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카이드] 별의 머무름

2024. 3. 24. 15:57에르세르 대륙(完)/결말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별이 내 곁에 있다.

 

 약재와 허브를 잔뜩 실은 마차가 천천히 길가에 멈춰섰다. 

 

[잭]

뭐야? 그 옷 오랜만이네? 

 

[알카이드]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깐.

 

[잭]

특별한 날? 설마 '봄의 축제'를 말하는 거냐? 푸훗! 솔직하지 못한 자식. 그냥 저 녀석한테 멋지게 보이고 싶다고 말...

 

[알카이드]

쉿. 그녀가 아직 자고 있잖아. 다친 너를 구해준 건 나라고. 2, 3개월이나 누워서 사경을 해매다 방금 회복한 네가 생명의 은인에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는지.

 

[잭]

아아, 미안. 그나저나 너... 정말로 축제에 안 갈 거야? 다들 기다릴 덴데? 

 

[알카이드]

오늘 밤은 안 돼. 

알카이드는 희미하게 웃으며 마차의 짐칸을 돌아보았다. 조용히 잠들어 있는 그녀는 무칙이나 편안해 보였다. 무방비하게 잠들어 있는 그녀를 볼 때마다 그는 새삼 행복을 느꼈다. 잠자리 한 마리가 살며시 그녀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팔랑팔랑 날아가버렸다. 

 

[알카이드]

선약이 있어서. ...기념일이거든.

 

 긴 꿈을 꾼 것 같았다. 얼마나 오랫동안 잤는지도 모르겠다. 깨보니 마차 안이었다. 아, 맞아. 나는 알카이드와 함께 '봄의 축제'에 참석하러 가는 길이었지. 시간은 빠르게 흘러, 새로운 세계에 온 지도 어언 1년이 지났다.

 나와 알카이드는 그동안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벌써부터 그럴싸한 마을을 이룬 곳이 있는가 하면, 아직도 혼란스럽기만 한 곳도 있었다. 

 우리는 여행을 다니며 각종 약초를 수집하고 그 배합법을 연구했다. 그리고 후대를 위해 에르세르의 문헌들을 수집해 잘 보관해두었다. 그러다보니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들도 자연스레 늘어났다.

 지금 이 마을은 우리가 이쪽 세계에 오고 나서 처음으로 도착했던 곳이다. 이곳의 사람들은 월계절과 같은 날에 축제를 열고자 미리부터 계획하고 있었다. 이제 봄의 축제만 있을 뿐, 더 이상 월계절은 없다. 그날은 겨울이 끝난 날이자 세계 가 생겨난 날이다. 상처에서 새살이 돋아나고 있었다. 

 

[나]

알카이드, 나 오래 잤어요? 혹시 나 때문에 축제에 늦은 건 아니겠죠? 

 

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

 

알카이드는 나를 뜬금없이 뒷산으로 이끌었다. 

 

[나]

알카이드, 산도 좋지만... 축제 구경하러 슬슬 내려가보는 게 어때요? 

 

[알카이드]

높은 곳이 더 잘보이거든요.

 

 알카이드는 먼 곳을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 끝은 밤의 마을을 향하고 있었다. 

 

[알카이드]

곧 시작될 거예요.

 

 그 순간, 멀리 하늘에서 빛줄기가 솟아올랐다. 설마, 불꽃놀이? 이윽고, 하늘엔 온통 빛의 꽃들이 피어났다. 지대가 높아, 아름다운 풍경 이 한눈에 들어왔다. 가슴이 빠르게 두근거렸다. 알카이드는 정말 대단해. 어떻게 이런 곳을 찾아낸 걸까? 

 

[알카이드]

이번엔 저쪽이에요. 

 

 알카이드가 가리킨 바로 그곳에서 새로운 불꽃이 피어났다. 아름다운 푸른 빛은 그가 소환해냈던 별의 계단을 연상게 했다. 

 

[나]

잠깐, 저걸 어떻게 알았어요? 

 

[알카이드]

내가 만들었으니까요. 그래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서 보여주고 싶었어요.

 

 요 며칠간 알카이드가 이런 일을 하고 있었다니. 단순히 구경하러 온 줄로만 알았지, 그가 직접 축제에 관여하고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 

 

[알카이드]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고, 즐겼으면 좋겠어요.

 

그의 말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알카이드]

당신이 모두를 위해 한 일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원히 모르겠지요. 그러니 내가 대신 감사의 선물을 한 거예요. 알고있나요? 오늘은 당신과 만난 지 1년하고도 열흘이 된 기넘일이에요. 

 

알카이드의 눈은 더없이 진지했다. 

 

[나]

뒤에 열흘이 붙으니 약간 억지처럼 들리는데요? 

 

마지막 불꽃이 사그라들고 있었다. 

 

[알카이드]

억지라니요? 당신과 관런된 건 무엇이든 기넘할 일이에요.

 

 알카이드는 더 없이 순수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무슨 일인지, 내 양 뺨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작은 빛 무리가 알카이드에게로 모여들었다. 

 

[나]

알카이드! 이거, 혹시...! 힘을 읾은 게 아니었어요? 

 

[알카이드]

마법이 아니에요. 잘 봐요.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과연 마법이 아닌, 반딧불이였다.

 알카이드와 내 곁으로 점점 더 많은 반딧불이가 몰려들었다. 그와 맞잡은 손 위로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다. 

 

[알카이드]

당신을 찾아온 녀석들이에요. 모든 생명은 빛을 동경하니까요. 당신에게 제 마음이 끌리는 것도, 그런 거겠죠.

 

 제멋대로 뛰는 심장이 도무지 진정되질 않는다. 알카이드의 낮은 목소리와 진한 눈빛이 나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알카이드]

내가 사랑하는 여인은 하늘에서 빛나는 별처럼 부드럽고 강하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이에요.

 

[나]

하지만 당신은 반딧불이가 아닌 걸요, 밤이 오는 걸 기다릴 필요 없잖아요? 이미 제 눈 앞에 이렇게 있는 걸요. 나는 언제나 여기 있을 거에요. 당신의 옆에. 그렇죠?

 

[알카이드]

그러네요. 그러니 저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알카이드는 내 손을 잡고선 자신의 어깨를 내어주었다. 작은 반딧불이가 내 마음에 스며든 것같이 따뜻하고 간지러웠다. 오늘의 나는 알카이드 옆에 앉아있었고, 미래에도 마찬가지겠지. 누군가 나에게 소원을 묻는다면. 그건 이미 이루어진 것이나 마찬가지.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별은, 내 옆에서 빛나고 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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