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새장

2024. 6. 27. 19:59다음 역, 에덴/새싹 (예신)

​ 별의 제독의 영상이 사라졌다. 우릴 '도와주겠다'는 말을 실천하려는 건지, 더 이상 그의 기운은 느낄 수 없었다. 

[나]

예신... 어떻게 절 찾은 거예요? 

 

[예신]

​너는 계속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어. 그래서 네 정신의 위치를 추적해 찾아온 거야. 나도 여행자에 속하니까. 그래서 꿈속에서 의식을 가진 상태로 여러 세계를 넘나들 수 있어. 

 

[나]

여기가 어디예요? 이제 어떻게 해야 깨어날 수 있어요? 

 예신이 살짝 고개를 저으며, 여긴 가상의 정신 감옥과도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이런 꿈속은 들어온 영제를 가둘 수 있는 곳으로, 이 정신 감옥에서 벗어나려면 '열쇠'를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곳에서 외부 세계의 힘을 쓸 수 없기 때문에, 고차원 문명의 제독인 예신이라 할지라도 갇힐 수밖에 없다. 

 

[나]

​제가 예신을 끌어들이고 말았네요. 

​ 예신은 보랏빛 눈동자로 날 바라보며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나]

​사과는 일단 문제부터 해결하고 나서 할게요. 그래서 그 '열쇠'라는 게 뭐죠? 어떤 단서가 있나요? 

 

[예신]

정해진 답은 없어. 숨겨진 문일 수도 있고, 폭포 뒤에 있는 동굴 같은 것일 수도 있겠지... 네가 '열쇠를 찾았다는 건, 이미 이곳을 떠났다는 의미야. 

 

[나]

​그럼 열쇠를 찾을 방법이 있나요? 

 

[예신]

딱히 방법은 없어. 하지만 감옥을 떠나기 위해선 확고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 있어. 감옥은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의 의지를 깎아내기 때문이지. 

 나는 예신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난 수차례 시공간을 넘나들고 여러 위험을 겪었지만, 곤경에 빠졌을 때 용기와 의지가 꺾였던 적은 없었다. 이번에도... 잘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내가 이 꿈속에 몇 달을 갇혀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

​ 물속에 있는 동굴도 가봤고, 중앙 관리실도 구석구석 뒤져 봤다. 단서 하나라도 놓칠까, 열쇠가 있을 만한 곳은 여러 번 반복해서 찾아봤다. 

 에덴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졌고, 밖의 사막도 찾아보려고 했다. 그러나 몇 걸음 못 가서 거대한 폭풍을 만나 자욱한 모래 속에서 방향을 잃었고, 결국엔 다시 에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예신은 나와 함께 '열쇠'를 찾기도 했고, 나 혼자 찾게 하기도 했다.

 내가 실망해서 돌아올 때면, 그는 짤막하게 날 위로해주었다. 그러나 실망이 반복되자, 나도 점점 풀이 죽었다. 난 블랙 스트릿의 거처로 돌아왔고, 하루 종일 나가지 않는 날도 있었다.

 영체는 체력을 소모하거나 지치지 않고 음식도 필요치 않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실망하면 무력감이 생겨서, 새로운 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고 바깥 세상을 마주하기 싫어진다. 

​'똑똑똑'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소리였다. 

 

[예신]

먹을 걸 좀 만들어 왔어. 

 문을 열자, 예신이 딸기 토스트를 들고 들어왔다. 그는 현실 세계에서 자주 입던 옷까지 입고 있었다. 

 

[나]

딸기 토스트... 제가 좋아하는 거네요. 하지만 여기서는 배가 고프지 않아요. 

 

[예신]

배가 고프지 않아도 먹을 수 있어. 맛있는 음식은 기분을 좋게 해주지. 

 예신은 딸기 토스트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나에게 장미차를 타 주었다. 은은한 차 향기가 날 어렴풋한 과거로, 예신이 보살펴주던 과거로 되돌아가게 했다. 그땐 곤란한 일이 있을 때마다 예신에게 의지했는데, 예신은 못하는 것이 없어서 어떤 문제도 다 해결해 주었다. 생각하니 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

예신, 제가 너무 큰 폐를 끼쳤어요. 자신의 길을 간다면서 함정에 빠지고, 예신이 날 찾아오게 만들고, 이제는 여기에 갇혀버리게 만들었어요. 

 

[예신]

그런 건 신경 쓰지 마. 여기가 어떤 곳인지 알면서도 이곳에 오기로 결정했던 거니까. 나에게 열쇠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너와 같이 있어주는 것 말고는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온 거야. 

[나]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잖아요...

[예신]

단지 네가 이 감옥에 혼자 있다고 생각하니... 참을 수가 없었어. 

 예신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말실수를 했다고 생각하는 듯했지만, 잠시 후에 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었다. 

 

[예신]

네가 무척 마음이 쓰여. 난... 감옥에 갇히더라도, 혼자보단 둘이 낫다고 생각해. 

 몸을 일으킨 나는 나이프를 들고 토스트를 잘라서 접시 두 개에 나눠 담았다. 

 

[나]

여기요. 둘이 함께 갇혔으니, 음식도 함께 나눠먹어야죠. 

 예신은 웃으며 접시를 받아 들었다. 그는 내 옆에 앉아 토스트를 한입 먹고, 장미차를 한 모금 마셨다. 

 

[예신]

쉬고 싶다면, 오후에 다시 올까? 네가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나, 좋아하는 전시회 이야기를 하자. 

 

[나]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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