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일생의 행복

2024. 2. 17. 23:04에르세르 대륙(完)/아이리스의 장 (로샤)

 내가 황성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월계절 아침이 밝은 뒤였다. 강림 의식은 오늘 거행될 것이다. 아인의 말대로, 거리 곳곳은 반란군이 점령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광경과 마주했다.

 실버나이트가 여기 있었던 것이다. 그는 당당하게 앞장서서 반란군을 지휘하고 있었다. 다소 혼란스러워 생각을 정리하던 때, 그가 더없이 우아하게 손짓했다.그 순간, 그를 따르고 있던 반란군들이 얼어붙었다. 그리고 수많은 얼음 나비떼가 일제히 날아들었다. 중앙광장은 아비규환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서 제 부하들을 마지막 한 명까지 도륙해댈 뿐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

예신!?

 

 예신을 저지하고자 달려 나갔지만, 그는 재빨리 자리를 떠났다. 검은 안개에 휩싸인 변종 일음 나비들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

 

 중양광장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보이는 모든 곳은 서리와 눈, 두꺼운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다. 타고 왔던 말은 도망쳤기에, 나는 얼음 나비를 상대하며 있는 힘껏 달렸다. 예신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았다. 나는 기억을 더듬어 강림 마법진이 있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드디어 마법진이 눈에 들어왔다! 마법진을 지탱하는 핵심 위치에선 심하게 부상당한 마법사들이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법진 심부에, 낮익은 두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 

 

[카이로스]

폐하. 결국은 이리되는군요. 쉬운 길을 두고 어려운 길로 돌아가게 됐습니다. 

 

[로샤]

과정이 어려울수록 성공의 기쁨도 커지지 않겠나. 마지막까지 버터보자고. 

 

 로샤는 여유롭게 농담까지 하며 웃어 보였지만, 지쳐 쓰러지기 직전의 얼굴이었다 

 

[로샤]

없는 사람은 생각지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

 

[나]

로샤! 나 왔어요! 

 

 나는 단상에 올라가 있는 힘껏 로사에게 몸을 던졌다. 그리고 아프도록 그의 품을 파고들었다. 

 

[나]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로샤]

너...! 대제 무슨 짓을! 

 

[나]

당신을 좋아해요. 그래서 돌아왔어요. 당신과 끝까지 함께 하려고요. 당신이 무슨 결정을 내렸든, 난 당신과 끝까지 함께 할 거예요. 

 

 로샤는 기쁨과 슬픔, 회한과 고통 등 온갖 감정이 뒤섞인 눈동자로 멍하니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감상에 흠뻑 젖어 있는 우리와는 달리, 카이로스는 분주해졌다. 그는 무표정하게 주변을 재정비한 후 마법진을 다시 발동시키려 했다. 나는 로샤의 손을 꼭 붙잡았다. 

 

[나]

로샤, 난 당신의 동료이자, 연인이자, 아내예요. 그러니 어디에 있든 당신과 함께 할 거예요. 

 

 폭설은 시시각각 우리 주변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로샤는 촉촉해진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다 부드럽게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로샤]

이런 여인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끝나지 않을 여행을 떠나는 거라고 생각하자. 둘이서 말이야. 

 

 그래. 그렇게 생각하면 두려울 것도 아쉬울 것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넘어야 할 마지막 장애물이 아직 남아 있었다. 

 그 장본인이 마침내 눈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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