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결심

2024. 5. 12. 15:26다음 역, 에덴/사냥매 (카이로스)

 카이로스가 사라진 뒤, 방으로 돌아가서 쉬려던 나를 에린이 불러 세웠다. 

 

[에린]

이 복도는 지하 통로로 이어져 있이. 그 길을 따라 끝까지 가면... 블랙 스트릿을 떠날 수 있을 거야. 어서 가,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게. 모두 널 붙잡아두고 싶어 하지만, 사냥매의 말이 맞아. 우린 너에게 짐이 되어선 안 돼. 

 

[나]

넌 그런 존재가 아냐, 그리고 나에겐 여기에 머물 이유가 있어.

 

[에린]

넌 정말 좋은 사람이구나... 이곳에는 사방에 괴물이 존재해. 시시각각 위험과 배고픔, 죽음의 위협에 시달리지. 년 우리와 달라. 사실 널 처음 본 순간부터 네가 남다른 존재라는 걸 알고 있었어. 

 

[나]

그렇지도 않아. 그리고 내가 너희를 도우려 하는 건, 사실 내 이기심 때문이야. 

 

 에린은 고개를 저으며, 가벼운 미소와 함께 내 손을 잡았다. 평소 모래 괴물과 전투를 치른 탓인지 에린의 손바닥에는 무기를 다루면서 생긴 굳은 살이 박혀 있었다. 하지만 내 손을 잡는 그녀의 동작은 가벼우면서도 조심스러웠다. 

 

[에린]

나 역시 능력자야. 모두가 편하게 쉴 수 있는 낙원을 찾는 게 내 바람이야. 하지만 사냥매의 말이 옳아, 너에게 내 바람을 강요해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이젠 너도 에덴의 규칙을 알게 됐을 거야. 그러니 네 능력을 이용해 방랑자와의 전 투를 피하고, 힘을 아껴. 사냥매처럼 행동해. 그는 어젯밤에 방랑자와의 정면 대결을 피했다고 들었어. 그거야말로 현명한 선택이지. 

 

[나]

......

 

[에린]

진정한 강자는 전력을 유지할 줄 알아. 전술을 이용해 목표를 이룰 수 있거든. 

 

[나]

나 역시 사냥매를 닮고 싶어. 하지만 그가 여유로운 건, 이곳에 더 익숙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내겐 가까스로 쓸 수 있는 전투력 밖에 없어. 마구잡이로 돌아다니는 것보단 너희랑 같이 있는 편이 목표를 달성하기 쉬울 거야. 

 

 확실히 카이로스는 현명하다. 전술을 다루는 데도 능하고, 전력을 유지할 줄도 안다... 그런 그가 나를 도와줬다. 그렇다는 건... 

 

[나]

카이로스도 그렇게 현명한 것 같지는 않는데...

 

에린이 놀란 눈으로 날 바라봤다. 

 

[나]

아냐, 아무것도.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손을 뻗어 에린의 일굴을 조심스레 만졌다. 에린의 얼굴에 작은 놀라움과 함께 수줍은 빛이 떠올랐다. 

 

[에린]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나]

내겐 모두를 살리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아쉬움을 남기고 싶지 않다는 이기심이 남아 있어. 

 

 그 말에 에린은 무척 놀란 것처럼 보였다. 현실 세계 속 채린의 모습과 무척 닮아 있었다. 

 

[나]

다시는 누구도 잃고 싶지 않아. 

 

 난 고개를 숙인 채 작게 속삭였다. 에린에게 하는 말보다는, 내게 하는 말에 가까웠다. 용병 소녀는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한 채 내게 다가왔다. 

 

[나]

미안, 괜한 소리를 해서... 나 먼저 방으로 들어갈게, 저녁 식사 때 보자. 

 

-

 

짧은 휴식이 끝나고, 클라우드와 에린이 내게 지저녁을 가져다줬다. 

 

[클라우드]

 오늘의 메뉴는 빵, 산딸기, 튀긴 생선, 그리고 에린 누나의 특제 커피, 마지막으로 클라우드의 소고기 통조림 이야! 참, 커피를 마시면 정신이 번쩍 들 테니까 이따 자고 일어나서 마시도록 해! 

 

[에린]

커피는 사막에서 지낼 때 상인에게서 받은 거야. 하지만 클라우드의 소고기 통조림은 좀 오래돼서...

 

[나]

유통 기한은 아직 안 지났지...?

 

[클라우드]

절대 그릴 리 없어! 혹시 네가 탈이라도 나면 우리를 지켜줄 수 없잖아! 

 

 식사 틈틈히 에린, 클라우드와 에덴과 능력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두 사람은 에덴에 들어오기 전에 있었던 일을 진솔하게 이야기해줬다. 용병과 지하 셀터는 서로를 지켜주는 관계로, 용병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의 지하 셀터에서 보내곤 한다. 자원을 구해달라는 상인들의 의뢰를 이따금 받을 때도 있다. 에린이 지기는 곳은, No. 1098 지하 셀터다. No.1098 지하 셀터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Rin'이라는 이름이 새기진 메달의 사연이 궁금해졌다... 이 세상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고 싶다. 

[에린]

글자를 새긴 건 톰이야, 올해 다섯 살이지. 조각하는 걸 무척 좋아해서... 병이나 통 조림에 최다 자기가 만든 문양을 새기곤 했어. 어느 날 호송 임무를 맡느라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모래 괴물이 지하셀터에 쳐들어왔어. 지나가던 사냥매의 도움으로 다행히 아이들을 구할 수 있었지. 

 

​[나]

톰도 에덴에 있어? 

 

 에린의 표정이 삽시간에 어둡게 변했다. 

 

[에린]

1098번지하셀터는 더는 존재하지 않아. 또다시 모래 괴물이 쳐들어와 그 안에 있던 모두가 목숨을 잃었거든. 모래 괴물은 지하 셀터를 부수고, 사람들을 잔혹하게 먹어치웠지. 

 

에린은 고개를 떨궜다.

 

[나]

혹시 그 후로... 사냥매를 다시 본 적 있이? 

 

[에린]

매번 운이 따르는 법은 아니니까. 사냥매는 초심을 읾을 사람이 아냐. 차가운 겉모습과 달리 따뜻하지. 말로는 자신과는 상관없다고 하지만, 자신과 상관없는 지하 센터를 수없이 구해줬어. 넌 특별한 사람이야. 그리고 사냥배 역시 우리와는 많이 달라. 너희 두 사람은 무척 비슷한 것 같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나는 식사를 마쳤다. 에린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인사했다. 

 

[에린]

좀 더 자두도록 해. 오늘 밤에는 더 강한 녀석들이 올 거라 경계를 강화할 생각이거든. 

 

 나도 에린과 클라우드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건넸다. 그리곤 침대에 눕자마자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잘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자정이 되면 치열한 전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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