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2. 24. 16:44ㆍ이벤트 스토리-2021/심야의 종장
난 영원히 죽지 않는 마녀다. 난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며 백 년에 한 번 볼 수 있는 진귀한 꽃과 열매를 채집하고. 피닉스의 깃털과 용의 숨결을 수집했다.
[나]
...아니야, 이건 아니야.
난 진귀한 보물들이 담긴 상자를 바닥에 던져버렸다. 그러자 알카이드가 다가오더니, 능숙하고 자연스럽게 몸을 굽혀 그것들을 주웠다.
[알카이드]
왜 또 이렇게 화가 났나요?
[나]
다 소용없는 것들이에요.
[알카이드]
왜 소용이 없죠? 로즈메리 잎으로는 머리를 맑게 해주는 약을 만들 수 있어요. 피닉스의 꼬리털은 마법 무기의 마력을 증폭시켜주죠. 그리고...
[나]
하지만 당신의 생명을 연장할 순 없잖아요.
난 그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는 두툼한 수기 노트를 다시 한 장 넘겠다.
[나]
이렇게나 많은 실험을 했는데. 도박을 걸지 않고 당신을 내 결에 있게 할 방법은 하나도 없네요.
알카이드는 인형의 몸일 때보다 생동감 있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알카이드]
인간은 원래 영원히 살 수 없어요.
[나]
하지만 난 당신이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알카이드는 웃으며 내 뺨을 건드렸다. 그의 손끝은 부드러우면서 생생한 온기를 가지고 있었다.
[알카이드]
좋아요 약속할게요. 내가 할 수 있는 한. 언제까지나 당신의 결에 있어 주겠다고.
그것은 나의 집착이고, 욕심이었다. 난 알카이드가 정말로 그 약속을 지키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가 인형의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알카이드]
당신이 적은 기록을 보고. 공부했던 적이. 있어요. 인형의 몸이 되면. 감각의 일부를. 잃게 되죠. 하지만 이런 모습이라면. 언제나. 당신 곁에. 있어 줄 수 있어요.
나에게 가장 친숙하며, 부드럽고 듣기 좋은 그 목소리는 눈에 띄게 어눌해졌다. 난 힘껏 고개를 저었다. 무슨 말이라도 하려고 했지만. 도무지 입을 열 수 없었다. 꿈의 마지막 장이 올랐다. 마지막 순간, 꿈속에는 그의 목소리만이 남았다.
-
언제라도, 당신이 이 곳에 오면... 난 당신을 위해 깨어날 거예요.
꿈에서 깨어나 보니. 주위는 밝고 조용했다. 장원 어디서도 알카이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그 많던 인형들도 자취를 감췄다. 잠시동안 함께 했던 시간들이 마지 꿈인 것 같았다. 그리고 한밤의 아름다운 파티는 꿈의 끝을 알리는 종장 같았다. 이 고요한 적막 속에서 서서히 느껴졌다. 알카이드가 자신을 인형으로 만들어 홀로 이 장원에 남았을 때 느꼈을 쓸쓸함과 고독이... 난 다과회 테이블에서 편지 한 통을 집어 들었다. 은은한 풀잎 향 속에서 알카이드의 고운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불편한 움직임 때문에 오랜 시간 힘들게 적어내렸을 그의 머뭇거림은 물론. 그의 부드러움까지 온전히 담겨 있었다.
<책상 위의 편지>
미안해요. 당신의 수하를 쫒아낸 건, 그에게 다른 사람의 흔적이 있기 떄문이었어요. 그게 당신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까 두려웠거든요. 그리고.. 당신을 독차지하고 싶었떤 내 이기심 때문이기도 해요. 다만, 당신의 곁에 있는 건 내 삶의 이유에요.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아요. 인형의 모습으로 이 장원에 살면서 당신과 함께할 수 있는 영원한 생명으로 맞바꾼 건 오로지 내 선택이었어요. 당신의 걸림돌이나 장애물이 되어서는 안 돼요. 너무도 아쉽지만...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에요. 당신이 해야 할 일을 해요.
모든 일이 끝난 후에 내 잘못을 따져도 늦지 않으니깐요.
[나]
알카이드...
팅 빈 복도에선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옆의 작은 나무상자 안에는 리버스 포션 제조에 필요한 약초들이 가지런히 들어 있었다. 그가 내게 준 선물일 것이다.
-
장원을 나서고 얼마 후, 미오가 나에게 다가왔다.
[미오]
한참 찾아다났잖아요! ...으음? 주인님?
미오의 시선이 내가 가져온 여러 마법약 재료로 향했다. 처음엔 놀란 표정을 짓던 녀석은 이내 존경 어린 표정을 지었다.
[미오]
이 전리품들을 얻으려고 그 인형 옆에 계셨던 거군요! 거긴 정말 알 수 없는 곳이라니까요...
꼬마 괴물의 재잘대는 소리를 들으며 난 고개를 숙였다. 산들바람이 누군가의 탄식 처럼 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
알 수 없는 곳이라고...?
[미오]
그럼요. 그 위험한 곳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위대한 주인님뿐이에요!
난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멀리 그 장원을 바라봤다. 알카이드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마법약을 완성하고 다시 이곳에 오면, 그가 여기서 날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걸 알고 있다. 그때, 난 그에게 말해줄 것이다. 알카이드, 가끔 보면 나에게 당신이라는 사람은...
...참 알기 쉬운 사람이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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