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2화. 여정

2024. 6. 27. 19:55최후의 혈통/영계의 부름

 어느새 날이 선선해졌다. 벚꽃길을 걸으며 게시판에 새로 붙은 공지를 보러가는 길이었는데... 하마터면 익숙한 저 분홍 머리와 부딪칠 뻔했다. 


[정재한]

좋은 아침이야, 후배님! 짜잔~ 후배님, 이건 날개 돋친 태양의 세인트셀터 크루에서 내놓은 최신 디자인이야!

 

[나]

...티서츠네요? 


 그리고 방금 뭐라고 했더라... '날개 돋친 태양의 세인트셀터 크루'? 

 

[정재한]

후배님, 이 무늬 몰라? 요즘 셀레인섬에서 엄청 유행하는 거잖아! 그 이름은 바로, '날개 돋친 태양'! 


 태양 양쪽에 날개가 달린 문양이었는데 심플하고 적절한 이름이었다. 

 

[정재한]

날개 돋친 태양 굿즈가 세인트셀터에도 들어왔어. 캠퍼스 에이전시를 맡은 내가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고 있지! 어때, 날개 돋친 태양 크루에 가입하고 싶지 않아? 이거 하나만 사면 바로 날개 돋친 태양 크루의 영구 멤버가 될 수 있다고! 


 독특한 기호로 한 단체를 형성하는 건 그리 새로운 마게팅 수법은 아니었다. 재한 선배의 권유를 거절하려는데 머릿속에 영상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정재한]

후배님? 왜 그래? 


 갑자기 떠오른 기억에 순간 두통이 일었다. 결국 정재한의 부스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고,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다. 

 

[정재한]

헉... 날개 돋친 태양을 보고도 가입하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는 게 진짜였나?! 


 마케팅 방식이 너무 기괴한 거 아닌가... 재한 선배에게 내가 괜찮다는 걸 확인시켜준 뒤 강의실 건물로 향한 나는 문득 기시감이 들었다. 이 문양, 본 적이 있다.


-


 페이먼트 섬의 여름 캠프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지도 교수였던 예신은 우리를 데리고 섬의 유적지를 답사했다. 그리고 한 동굴에서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의 시선을 따라간 그곳엔 그 문양이 있었다. 

 며칠 전 셀레인심을 보름가량 떠났다가 돌아온 예신은 페이먼트 섬 관련 사건을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 이세계와 관련 있을지도 모르는 토템 문양이 느닷없이 셀레인섬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나]

좋은 징조는 아닌 것 같아...

 

 급히 강의실 건물로 발걸음을 옮기며, 수업이 끝나면 바로 예신에게 연락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나]

역시 전화 같은 평범한 방법으로는 연락할 수 없는 건가...

 

 요 며칠 바쁘게 오가는 예신의 모습에 이미 익숙해졌다. 그렇다 해도 그에게 연락할 방법은 있었다. 지난번에 헤어질 때, 예신은 '영혼의 거울' 사용법을 가르쳐주었다. 영혼의 거울은 여행자가 서로 다른 세계에서 교류하는 매개였다. 일전에 내가 에덴 세계로 갔을 때 예신이 내게 연락한 것도 이 거울 덕분이었다. 그는 자신이 연락 신호를 받기만 하면 바로 응답할 수 있다고 했다. 

 

[나]

여행자의 힘이 깃든 영혼의 거울로 그를 부르면, 예신이 어디에 있든 연락이 닿겠지? 

 

 나는 연락을 시도했다. 하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꼬박 이를간 나는 영혼의 거울로도 예신에게 연락할 수 없었다. 그의 기운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점점 불안해졌다. 이렇게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잡동사니 더미 속에서 페이먼트 섬 여름 캠프 기념품을 찾아냈다. 

 

[나]

이거야...

 

 찾아낸 것은 유적의 파편 조각들이었다. 여름 캠프 때 나는 등대 옆에 있는 유적지에 흥미를 느꼈다. 누구도 그 유래를 알지 못했다. 그저 그 오랜 역사 위에서 끝없는 가능성만 생각할 뿐이었다. 그것은... 마치 잃어버린 '기이한 풍경'이자, 피난처 계획의 기지 같았다. 물론 이 추측은 정확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당시 나는 호기심 겸 기넘품으로 유적지 옆에서 몇 조각 주위 왔을 뿐이다. 

 

[나]

하지만 이것도 딱히 특별한 건 없는데...


손에 든 것은 그저 평범한 돌멩이일 뿐인데, 마음이 복잡해졌다. 이 돌멩이를 찾아낸 건 순전히 날개 돋친 태양 티셔츠를

보자마자 머릿속에 유적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돌멩이를 내려놓으려던 그 순간, 손이 갑자기 욱신거렸다. 

 

[나]

​...!


 문양 하나가 서서히 떠올랐다... 바로 '날개 돋친 태양'이었다! 

무언가 이 돌을 통해 나를 끌어들이고 있었다. 어떤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예신의 기운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나는 더 큰 공명을 일으기기 위해 돌멩이에 더 힘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기이한 힘이 나를 휘감았다. 곧이어 내 머릿속에 떠오른 예신의 모습이 점점 뚜렷해졌다. 시공을 뛰어넘을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무언가가... 나를 아주 낯선 곳으로 데려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곳은 예신의 기운이 있는 곳이 아니었다! 

 

 벗어나려고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

태초의 혈통.


 누군가 연극의 결말을 감상하듯 가법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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