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접근금지

2023. 12. 25. 15:21캠퍼스 편(完)

그는 마치 얼굴에 '접근금지'라고 써놓은 듯 했다.

 

 

청음관을 벗어나자마자 나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대체 이 학교에 평범한 사람이 있긴 한 거야...? 

 

-

 

음대 건물을 나오자 근처의 작은 광장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아까는 썰렁하더니, 그새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사람들은 무대처럼 보이는 공터를 중심으로 반원형을 이룬 채 서 있었다. 분위기가 다들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좋은 구경에 나도 빠질 수 없지! 나는 명당자리를 잡기 위해 이리저리 자리를 옮겠다. 나처럼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모여든 사람도 꽤 있는 것 같았다. 

 

[남학생 1]

저기, 실례합니다. 여기서 무슨 공연이라도 하나요? 

 

[남학생 2]

오늘은 1년에 딱 한 번, 아인의 무료 공연을 볼 수 있는 날이잖아! 

 

[남학생 1]

아인? 아인이 누군데요? 

 

[???]

신입생, 모르면 가만히 있어.

 

나는 그 말을 한 사람을 돌아보았다. 호리호리한 키에 인형처럼 아름다운 외모. 결코 평범해 보이지 않는 여학생은 도도함을 그림으로 그려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홀린 듯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데, 주변이 소란스러위졌다. 

 

[여학생 1]

까아! 안젤리카 선배님, 안녕하세요! 

 

[여학생 2]

선배님도 이번 별들의 경연에 나가시죠? 저, 선배님을 언제나 응원하고 있어요! 

 

[안젤리카]

그래, 고마워.

 

그 간단한 한마디에, 여학생들의 뺨은 일제히 발그레 달아올랐다.

 

[여학생 1]

선배님도 아인의 공연을 보러 오신 거예요? 

 

선배는 코웃음을 쳤다. 

 

[안젤리카]

무슨 소리야? 별들의 경연에 참여하는 라이벌의 실력을 체크하러 왔지. 사람들 앞에 잘 나타나지도 않고 혼자 틀어박혀서 시종일관...

 

[나]

그럴 바엔 아예 접근금지라고 써서 두르고 다니든지...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 말에 안젤리카 선배는 나를 힐끗거렸다. 내 말에 동의하는 눈치였다. 바로 그때, 기다리던 그가 나타났다.

 

 좌중은 물을 끼얹은 듯 일시에 조용해졌다. 그의 손가락이 무대 위 피아노 건반에 내려앉는가 싶더니 청아한 선율이 광장을 가득 재웠다. 바로 직전 연습실에서 들었던 곡과는 달리, 편안하고도 부드러운 곡조였다. 말소리는 커녕,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이도 지금은 조용히 그의 연주를 감상하고만 있다. 그의 연주는 5월의 미풍과 따스한 햇볕, 그리고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을 바로 이곳으로 데려와준 듯했다. 그의 내면은 어떤 모습일지, 문득 궁금해졌다.

 연주가 끝난 뒤로도 한참이나 여운을 즐기느라, 청중은 침묵에 됨싸여 있었다. 하나둘 박수를 지더니 어느새 우렁찬 박수갈채가 광장을 뒤흔들었다. 여기저기서 목이 터져라 브라보를 외졌다. 연주자에게 있어선 청중의 환호가 최고의 만족이겠지. 아인은 정중하게 인사하고 자리를 떠났다. 이후로도 환호는 한참이나 더 지속되었다.

 좌중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다른 사람이 무대에 올라섰다. 

 

[벤자민]

안녕하십니까. 클래식 연주 동아리 비바체 클럽의 회장, 벤자민입니다. 잠시 동아리 소개를 올리겠습니다.

 

고상한 클래식 동아리에 그렇지 못한 회장인지, 어째 가입 권유가 홈쇼핑 방송에 버금갈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벤자민]

연주 실력을 기우고 싶습니까? 지금 당장 비바체 클럽에 가입하세요! 뜻이 맞는, 좋은 진구들을 사귀고 싶습니까? 지금 당장 비바체 클럽에 가입하세요! 마지막으로, 아인과 함께 무대에 서보고 싶습니까? 지금 바로 비바체 클럽에 가입하세요! 운이 좋으면 아인과 인사를 나눌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 한마디에 한바당 소란이 일었다.

 

[구경꾼]

신청서, 신청서를 주세요! 

 

연미복에서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아인이 나오자, 벤자민은 기다렸다는 듯 그의 뒤에 바싹 따라붙었다. 멀리서 잠시 나와 눈이 마주친 아인은 여전히 무표정이다. 

 

[벤자민]

아인, 오늘도 역시 굉장하더라. 네 덕분에 올해도 가입 신청이 금세 마감됐어. 기념으로 파티하자!

 

[아인]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야. 그리고- 이런 일 시킬거면 돈이나 줘.

 

그는 내 바로 곁을 스쳐 지나가며 똑바로 눈을 마주셨지만, 알은체는 하지 않았다. 

 

우와, 끝까지 사람 무시하네? / 이마에다 '접근금지'라고 씨주고 싶네. 궁서체로. / 자낳괴인 건 비슷하네.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몇 초 뒤, 갑자기 휴대전화가 울렸다. 아인이 보낸 문자를 보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상상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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