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변고

2024. 6. 24. 23:16현대 편/2021 화이트 데이

 3월 13일은 〈킹스보이〉의 첫 공연일이다. 오늘 밤 공연이 끝나면 알카이드 선배와 함께 간단히 음식을 먹을 생각이다. 식당을 예약한 뒤 준비한 선물을 가방 안에 넣었다. 공연이 10시에 끝나니, 식당에서 12시까지 시간을 보내다가 화이트데이가 되면 정성껏 준비한 선물을 알카이드에게 건네야지. 그 후엔 '별빛 장미' 축제에 가면 될 것 같다. 

 알카이드가 옷을 갈아입으러 간 사이 선물이 무사한지 가방 속을 다시 한번 체크했다. 그때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누군가 혈떡거리며 달려왔다. 

[여학생]

안소니 교수님, 제니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무대에 못 오를 것 같아요! 

[안소니]

무대에 못 오를 정도의 복통이라면 병원에 가봐야겠군. 

 

[여학생]

네, 상태가 영 안 좋네요. 바로 택시를 불러서 병원에 보낼 건데, 오늘 밤 공연은 어쩌죠...? 

 잠시 침묵에 잠겨 있던 안소니 교수님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안소니]

제니와 체형이 비슷하니 의상도 괜찮을 테고, 분량이 적은 데다 알카이드와 호흡을 맞추는 장면뿐이니... 로지타, 리허설할 시간이 아직 있는데 한번 도전해보지 않겠어? 

[로지타]

하지만 무대 연기는 해 본 적이 없는걸요.

 

[안소니]

제니도 막 동아리에 들어왔지. 그래서 이번에는 대사가 별로 없는 조연을 맡겼고. 학생 같은 초보자가 하기엔 딱이라고 생각하는데. 게다가 문제가 생겨도 알카이드가 곁에 있으니 괜찮을 테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알카이드가 나타났다. 안소니 교수님한테 대략적인 상황을 들은 알카이드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날 보며 미소 지었다.

[알카이드]

보통은 대역이 있긴 한데, 이번에 제니가 맡은 역할은 분량이 적어서 따로 대역이 없어. 특수요원의 보호를 받는 귀족 아가씨 역할이라서, 무대에서는 내가 계속 곁에 있을 거야. 하지만 무리할 필요는 없어. 

 

[로지타]

선배, 말이 많아지는 걸 보니... 제가 무대에 오르길 바라는 거죠? 

 

[알카이드]

나야 당연히 너와 공연하고 싶지. 하지만 나 때문에 네가 곤란해지는 건 원치 않아.

 

[로지타]

좋아요, 저도 알카이드 선배랑 연기해 보고 싶어요. 

 이렇게 해서 나는 얼떨결에〈킹스보이〉의 귀족 아가씨를 연기하게 됐다. 유럽풍 드레스는 입기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간 시공을 오가며 겪은 다양한 경험으로 공연 분위기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안소니]

완벽해! 본 공연 때 이렇게만 하면 문제없을 거야. 

 알카이드가 다가와 내 손가락을 가법게 잡았다. 

 

[알카이드]

연기 좋았어. 의상도... 정말 잘 어울린다. 본 공연이라고 리허설과 다를 건 없으니 긴장할 것 없어. 숙녀분 뒤에는 언제나 내가 있다는 것만 기억해. 

 

[로지타]

네, 알카이드 선배가 언제나 뒤에 있다고 생각할게요.

 저녁이 되자, 공연이 시작됐다. 공연 전반부가 긴 터라, 나는 뒷무대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공연 순서를 모두 익힌 덕분에, 내 차례에 무사히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그동안 줄곧 관중이었던 내가 무대에 오르니, 무척 신기했다. 관객들의 힘찬 박수 소리에, 알카이드가 연기하는 킹스보이가 내 뒤에 나타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역할 때문에 그를 돌아볼 순 없지만, 그래도 그를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대사가 없는 역할인지라, 표정을 바꾸곤 리허설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명이 내게서 벗어난 걸 보니, 내 임무도 거의 끝날 때가 된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고 퇴장하려는데, 발밑이 허전했다... 

 설마 무대 장치가 고장 난 건가?! 발을 빼려는데, 어디선가 뻗어 나온 손이 나를 앞으로 밀었다! 

 

[로지타]

아앗!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지만, 밀쳐진 힘에 결국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심하게 넘어지고 말았다. 그 순간, 판자가 쾅 하며 부딪히는 소리가 위에서 들려왔다. 나는 재빨리 무대 위로 올라가 어둠 속을 살폈다. 내 직감이 맞다면, 날 노리는 게 분명하다. 기습 공격인가? 아니면 납치?! 

 더듬더듬 추락 지점에서 최대한 멀어지며, 그림 소울을 소환할 준비를 했다. 이 세계에선 그림 소울을 쓰고 싶지 않지만, 이대로 가만히 당할 수는 없다. 5분 정도 걸었을까,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게 안정감을 주는 나지막한 목소리였다. 

 

[알카이드]

로지타. 나야, 알카이드. 다친 데는 없어? 

 

[로지타]

괜찮아요...

 

[알카이드]

목소리 낮춰. 내 손을 꽉 잡아, 절대 놓치면 안 돼. 걱정하지 마, 무슨 일이 있어도 네 옆에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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