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그 사람

2024. 6. 27. 19:58다음 역, 에덴/새싹 (예신)

 에덴에는 아무도 없었다. 난 지하에서 중앙 관리실까지 에덴 전역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사람도 방랑자도 타락자도 없었고, 어디를 가도 날 막는 것이 없었지만, 나가는 출구 역시 찾을 수 없었다.

 영체는 음식이나 휴식을 필요로 하지 않지만, 한 바퀴 돌고 나니 좀 피곤해 겼다. 난 고민 끝에 일단 블랙 스트릿으로 돌아왔다. 거점부터 마련하고 싶었는데, 이곳이 내게 제일 익숙한 곳이었다.

 블랙 스트릿의 버려진 공장 건물 안의 작은 방에 있다보니 조금은 편안해진 것 같다. 이때 별의 제독이 다시 나타났다. 난 경계하며 그를 쳐다봤다. 


[나]

말해요, 절 어떻게 할 생각이죠? 


[별의 제독]

사실 너에겐 더이상 어떤 짓도 할 필요가 없어. 널 이곳에 남겨두면, 그걸로 목적을 이룬 셈이지. 

 

[나]

그게... 무슨 뜻이죠? 


 별의 제독은 담담하게 웃으며, 나의 정신을 정지된 이 작은 세계에 가둘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꿈의 세계는 외부 세계와 단절되어 있지만, 여전히 나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혼자 이곳에서 살더라도, 시간은 흘러 중년이 되고 늙으며 일생을 마치게 될 것이다. 이 세계에서 죽는다면, 정신이 이 꿈과 완전히 융합하여 별의 제독의 힘이 되겠지. 


그럼 절 가만히 내버려 두면 되겠네요. 어차피 도망칠 수도 없으니, 절 지켜볼 필요도 없잖아요? 

 

​[별의 제독]

이론대로라면 그렇겠지. 난 내 목적을 이미 이루었으니, 널 이곳에 그냥 내버려 두면 되겠지. 하지만 어째서일까, 너에게 흥미가 생겼어. 우주가 이만큼이나 발전했는데도, 새로운 여행자가 탄생했다니, 연구할 가치가 있어. 네가 나에게 더 협조해준다면, 우린 새로운 가능성을 창조해낼 수 있을 거야. 너도 우리 운명에 흥미가 있는 것 같은데? 


 별의 제독이 눈빛을 번뜩였지만, 뭔가를 자세히 살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위험을 직감한 나는 뒤로 몇 걸음 물러나 그와 계속 거리를 벌렸다.

 반사적으로 그림 소울을 소환하려 했지만, 이 꿈속에서 내 영체는 그림 소울과 소통 할 수가 없었다... 그림 소울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맥이 빠졌다.

 내가 당황한 걸 그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내가 마음속으로 동요하고 있다는 걸 눈치챈 듯, 별의 제독이 다가와 나를 압박했다... 그런데 그 순간, 한 줄기 빛이 하늘에서 내려와 별의 제독의 환영을 부숴버렸다.

 뜻밖에도 예신이 나타났다. 은백색 제복을 입은 그의 은발이 바람에 휘날렸다. 

 

[나]

예신..

​[예신]

무사해서 다행이야. 

 

 예신은 차가운 얼굴로 아무도 없는 앞쪽을 바라봤다. 

 

[예신]

이 아이는 당신의 임무 대상이 아니야. 

 

 예신은 별의 제독에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예신]

그리고 당신이 원하는 건 지난번에 이미 준 걸로 기억하는데. 

 

 별의 제독의 영상이 다시 허공에 나타났다. 

 

[별의 제독]

하지만 나도 그 세계를 놓아주었어. 우리 문명의 규칙에 따라 난 약속을 지켰다고. 


 그들의 말이 맞다. 예신은 알카이드의 감정을 별의 제독에게 전해주었고, 별의 제독은 에덴 세계의 일에 더 이상 관여하지 않았다.

 

[별의 제독]

그리고 우리 문명은 각자의 임무 이외에 다른 일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지 않지. 이 새로운 여행자가 은백의 제독, 당신의 것이니... 건드리지 말라고 주장하고 싶은 건가? 

​ 여기까지 말한 별의 제독은 한층 더 날카로운 눈빛으로 예신을 바라봤다. 

[예신]

​이 아이는 나의 것이 아니야. 

​ 예신은 조금도 화 내지 않고 차분한 말투로 대답했다. 

 

[예신]

그녀 자신이지. 이 아이는 스스로 선택한 미래를 갖고 있어. 


​ 별의 제독은 눈을 가늘게 뜨고 호기심에 찬 눈으로 나와 예신을 훑어봤다. 

 

[별의 제독]

흥미로운데. 그녀에게 '임무'나 '소유물'이 아닌 그 이상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니... 정말 재미있어. 저 소녀가 당신의 마음에 이렇게까지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 각 못했는데. 

 난 예신을 쳐다봤다. 그는 차분하지만 무거운 표정으로 별의 제독을 마주보고 있었다. 

 

[예신]

이번엔 나와 평화를 유지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군. 

 

[별의 제독]

내가 '동료' 때문에 이런 기회를 놓칠 것 같아? 내가 성공하면 어차피 은백의 제독이 가진 힘을 얻을 수 있을 텐데. 내가 당신을 도와준 셈인가? 저 소녀와 함께 둘 만의 작은 낙원을 가질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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