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2024. 6. 24. 23:17현대 편/2021 화이트 데이

 나와 알카이드는 어둠 속에서 두 시간을 기다렸다. 알카이드를 따라 코너의 물품실로 발걸음을 옮긴 뒤 그 안에 숨어들었다. 그리곤 약속이나 한 듯 둘 다 입을 다물었다. 알카이드가 내게 이런 말을 했기 때문이다. 

 

[알카이드]

어둠 속엔 널 해치려는 사람도 있지만, 널 지켜주는 사람들도 있어. 지켜줄 사람들이 올 때까지 잘 숨어 있으면 모든 게 해결될 거야. 

 나는 알카이드에게 더는 묻지 않았다. 알카이드는 '나를 지켜주는 또 다른 사람들'을 알고 있지만, 지금은 무엇보다 그가 내 곁에 있어줘서 훨씬 마음이 놓였다.

 두 시간이 지난 뒤, 경찰과 교수님들이 오셔서 나와 알카이드를 구해줬다.  교수님들은 우릴 진정시키곤 양호실에 가서 검사를 받도록 했다. 다친 곳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우린 양호실을 나올 수 있었다. 경찰은 말을 아낀 채 안소니 교수님 이 이번 사건과 관련 있다며, 경찰서로 데리고 갔다고만 알려줬다. 

[경찰]

걱정하지 마십시오. 더는 문제 없을 겁니다. 

 선배 언니한테 맡아달라고 부탁했던, 준비한 선물이 든 가방은 다행히 무사했다. 그래서 원래 계획대로 알카이드와 함께 예약해 둔 식당을 찾았다. 

[로지타]

그러고 보니 오늘 갑자기 무대에 서는 바람에 저녁도 못 먹었네요... 그러니까 이제 든든히 먹어요! 

 이브닝 메뉴를 이미 예약해둔 터라 식탁 위로 풍성한 음식이 차려졌다. 알카이드는 내 맞은편에 앉은 재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알카이드]

로지타, 내게 묻고 싶은 게 많지? 가령 오늘 널 노린 게 누구인지, 내가 가장 먼저 널 구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같은거... 

 

[로지타]

궁금하긴 하지만... 선배가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면 이야기하지 않아도 돼요. 

 

[알카이드]

내가 수상하지 않아? 

 

[로지타]

예전에는 수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여길 두 번이나 떠나 돌아왔을 때도, 알카이드 선배는 언제나 가장 먼저 절 찾아냈죠. 게다가 선배는 제가 사라진 걸 알고도 크게 놀라거나 사정을 묻지 않았어요. 

 

[알카이드]

그때부터 눈치채고 있었구나...

 

[로지타]

선배에게도 비밀이 있다고 추측한 것뿐이에요. 다만 선배가 늘 저를 존중해준 것 처럼 저도 그렇게 할 거예요. 

 

[알카이드]

내가 너한테 의도적으로 접근한 건 아닌지 의심스럽지 않아? 

 

[로지타]

전 제 눈을 믿어요. 알카이드 선배가 제 곁에 있어 줄 때면 선배도, 저도 서로를 오롯이 마주하게 되죠. 선배가 어떤 사람인지, 절 어떻게 대하는지.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마음으로 직접 느낄 수 있어요. 알카이드 선배가 제게 진심이었다는 건 알고 있어요. 그러니 저도 제 마음으로 선배를 대하고 싶어요.


[로지타]

이건 흰 장미 향초인데... 제가 직접 만든 거예요. 제게 알카이드 선배는 우아하면서도 순결한 장미의 정령이니까요. 

 

[알카이드]

고요한 밤에 켜둘게. 불빛이 비추는 사람이 너와 나 둘이었으면 좋겠다. 

 

[로지타]

이건 오르골이에요. 이것도 제가 디자인해서 공방에 의뢰한 거예요. 손잡이를 돌리며 곰돌이가 춤을 춘다고요! 

 

[알카이드]

내가 줬어야 했는데 받아버렸네. 멋진 선물 고마위. 그런데, 왜 하필 곰돌이지? 

 

[로지타]

알카이드 선배는 언제나 듬직하잖아요. 제가 위험할 때마다 듬직한 허그 베어가 절 지켜줄 거예요... 오늘처럼요.

 알카이드가 가법게 웃음을 터뜨렸다. 

 

[알카이드]

허그 베어가 로지타를 지켜준다라. 그렇다면 난 언제든 너를 위해 달려가는 너만의 허그 베어가 될게. 

 

 말을 마친 알카이드가 내 손을 잡아당겼다. 

 

[알카이드]

로지타, 널 언제까지고 지켜주고 싶어. 

 그 순간, 민망하게도 내 배에서 꼬르륵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알카이드]

아, 어서 먹자. 오늘 하루종일 고생하느라 배고팠지? 

 배가 고프긴 했던 터라, 창피함을 무릅쓰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알카이드는 맞은 편에 앉아 차분하게 식사하며, 내가 좋아하는 음식만 정확히 골라 내 앞으로 밀어 넣었다. 

 

[알카이드]

천천히 먹어. 

 밤늦은 시간, 식당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고개를 잔뜩 숙인 채 밥을 먹다가 몰래 고개를 든 순간, 맞은 편에 앉아 날 보며 미소짓는 알카이드와 시선이 마주쳤다. 환하게 웃는 미소가 공연 속 장미의 정령과 무척 닮아 있었다. 

-

 식사를 마진 후 알카이드는 날 '우주 사진관'으로 데려갔다. 야심한 시간이었지만 알카이드는 가게 문을 열었다.

 알카이드가 내게 알려준 첫 번째 비밀은, '우주 사진관'이 자신의 가족이 투자한 곳이라는 것이었다. 이 시간의 사진관은 유난히 조용했다.

 아무도 없는 사진관에서 알카이드는 내게 차를 끓여줬다. 그윽한 차 향기 속에서 천천히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놨다. 부모님의 직업에 관해 이야기하며, 자신이 세인트셀터로 전학 가도록 누군가 일을 꾸민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내 실종 사건을 두 번 다 조사했는데, 그 당시 어디서도 내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나 역시 내 비밀을 솔직히 털어놨다. 여행자라는 나의 신분과 내가 어디로 사라졌는지에 관해 말이다. 그에게 내 비밀을 털어놓으며, 그의 부모님을 포함한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로지타]

선배, 여기까지가 선배한테만 털어놓은 제 비밀이에요. 제게 선배는 또 다른 제 자신이에요. 그래서 선배한테는 아무것도 숨기고 싶지 않아요. 

 

[알카이드]

"당신이 내 자신이 된 것처럼 느껴져요. 그래서 당신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내 영혼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아요.” 

 알카이드는 이전에 어디선가 본적이 있다던 글귀를 읊었다. 

 

[알카이드]

로지타, 너의 또 다른 영혼이 될 수 있다니, 기뻐. 네 비밀이 곧 내 비밀이야. 

 긴 이야기가 끝났을 땐 이미 새벽 2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시계를 본 알카이드는 날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선은 쉬는 게 좋겠다고, 별빛 장미 축제는 내일 저녁에 가자고 했다. 

 

[알카이드]

너무 많은 일을 겪은 터라 지금은 한숨 자두는 게 좋을 거야. 로지타, 잘자.  

 인사를 건네는 알카이드의 말투는 밤의 고요함을 깰까 봐 두려운 듯 지극히 부드러웠다. 하지만 그의 가슴은 뜨겁고 거칠게 뛰고 있다는 걸 잘 안다. 

 

[로지타]

잘 자요, 알카이드 선배. 드디어 화이트데이네요. 저녁에 봐요.

'현대 편 > 2021 화이트 데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화. 영상통화(후일담)  (0) 2024.06.24
9화. 장미 인생  (0) 2024.06.24
7화. 변고  (0) 2024.06.24
6화. 또 다른 나  (0) 2024.06.24
5화. 나를 변화시킨 너  (0) 2024.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