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별의 구원

2024. 1. 5. 22:23에르세르 대륙(完)/별들의 장 (알카이드)

 나는 주저앉아 하염없이 알카이드를 껴안고 있었다. 예상했었다. 저 수많은 별빛을 불러내기 위해 알카이드가 또다시 한계치를 넘는 마력을 소모할 것을. 중간에 분명 폭주의 위기도 찾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나를 지기겠다는 일넘으로 버텼겠지. 

 이제는 내가 알카이드를 지킬 차례다. 절대 그가 마법진에 희생되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다. 마법사와 얼음 나비의 힘의 근원이 같다면, 얼음 나비가 없는 세계엔 마법사도 존재할 수 없겠지?

 알카이드가 잔혹한 운명으로부터 벗어나 마침내 자유로워질 그곳으로, 나는 갈 것이다. 반드시 그를 데리고 가야만 한다. 

 알카이드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의 안색은 무서우리만치 장백했지만, 다행히 온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젖 먹던 힘까지 다해 그를 끌어올렸다. 겨우 한 계단씩이라도 좋았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옮기다 보면 언젠가는 그 끝에 도달할 수 있겠지. 

 

[카이로스]

마법사는 건너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카이로스가 마법진 가운데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

어디로 가던, 저는 그와 함께하고 싶어요.

 

[카이로스]

둘 다 고집스럽고 못 말리는 면이 꼭 닮았군. 서둘러라. 통로가 곧

닫힌다. 

 

 카이로스는 다른 별들보다 훨씬 더 크고 강한 빛을 내는 별 하나를 불러다 내 앞에 내주었다. 알카이드와 나를 가법게 떠받친 별은 곧장 하늘 높은 곳으로 날아 올랐다. 

 

찬란한 별들로 가득한 하늘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이것은 알카이드가 나,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해 만들어준 기적.

 

별은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데려다줄 거예요.

 

-

 

 정신을 자리고 가장 먼저 알아차린 변화는 바로 공기의 따스함이었다. 매미 소리와 새소리가 지척에서 들렸다. 눈을 몇 번 깜박이자 시야가 선명해졌다. 

 얼마 만에 보는 초록빛 숲인지. 사방에 생명력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에르세르 사람들이 그토록 기다려온 봄날. 새로운 세계가 마침내 열린 것이다. 

 

[나]

......알...카이드? 알카이드! 어디 있어요, 알카이드! 

 

정신을 잃기 직전까지, 나는 그를 단 한 순간도 놓친 적 없었다. 서, 설마... 못 온건 아니겠지•••? 알카이드! 안돼! 미친 듯 주변을 뛰어다니며 소리 지르자, 저 멀리 수풀 사이에서 누군가가 상체를 일으키며 앉았다. 알카이드였다! 시야가 좀처럼 돌아오질 않는지, 그는 연방 눈을 깜빡였다. 

 

[알카이드]

당신인가요? ...괜찮아요? 

 

나는 알카이드를 항해 온몸을 던졌다. 그는 몽롱한 와중에도 두 팔을 뻗어 나를 받아주었다. 

 

[나]

알카이드! 알카이드, 흐흑...! 

 

그를 꼭 껴안자,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

알카이드의 별 덕분에 살았어요. 

 

[알카이드]

아니에요. 당신의 소원이 나를 살린 거죠. 지켜줘서, 함께해줘서 고마워요. 

 

알카이드는 자신이 왜 다른 마법사들과 다르게 살아 이곳에 도달했는지 간단히 말해줬다. 그는 별의 계단을 부르며 모든 마력을 다 써버렸고, 결국 얼음나비가 될 마력까지 전부 소진되어 평범한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렇게 마력을 쓰며 힘을 잃어가는 와중, 내가 그의 손을 놓지 않았기에 그 역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끝까지 버텼다고 했다.

 

[알카이드]

그 말, 들었습니다. 

 

[나]

무슨 말이요? 

 

[알카이드]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말이요. 그래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나도 필사적으로 버텼어요. 새로운 세상에서 우리, 오래오래 함께 같은 길을 걸어요. 

 

우리는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한 새로운 세상을 돌아다니며 질리도록 구경했다. 따뜻한 이곳에 부족한 것 이라곤 없어 보였다. 나무에는 각양각색의 과일과 열매들이 맺혀 있어, 언제든 배를 채울 수도 있었다.

 걱정거리가 사라져서 그런지, 생각이 깊어졌다. 이번 여정은 결코 성공적이라 할 순 없었다. 강한 힘에 번번이 가로막혔고, 근본적인 문제에는 끝내 접근하지도 못했다. 이번에도 도망치는 게 고작이라니. 조금 씁쓸하기도 했다. 

 

[알카이드]

잠시 쉬었다 가죠.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요? 

 

[나]

로샤, 그리고 당신의 스승님과 동료 마법사들은 결국 구하지 못했네요... 당신과 나의 세계를 구하겠다고 큰소리만 쳤을 뿐,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요. 

 

그러고 보니 이젠 내 세계로 돌아갈 방법도 없다. 그저, 마음속으로 그곳이 평안하기만을 빌 뿐. 알카이드는 내 손을 잡고 담담하게 말했다. 

 

[알카이드]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알카이드의 손은 유난히도 따스하게 느껴졌다. 

 

[알카이드]

당신은 해냈어요. 당신이 자책한다면, 당신이 애쓰고 구해낸 사람들은 뭐가 되나요? 

 

알카이드는 나를 이끌고 나무 그늘로 갔다. 자리를 잡고 앉은 그는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알카이드]

처음 당신을 봤을 맨, 그저 가없은 사람이구나 하고 동정하는 마음뿐이었어요. 

 

잠시 숨을 고른 그는 말을 이었다. 

 

[알카이드]

하지만 내 생각이 틀렸더군요. 당신은 언제나 방법을 찾고,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는, 아주 강한 사람이었죠. 그때부터였어요. 당신과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건. 

 

[나]

그랬군요...

 

[알카이드]

제가 할 수만 있다면, 당신을 지켜주고 싶었어요. 혹여 실패한다 하더라도 당신과 함께라면 어떤 결말이든 제가 책임질 각오로요.

 

그가 별안간 내 시선을 피하며 얼굴을 붉혔다. 

 

[알카이드]

그러다 어째서인지... 당신을 볼 때마다 자꾸만 다른 마음이 들기 시작하더군요. 더 가까이 가고 싶고, 오랫동안 곁에 머물고 싶더니, 급기야 당신을... 안고 싶어졌어요. 점점 더 많은 걸 원하는 제 자신이 조금 부끄러울 정도로.

 

조금 놀랐지만, 나는 그에게 더 붙어 앉아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나]

그게 어때서요? 나도 마찬가지였는걸요. 나도 알카이드에게 더 다가가고 싶고, 곁에 없으면 궁금해지고, 그리고, 그리고... 음, 그 다음은 비밀! 

 

세상 모든 일이 다 뜻대로 홀러가지만은 않는다.

 그러니 다들 별을 올려다보며 소원을 비는 거겠지. 

그러나 기적은 결코 기다림 끝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기적이란 스스로의 힘으로 찾아내는 것. 

 이미 일어난 일을 바꿀 수는 없다. 돌이길 수 없는 여정 속에서 알카이드를 만난 것은 내 유일한 행운이었다. 

 언제나 상냥한 알카이드. 너무도 다정한 알카이드.

 수많은 역경에도 그는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이토록 부드러운 그의 안엔 세상 무엇보다도 단단한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 

 

[나]

알카이드와 함께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요. 

 

알카이드는 티 없이 맑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알카이드]

나도요. 영원히 함께할게요...

 

[나]

그럼, 우리는 영원히 행복하겠네요.

 

우리는 손을 맞잡고 서로를 마주 보았다. 바람이 살랑 불어와 우리 곁을 맴돌았다. 따스하고 포근한, 봄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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