이 속하지 않은 땅에 발을 디딘 이방인은 단 한 사람뿐이었다. 

'다음 역, 에덴 > 프롤로그' 카테고리의 다른 글

2화. 구조 요청  (0) 2023.12.25
1화. 지진  (0) 2023.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