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장 1화. 귀향

2024. 2. 20. 01:29이벤트 스토리-2021/사계 사냥터

 
 새벽빛이 하늘에 드리웠을 즈음, 나는 이미 잠에서 깨어 있었다. 열린 장문 사이로 바람과 함께 무언가 날아 들어왔다. 붉은 단풍잎이었다. 나는 그것을 집어 들었다. 벌써 가을인가, 오늘은 카이로스의 사냥 대회를 보러 가는 날이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카이로스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의 태도를 떠올려보면, 그리 적극적으로 참여할 사람이 아니긴 하다... 학교 다닐 때 수업 태도가 불성실한 학생에게 선생님이 어떻게 했더라...
 
-
 
가정 방문. 나는 기억을 더듬어 마탑으로 향했다. 이윽고 근처 단풍나무 아래서 카이로스를 발견했다. 그는 사냥터와는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해 걸 어가고 있었다. 카이로스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나를 발견한 그의 얼굴엔 의아함이 떠올랐다. 그에게 다가간 나는 짐짓 진지한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나]
제가 와서 많이 놀랐나 봐요? 
 
[카이로스]
그런가.
 
[나]
사냥터에 오지 않을 때부터 이런 일이 있을 거라 예상했어야 했는데. 
 
...이상해, 꼭 어딘가 모르게 시나리오가 이상해지는 것 같은데...
 
[나]
어쨌든, 당신이 대회에 참가하는 걸 지켜보는 게 심판으로서의 제 의무예요. 카이로스, 대회를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 하려는 건가요? 
 
카이로스는 집념 어린 내 질문에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카이로스]
처음부터 사냥대회엔 참가할 생각이 없었다. 폐하께서도 허락하셨고. 
 
[나]
윽...
 
허락을 받았다니, 계속 붙잡아 둘 권한도 없지. 
 
[카이로스]
모처럼 고향에 다녀올 생각이야. 
 
 날 바라보는 카이로스는 내 기억 속의 그보다 훨씬 따뜻했다. 현재 상황을 정리하던 나는 불현듯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나]
앗, 그럼 전 실직자가 된 건가요? 
 
카이로스는 내 반응을 예상하지 못한 듯 잠시 당황한 모습이었다. 
 
[나]
됐어요, 저도 휴가를 받은 셈 치죠. 마침 가을은 낮잠 자기 좋을 계절이기도 하잖아요... 어서 가봐요. 
 
 카이로스는 고개를 끄덕인 뒤, 멍하니 제자리에 서 있는 나를 뒤로한 재 저 멀리 걸어가 버렸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머뭇거리며 내게 돌아왔다.
 
[카이로스]
이 계절에 특히 아름다운 곳이지. 함께 가겠나? 
 
날씨도 좋으니 꽤 괜찮은 여행이 될 것 같은데...? 
 
[나]
좋아요.
 
 황성을 나서고 초가을 바람이 두 뺨에 닿자 나는 비로소 현 상황을 깨달았다. 카이로스가 나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잖아?! 
 
-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건 노란 빛깔로 물든 교외의 숲뿐이었다... 후회해도 이미 늦은 것 같다. 
 
[카이로스]
갈 길이 제법 멀다. 옷깃을 단단히 여미도록. 
 
가는 길에 카이로스는 종종 이런저런 것들을 귀띔해주었다. 예를 들면... 
 
[카이로스]
들짐승이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니 내게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 게 좋아. 물가는 특히 조심해야 하지. 이끼가 낀 돌은 미끄럽거든. 사냥꾼들이 덫을 놓기도 하니 될 수 있으면 내가 지나온 길을 그대로 따라와. 
 
이런 것들 말이다... 마탑의 대마법사님께서는 어쩐지 오늘따라 상냥했지만, 도통 적응이 되지 않았다. 
 
[나]
무슨 일이 생기든, 카이로스가 해결해줄 수 있잖아요. 카이로스가 있으니, 전혀 걱정 안 돼요. 
 
카이로스는 진지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나]
내 말이 틀렸나요? 
 
카이로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카이로스]
그런가...
 
 적막한 숲속, 새하안 새들은 노란 나뭇가지들을 스치며 맑은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이 고요한 가을 속에서, '꼬르륵'소리가 내 배에서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상황을 파악하려는 듯한 카이로스의 눈동자를 마주 보며,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
저 배고파요, 카이로스. 오늘 처리해야 할 문제 중 하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