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장미 인생

2024. 6. 24. 23:17현대 편/2021 화이트 데이

 한숨 푹 잔 뒤 알카이드와 약속을 잡았다. 저녁이 되고, 우린 별빛 장미 축제가 열리는 공원을 찾았다. '킹스보이' 연극의 공연 의상을 걸친 알카이드는 장우산을 손에 쥐고 있었다. 그의 의상은 평소 스타일도 염두하고 디자인 한 터라, 어색하지 않고 알카이드를 더욱 분위기 있게 만들어주었다. 

 

[로지타]

이렇게 입으니깐 꼭 신사같아요.

 

[알카이드]

'신사'라는 건 온화함, 뛰어난 재능, 차분함을 갖춘 사람을 뜻하지. 그렇게 봐주다니 기분 좋은걸.

 나와 알카이드는 공원을 거닐었다. 눈부신 조명으로 만든 흰 장미의 물결이 숲과 별빛에 어우러지며 환상 속을 걷는 듯한 느낌을 선사했다. 난 알카이드의 손을 잡았다. 검은 정장에 장우산을 든 그는 날 에스코트해 주는 파트너이자, 수호자다.

 알카이드는 날 공원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아무도 없는 그 곳에는 화려한 조명으로 빛나는 건물이 서 있었다. 

 

[알카이드]

이 공원의 테마 레스토랑이야. 

 레스토랑은 밝은 조명 없이 테이블 위의 촛불로 밝혀진 공간이었다. 사람들이 드문 드문 앉아 있어서 꽤 한적해 보였다. 

 

[알카이드]

오늘은 화이트데이라서, 연인들을 위한 프라이빗한 공간을 넉넉히 준비했다고 해. 

 창밖은 별빛과 불빛으로 가득했지만, 우리의 눈동자를 비추는 건 눈앞에 일렁이는 촛불뿐이었다. 

 

[알카이드]

이것 봐.

 알카이드는 내가 만든 허그 베어 오르골을 창 앞에 올려두곤 손잡이를 돌렸다. 아름다운 음악이 울려 퍼지자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건 내가 알카이드를 위해 고른, 오래된 상송 〈장밋빛 인생〉이다. 

 

[알카이드]

라비앙로즈(La vie en rose), 아름다웠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상송이야. 

'그의 품에 안길 때 들려온 그의 낮은 목소리, 나는 장밋빛 인생을 봤어요...' 

어릴 때 들은 노래인데, 지금까지도 아주 좋아하는 가사야. 특히 행복에 대해 노래하는 부분을 정말 좋아해. '당신은 날 위해, 나는 당신을 위해'. 서로의 생명이 상대를 위해 존재할 때, 사랑하는 사람은 행복을 얻게 된다고 해. 

[로지타]

알카이드 선배는 그 말을 믿나요? 생명과 약속,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마치 동화책 속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 같아요. 

 

[알카이드]

난 믿어.

 내 맞은편에 앉아 있던 선배는 일렁이는 불빛 속에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내 뺨에 가법게 입을 맞췄다. 다소 딱딱해 보이는 정장 차림과 달리, 환하게 웃는 미소가 공연 속 장미의 정령과 무적 닮아 있었다.

 2022년의 화이트데이는 촛불과 흰 장미, 별빛 그리고 상송과 함께 흘러갔다. 알카이드 선배는 말했다. 생명과 약속, 그리고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을 믿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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