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 21. 21:22ㆍ이벤트 스토리-2021/동화이야기
알카이드는 달빛 아래에 서서 평온한 눈빛으로 말간 웃음을 지었다. 방금 내뱉은 말이 지극히 평범한 내용이라도 되는 듯했다.
[로지타]
아니, 잠깐만요. 그런 무서운 결정은 함부로 내리지 말아요!
정원에는 나이팅게일의 노랫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이내 바쵸가 두 손을 맞잡고 알카이드를 응시했다.
[바쵸]
내가 뭐랬어, 좀 이상하다고 했지?
[로지타]
뭐가 이상해? 멀쩡하기만 한데.
[바쵸]
너란 녀석, 역시 얼굴에 약하군.
바쵸의 얼굴에 안타깝다는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바쵸]
아무튼, 내 말은... 저 남자, 아무래도 저주에 걸린 것 같아.
[로지타]
저주?
[바쵸]
동화에서 저주는 흔한 일이지. 〈나이팅게일과 장미〉에 나오는 나이팅게일은 운명의 상대를 만나고, 그녀를 위해 심장의 피로 장미를 빨갛게 물들여. 이른바 운명의 저주지.
[로지타]
네가 마음대로 지어낸 것처럼 들리는데.
[바쵸]
아니거든.
나와 바쵸가 이야기하는 동안, 알카이드는 손을 뻗어 밤이슬이 맺힌 장미 한 송이를 꺾었다. 그리고는 나를 항해 미소 지었다.
[알카이드]
괜찮아요, 당신을 도울 수만 있다면.
밤바람이 불자 황금 장미를 손에 든 알카이드의 머리카락과 귀걸이가 부드럽게 허공에 나부꼈다. 숨죽일 정도로 놀랄 만큼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하지만 '쓰윽' 소리와 함께 반투명의 가시덤불이 갑자기 꽃밭에서 튀어나오더니, 알카이드의 팔을 타고 올라왔다. 그것은 마치 독사처럼 그의 손목을 세게 휘감았다. 저 가시덤불은 장미로 알카이드의 심장을 찌르려 하고 있다. 하지만 알카이드는 저 가시덤불이 원래부터 자신의 일부였다는 듯,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 바쵸가 말한 저주의 존재가 믿어지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동화 속에서 나이팅게일이 피로 장미를 붉게 물들이자, 그의 몸은 점점 차가워지고 생명을 잃어갔다.
[로지타]
알카이드, 멈춰요! 그러다 죽는다고요!
동화 속 나이팅게일의 운명은 저주였다. 내겐 세상을 구하는 일 따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오직 알카이드의 행동을 막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달빛 때문인지, 알카이드의 푸른 눈동자에 금빛이 아른거렸다. 면사포처럼 옅은 밤안개를 사이에 두고, 그는 고개를 숙여 나를 보았다.
[알카이드]
괜찮아요.
가시 덤불에 감긴 그의 손목을 잡아당기자, 손가락 사이로 나지는 통증과 함께 빨간 피가 가시덤불을 타고 떨어졌다. 그러자 가시덤불은 데이기라도 한 것처럼, 알카이드의 손목에서 떨어져 나갔다.
[알카이드]
로지타!!
알카이드는 내 손을 잡아 가만히 그의 손바닥에 올려놓더니, 상처를 살펴보았다. 나는 통증을 참으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에게 물었다.
[로지타]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아요? 아직 이름을 알려주지 않은 것 같은데.
알카이드는 멍하니 고개를 들어 나를 보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알카이드]
잘 모르겠어요. 그냥 원래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알카이드는 다시 고개를 숙여 내 상처를 살폈다. 이내 하안 빛이 그의 손가락 사이에 맺히더니, 내 손끝의 상처로 전해졌다. 샘물 같은 촉감이 내 상처를 감쌌다. 다시 보니 상처는 많이 나아져 있었다.
[알카이드]
아파요?
[로지타]
네.
[알카이드]
미안해요. 곧 괜찮아질 거예요.
알카이드는 내 손끝에 대고 숨을 불어주었다. 그의 숨결은 차가웠지만, 숨결이 닿은 상처는 왠지 모르게 뜨거워졌다.
[로지타]
나한테 사과하지 말아요, 알카이드. 난 이것만으로도 엄청 아픈데, 장미로 심장을 찌른다면 수천 배는 아플 거예요.
알카이드 덕분에 내 상처에 딱지가 앉기 시작했다. 그는 가만히 내 상처를 어루만지며, 흉터에 시선을 고정했다.
[알카이드]
난 고통이 두렵지 않아요. 당신이 붉은 장미를 원한다면, 기꺼이...
알카이드가 말하는 사이, 가시덤불이 다시 그의 손목을 휘감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나는 다급히 그의 말을 끊었다.
[로지타]
내가 아픈 걸 보고 알카이드도 괴로웠죠? 당신이 고통스러워하는 걸 보게 된다면, 나도 그만큼 괴로울 거예요. 알카이드, 내가 괴로웠으면 좋겠어요?
알카이드는 내가 이렇게 말할 줄 몰랐는지, 잠시 멍해졌다. 가시 덤불이 그의 손목을 휘감는 속도가 느려졌다.
[로지타]
내가 붉은 장미를 원하고, 당신이 내 나이팅게일이라면, 절대로 당신이 심장의 피로 장미를 물들이게 두지 않을 거예요.
말이 끝나자, 알카이드의 손목을 휘감은 가시덤불과 그의 손에 있던 장미에 이상한 변화가 일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주춤하던 가시 덤불이 속도를 내기 시작하고, 장미 꽃잎도 흔들리며 떨어지려 했다. 내 말이 알카이드의 삶을 뒤흔든 것 같았다. 조급해진 내가 알카이드의 상대를 물으려 했지만,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알카이드]
어째서죠?
[로지타]
왜냐하면...
알카이드에게 말해줄 수많은 이유가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잠시 후, 나는 알카이드의 눈을 보며 설명도 없이 툭 말을 내뱉었다.
[로지타]
사랑은 그런 게 아니니까요.
우리의 대화처럼 밤바람도 약간은 거칠고 정체되어 있었지만, 가만히 꽃밭을 스치며 그윽한 향기를 풍겼다. 가시 덤불이 움직임을 멈추고, 장미도 조용해졌다. 알카이드는 별처럼 밝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알카이드]
그럼 사랑이 어떤 건지 내게 알려줄래요?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서 반사적으로 눈길을 돌리려던 찰나, 무심코 알카이드의 손에 들린 장미가 변하고 있는 걸 보았다.
[로지타]
알카이드, 이것 좀 봐요.
달빛 아래에 서 있던 알카이드는 고개를 돌려 자신이 손에 쥐고 있는 장미를 바라보았다. 피가 호르른 것처럼 장미가 점점 붉어지고 있었다. 알카이드가 지은 웃음은 달빛보다 부드럽고 별빛보다 눈부셨다.
[알카이드]
이게 당신의 대답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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