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2023. 12. 27. 16:18이벤트 스토리-2023/기나긴 잠언 (3주년)

교정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잘 묶인 풍선이 바람에 살짝 흔들리며 떠들썩한 축제 분위기를 더한다. 나는 길 양 옆에 늘어선 꽃무더기 속에서 재한 선배의 핑크빛 머리를 힘껏 찾고 있다.

 

[정재한]

후배님!!

 

핑크색 머리는 바보털을 흩날리며 힘겹게 사람들을 헤치고 내 눈앞까지 달려와 반갑게 인사를 건낸다.

 

[정재한]

후배님, 정말 와줬구나!!

 

떠올랐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재한 선배의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다. 선배가 30분 전에 어떤 설명도 없이 나에게 “여기로 와줘!” 라며 위치를 알려줬고, 나는 어리둥절했지만 선배가 알려준 장소로 온 게 이렇게 된 것이다.

 

[정재한]

역시 나의 친애하는 후배님이야!! 이 속도, 이 효율, 이 온도와 습도...

 

[나]

본론부터 말해요!

 

선배가 격양된 말투로 사람들의 주의를 끌기 전에 그의 입을 막으며 조용히 하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알겠어!!’라는 눈빛을 보내던 선배는 잠시 좌우를 두리번거리다 아무도 우리를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후, 몸을 숙여 귓속말을 건넸다.

 

[정재한]

다름이 아니라 너를 축제 자원봉사자로 초대하고 싶어서.

 

[나]

하아, 이런 부탁은 편하게 하셔도 되는데, 크게 말하지만 말아주세요...

 

재한선배는 적당한 음량으로, 의기양양하게 나에게 소개했다.

 

[정재한]

후배도 알다시피 셀레인 섬에서는 매년 섬 건립 축제가 열리고있잖아? 원래 살던 사람은 물론 학교의 높으신 분들도 이 축제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말이지. 그래서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있어. 안목이 뛰어난 전임 학생회의 보좌관으로서, 지역사회의 배테랑 자원봉사자로서, 제일 먼저 우수한 후배님을 떠올렸거든.

 

[나]

왜 저에요??

 

[정재한]

왜냐하면 후배님은 똑똑하고 영리해서 못하는 게 없잖아?

 

재한 선배는 기대에 찬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다 고개를 가로짓자 울적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정재한]

실은 내가 맡은 모듈에 일손이 부족해서...

 

나는 정재한의 소개를 따라 앞으로 걸어가 축제의 핵심 구역에 도착했다. 풍선, 아치... …화려한 장식이 눈에 들어온다. 상가에서 1년 중 350일이 홍보행사를 하는 것처럼 셀레인 섬에도 이런 축제가 있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정재한]

후배님, 무슨 문제가 있으면 얼마든지 나에게 물어봐도 돼!

 

[나]

섬 건립 축제에 무슨 사연이 있나요?

 

[정재한]

당연히 있지! 셀레인 섬(주* 원문: 금녕도)의 기원부터 말해야 하겠지? 수백 년 전만 해도 이곳은 무인도였는데, 파도가 바위에 부딪치는 소리가 마치 수금(水琴 주*악기)이 울리는 것 같아 조사하러 온 대신이 복을 빌며 '금녕(琴寧)'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해. 후에 이곳에 정착한 사람이 있고, 그 뒤로 여러 학교가 세워지며...

 

[나]

좀 더 효율적으로 요약할 수 없을까요?

 

[정재한]

이름을 정한 날을 건도일로 여겼는데, 이후 사람들이 명절로 삼아 축제를 진행해온 것거야. 사실 명절의 기원이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축제를 한다'는 마음은 분명 진심이겠지.

 

[동창 A]

바자회 공모전! 희망하는 학생은 저한테 와서 신청하시면 됩니다!

 

[동창 B]

축제 투어와 성배 중 어느 쪽을 먼저 볼지 고민되네~~

 

정신없이 북적거리는 사람들을 구경하기 위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던 중, 선배의 기대하는 눈빛과 마주쳤다.

 

[정재한]

어때? 축제 부스는 대부분 이미 설치되었으니 후배님이 뭔가 할 필요는 없어. 지금 자원 봉사단의 일손이 아직 부족해서, 후배님의 도움이 필요한 간단한 일이 있어. 기념영상 촬영이라든지...

 

[나]

하지만 저는 영상같은 건 찍을 줄 모르는데요?

 

정재한은 신비롭게 손가락을 흔들자, 어디선가 이상한 로봇을 꺼내 내 손에 꼭 쥐어주었다.

 

[정재한]

이 신기한 소품만 있으면 문외한도 영화를 만들 수 있어! 이건 2세대 스마트 칩을 탑재한 촬영 로봇으로, 자동 초점 조정, 스마트 촬영, 손에 들고 있으면 알아서 다 해준다고?

 

정재한의 허풍에 눈사람이— 아니, 로봇의 전원이-- 켜졌다. 모니터의 동그란 눈이 좌우로 잠시 두리번거리더니 곧 분노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로봇]

호칭, 로봇 금지. 저는 결코 사람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로봇이 성깔이 있다니. 호기심에 손가락으로 디스플레이를 두드리고 카메라를 잠시 쥐어보던 나는 고개를 돌려 재한선배에게 물었다.

 

[나]

이 녀석의 사용설명서는 어디에 있나요?

 

[정재한]

어····· 잃어버렸어. ...그런 어이없는 표정 짓지 말라구!! 이 로봇은 매우 똑똑하니깐 조금만 만져도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 수 있으니깐!

 

[더 분노한 로봇]

싫어! 로봇이라는 호칭을 멈춰라!

 

나는 고개를 돌려 로봇에게 물었다.

 

[나]

그럼 뭐라고 불러줄까?

 

로봇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스크린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표정을 띄웠다.

 

[로봇]

저는 이름이 없습니다. [각주:1]

 

[나]

만나서 반가워요, Mi.

 

로봇의 표정이 웃는 표정으로 바뀌자, 그걸 바라보던 재한 선배는 어머니처럼 흐뭇한 눈빛을 보냈다.

 

[정재한]

둘이 이렇게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보니깐 안심이 되네. 촬영 임무는 반드시 순조롭게 완수될 것 같아! 내가 후배님을 위해서 주최 측에 최대한의 편의를 요청해뒀어. Mi 말고도 네가 움직이기 편한 마차도 있으니깐! 마차는 두 사람이 탈 수 있으니, 도우미를 구해서 함께 임무를 완수해도 괜찮아. 업무 외에 바자회 장터같은 상점에 방문해도 돼! 매년 길거리 상점 장식 컨셉을 선정했다고 들었는데, 전문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만큼 볼만한 게 많더라고!

 

[나]

네, 알겠어요. 그나저나 올해의 주제 키워드는 뭐예요??

 

[정재한]

응...... "돌아오는 날을 기약합니다"

  1. 임의의 이름 MI로 설정함.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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