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6. 19. 23:03ㆍ기타
남은 시간동안 나는 '행사’의 관람 인솔을 도왔고, 알카이드는 천문학과에 남아 떠나는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신입생이 들어오고, 졸업생이 떠나는 오늘 오후는 마치 우리 둘이 이 캠퍼스에서 보낸 시간을 압축해 놓은 작은 축소판 같았다.
알카이드와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 나는 종합관 앞에 도착했지만 그의 주변에는 아직도 많은 학생들이 남아 있었다. 그가 내게 손을 흔들며 미안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알카이드]
우리 졸업 단체 사진 아직 다 못 찍었어. 조금만 기다려 줄 수 있어?
[천문학과 학생 갑]
알카이드, 학우님한테 사진 좀 부탁하자!
내가 아직 멍하니 서 있는데, 어느새 익숙한 손길로 내 손에 카메라가 쥐어졌다.
[천문학과 학생 을]
학우님의 금손을 잠시 빌립니다!
모두가 웃고 떠들며 단체 사진의 구도를 정하느라 분주했고, 그 소란스러움은 알카이드마저 다시 사람들 속으로 끌어들였다.
나는 한 걸음 떨어져 삼각대를 세우고, 프레임을 맞추며 이리저리 카메라를 조정했다. 프레임을 확인하려 허리를 숙이고 있는데, 내가 말하기도 전에 화면 속의 알카이드가 먼저 움직였다.
그는 화면의 정중앙으로 두 걸음 옮기더니, 옆에 있는 친구들에게 위치를 조정해 달라며 가볍게 말을 건넸다.
그의 옆얼굴엔 석양빛이 은은히 깔렸고, 머리카락 끝은 빛을 받아 거의 투명하게 반짝였다.
[알카이드]
여기가 딱 화면 중앙이야… 뒤에 있는 사람들은 너무 붙지 않아도 돼. 학사모 던질 거잖아?
웃고 떠드는 사이, 학생들은 자연스레 카메라 프레임 안에 정확히 들어맞는 구도를 이뤘다.
모두의 위치를 다시 확인한 후, 알카이드는 첫 줄에서 한 쪽 무릎을 꿇었다.
[알카이드]
준비됐어.
그는 무릎 위에 한 손을 올린 채, 고개를 들어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혹은, 렌즈 너머에 있는 나를.
[로지타]
그럼 셋부터 셀게요. 셋, 둘——
작은 뷰파인더 안에서, 그의 시선은 명확히 나를 향하고 있었다. 그 눈빛엔 반짝이는 햇살이 담겨 있었고, 마치 내 심장도 그 빛에 덮여 더 빠르게 뛰는 듯했다.
[로지타]
하나——
찰칵, 찰칵, 찰칵—— 셔터음이 리듬을 타고 울렸고, 눈앞의 수많은 미소와 하늘로 솟은 학사모는 프레임 안에서 계속해서 정지된 순간이 되었다.
갑자기—— 나는 입학 직후의 어느 축제 날이 떠올랐다.
그날, ‘새벽별’로 등장한 알카이드는 무릎을 꿇고 내 앞에 앉아 있었다. 1
그때의 그는 고개를 숙이고, 내가 떠날지 머무를지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의 그와 그렇게도 닮았으면서, 또 완전히 달랐다.
나는 셔터에서 손을 떼고 허리를 펴며,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프레임 밖의 알카이드는 더욱 환하게 웃었고, 그의 눈가에 깃든 따스한 빛은 마치 긴 겨울이 끝난 뒤 봄이 막 찾아온 순간 같았다.
식사 후, 우리는 상업지구를 산책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집 앞에 다다랐을 때, 알카이드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알카이드]
아, 맞다.
오후에 나 올 때, 천 교수님이 너랑 밥 한번 먹고 싶다고 하셨어.
[로지타]
저요?
[알카이드]
자기한테 그렇게 훌륭한 제자를 얻게 해줘서 고맙다고…… 그러셨대.
그의 말투엔 웃음기가 담겨 있었고, 살짝 자기 자랑처럼 들리기도 했지만…
[로지타]
근데 교수님이 그걸 어떻게 아세요?
알카이드는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가로등 아래 희미한 불빛을 의지해 문을 열려고 했다.
[알카이드]
네가 먼저 가고 난 뒤, 교수님이랑 잠깐 얘기하다가…… 아!
그의 손끝과 문고리 사이에서 작은 정전기가 튀어올랐고, 그는 반사적으로 손을 뗐다.
나는 웃음을 참으며 열쇠를 받아들었고, 그가 아직도 학사복을 입고 있는 걸 가리켰다.
[로지타]
이제 그 옷 좀 갈아입으셔야겠네요. 천 교수님이 그렇게 남 얘기 좋아하실 분이었나요? 보통 교수님들은 학생 여자친구가 무슨 과인지, 몇 학년인지 정도나 묻지 않으세요?
[알카이드]
그렇게 따지면…… 사실은 나야.
열쇠가 자물쇠에 맞물리며 ‘찰칵’ 하는 소리를 냈다. 나는 손잡이를 눌렀다.
[로지타]
네?
[알카이드]
내가…… 자랑하고 싶었어.
문이 내 앞에서 열렸고, 집 안에서는 아찬의 야옹 소리가 들렸다. 나는 문손잡이를 쥔 채로 그를 올려다봤다.
마치 어떤 전기가 머릿속을 관통하듯 스파크가 튀었고, 밝은 불꽃 하나가 번쩍하고 타올랐다.
그때 문득, 한 번도 물어본 적 없는 질문이 떠올랐다.
[로지타]
그런데요, 저 한 번도 안 물어봤는데… 그때 왜 세인트 셀터로 전학 오신 거예요?
알카이드는 이미 집 안으로 들어간 상태였지만, 내 말에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봤다. 그의 시선을 받자 나는 괜히 문손잡이를 꼭 쥐었다.
그는 잠시 웃더니, 장난기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알카이드]
네가 보기엔 내가 왜 왔을 것 같아?
[로지타]
글쎄요, 적어도 저 때문은 아니겠죠.
그는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짐을 정리하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알카이드]
조나단 이사장님 덕분에 세인트 셀터는 천문학과에 대한 지원이 많았고, 연구 분위기도 더 좋았어. 양쪽 학교의 커리큘럼과 교수진을 비교해봤는데, 여기가 나한테 더 잘 맞는다고 생각했거든. 그리고…
그가 잠시 말을 멈췄고, 나는 그의 말이 이어지길 기다렸다.
[알카이드]
결국 여기로 온 결정적인 이유가 너였다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야. 빙하에서 오로라 촬영하던 때,
최종 결정을 내릴 어떤 계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는 집 안의 화분 옆에서 몸을 돌렸다. 부드러운 노란 조명이 식물의 녹음과 어우러져 그의 눈빛에 따스한 생기를 얹었다.
[알카이드]
그리고 그때…… 널 만났어.
그 말에, 나는 마치 오로라가 밤하늘을 감싸듯 그의 말에 전부 잠식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키라]
야옹——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키라가 그의 발목에 몸을 비볐고, 그는 키라를 안아 올렸다.
그 순간, “팟!” 하는 정전기 소리와 함께 키라가 깍! 하고 울며 한참을 도망쳤다.
[알카이드]
……
나는 이때 처음으로 알카이드가 키라를 보고 그런 표정을 짓는 걸 보았다.
[로지타]
역시 화학 섬유는… 옷 좀 갈아입으시죠?
[알카이드]
그 전에, 졸업사진 한 장 같이 찍자.
그는 카메라 가방을 열고, 카메라를 삼각대에 올린 후 각도를 조정했다.
나는 소파 위에 올라가 빛이 잘 드는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리고 다시 아까의 질문을 꺼냈다.
[로지타]
그럼 그때 설산에서 절 못 만났다면요?
생각해보면, 내가 갑자기 떠난 여행도, 그가 홀로 떠난 촬영도, 수많은 우연이 겹쳐서 만든 만남이었다.
[알카이드]
그래도 우리는 세인트 셀터에서 만나고, 사랑했을 거야.
정전기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그는 설정을 마치고 손을 씻은 뒤 내게 다가왔다.
[알카이드]
어느 시기, 어느 장소에서 만났더라도 지금의 우리가 되는 게 내가 제일 바란 가능성이었어.
우주에 존재하는 별들이 서로 끌어당기는 것처럼, 불확실한 시작도 결국엔 확실한 끝을 향한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소파 위로 이끌었다. 두 개의 별처럼, 우리는 서로를 중심으로 가까워졌고, 거리가 더는 좁혀지지 않을 만큼 다가갔을 때, 나는 그의 뺨에 살짝 입을 맞췄다.
그의 얼굴이 달아올랐고, 나도 그랬다.
입맞춤은 짧았고, 나는 그의 어깨 위에 생긴 주름을 정리했다. 화학 섬유 특유의 사각사각한 소리가 났다.
[로지타]
저 방금 전기 맞은 것 같아요.
그는 웃으며 고개를 돌렸고, 내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러고는 그 입맞춤을 조금 더 깊게 이어갔다. 찰칵, 찰칵, 카메라의 셔터 소리가 연속으로 울렸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의 어깨를 감쌌고, 손끝은 학사복 위를 스쳤다. 보이지 않는 전기가 또다시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옷에 주름이 생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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