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핑계

2024. 7. 6. 19:19다음 역, 에덴/안내 (로샤)

 두 사람은 내 선택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카이로스를 따라가든, 아인의 레지스탕스에 합류하든, 결국 다른 한 쪽에게는 미안해지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로샤가 보낸 문자에 도리어 안심이 되었다. 나는 통신기에 떠오른 내용을 확인했다. 

 

오늘 밤, 저녁 어때?

 

 이 문자를 보니, 이 초조한 상황 속에서도 겨우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결심이 선 나는 다시금 고개를 들어, 유감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

죄송해요, 여러분. 동료가 기다리고 있어서 오래 머무를 수 없을 것 같네요. 

 

 그들은 생각보다 쉽게 날 놔주었다. 아인은 아무 말도 없었고, 레지스탕스 단원들도 나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 곳을 떠나는 순간, 그 누구도 내 안전을 보장해주지 못하리 라. 

 

[카이로스]

조심해. 

 

 나는 그에게 감사 인사를 한 뒤, 홀로 그 곳을 떠났다. 

 

-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지자, 나는 재빠르게 모퉁이 뒤로 몸을 숨겼다. 아무도 따라오지 않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나는 마음을 놓고 로샤에게 답장을 보냈다.

 

어디 계세요?

결단이 빠르군.
블랙 스트리트 가장 안쪽이야. 에덴 변두리로 오면 돼. 
길을 찾기 쉽지 않겠지만, 너라면 충분히 가능할 거야.
난 저녁 준비하고 있을게. 이따 보자고 

 

 블랙 스트릿의 정확한 위치도 물어보고 싶었지만, 로샤는 이미 대화를 끝낸 뒤였다.

 나는 내가 받은 문자를 멍하니 쳐다봤다. 로샤를 선택한 게 옳은 선택이었을까? 지금으로선 알 수 없었다. 그저 그의 무심한 태도와 은연중에 느껴지는 여유를 보고 있으면, 도대체 그가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질 뿐이었다.

 동시에 로샤가 에덴의 진상에 다가가기 위해 필요한 돌파구가 되어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설령 그가 내게 위협 이 된다 해도, 내 실력이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날이 곧 어두워지려 한다. 해가 지고 나면 길을 돌아다니기 더 어려워지겠지. 가능한 한 빨리 로샤가 말한 곳을 찾아 그와 합류해야 한다. 

 나는 로샤가 알려준 대로 거주 구역을 벗어나 에덴의 변두리로 향했다. 방향감각이 가물가물해질 즈음, 몇 사람의 움직임 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시간에 시스템이 배정해준 거주지를 벗어났다는 것은, 그보다 더 안전한 곳이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건... 아마도 로샤가 말한 '블랙 스트릿'일 가능성이 높다. 나는 그들의 뒤를 쫓았다. 

 

-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평지에 우뚝 솟아난 텅 빈 빌딩이었다. 아니, 거대한 폐허라고 부르는 게 더 적절할 지도 모르겠다 겹겹이 쌓인 석재들, 기이한 모양으로 구부러진 철근, 건물을 뚫고 나온 파이프들... 앞으로 나아갈수록 길은 점점 좁아졌고, 미로처럼 복잡해졌다.

 골목길이 이 구역을 셀 수 없이 많은 파편으로 조각내고 있었다. 당장 이다음 골목에서 적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어쩌면 이런 공간은 가장 위험한 동시에 가장 안전한 곳일 수도 있겠다. 

 몇몇 골목길 어귀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그들 사이를 지나자, 끈적하고도 축축한 눈빛들이 성가신 파리마냥 내 뒤를 진득히 따라붙었다. 걸음을 재촉하려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철판을 긁는 듯한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

새로 온 아가씨인가? 어디 살지? 우리가 안내해줄까? 

 

 의외로 별로 긴장되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몸을 돌렸다. 세 명의 능력자 중, 가장 선두에 선 자가 음침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전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타인의 능력을 빼앗을 권한이 있다. 그들의 눈에 비친 난 보기 드물게 처리하기 쉬운, 군침 도는 먹엇감이리라. 

 

[나]

만나기로 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어요. 지나가게 해주시죠? 약속 시간에 늦고 싶진 않거든요. 

 

[우두머리]

미안하지만, 아무래도 그 약속 지킬 수 없을 것 같은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세 사람이 나를 에워쌌다. 나 역시 진작에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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