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지진

2023. 12. 25. 00:16다음 역, 에덴/프롤로그

더는 전쟁도, 배고픔도 없기를 바랐다.

 

 

폐허에서 타오르는 거대한 불꽃이 공기가 타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작렬했다. 시커멓고 짙은 연기가 무너진 건물을 뒤덮고, 불길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 

 

[???]

부탁해요... 제발 살려주세요...

 

폐허 가운데서 어린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석처럼 빛나는 소년의 눈동자는 눈물로 뿌옇게 얼룩져 있었다. 버티지 못한 소년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하지만 고개는 끝끝내 떨구지 않았다. 온몸의 힘을 쥐어짜 기도하듯, 소년의 두 손은 가슴 앞에 가지런히 올려져 있었다. 

 

[???]

누구라도 좋으니... 어떤 대가를 원하셔도 좋으니...

 

자신의 부름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지. 소년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절망과 불안이 담긴 소년의 두 눈은 어떤 대답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

집을... 이 세상을... 되찾게 해주세요! 

 

불길은 더욱 맹렬하게 타오르더니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

 

[뉴스 앵커]

던 시티 인근 해역에서 진도 5.2의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진원지는... 상점가는 영업을 중단하고 대피할 것을 권고받았고...

 

수업, 쇼핑, 고양이 밥 쟁겨주기... 내 일상은 늘 그렇듯 별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점점 빈번해지는 지진에 관한 뉴스가 고요한 일상을 무너뜨렸다. 

진구들 사이에서 지진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업을 마친 후, 나는 강의실 입구에서 익숙한 그림자를 발견했다. 

 

[정재한]

상점가에서 필요한 물건이 있는 사람은 여기에다 신청해줘! 

 

[같은 반 여학생]

어... 이렇게 쓰면 되나요...? 

 

[정재한]

그래. 학생회에서 일괄 구매할 예정이야. 이번 주 들어서만 벌써 지진이 세 번이나... 앗, 후배님 왔어?

 

[나]

학생회는 여전히 고생이 많네요.

 

[정재한]

후배님, 나 좀 도와줄 수 있을까? 부탁해, 수량만 체크해주면 돼. 

 

도와주겠다고 대답하려던 순간... 기묘한 소리가 귓가에 파고들었다. 

 

"들리나요?"

 

[나]

누구야? 

 

[정재한]

누구냐니? 

 

정재한에게 고개를 돌려 보니, 그는 난처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정재한]

후배님, 오늘 좀 피곤해 보이네. 안 도와줘도 되니 가서 좀 쉬어. 

 

때마침 다른 학생이 정재한에게 말을 걸어오자, 그는 그 길로 사라져 버렸다. 재한 선배한테는 그 아이의 목소리가 안 들리는 건가... 자리에 혼자 남은 나는, 지금의 고민을 누구한테 이야기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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