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살고자 하는 욕망

2024. 3. 23. 20:32에르세르 대륙(完)/전승의 장 (카이로스)

 카이로스가 눈치 못 채게 몰래몰래 얼음 나비를 처치했지만, 카이로스는 여전히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잠깐! 카이로스의 손등에... 얼음 결정이 맺히고 있잖아? 폭주의 징조가 나타나고 있어!

 카이로스는 마법사, 그것도 동료가 얼음 나비로 변하는 것을 처음으로 목격한 듯했다. 그와 동시에, 그간 처치했던 얼음 나비들 중에 마법사가 섞여 있었다는 사실을 분명 눈치챘을 것이다. 폭발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그의 몸도 통제를 벗어났다. 카이로스의 폭주를 막아야 한다. 안 그러면 영영 기회는 없다. 

 

>카이로스에게 네 욕망을 떠올려보라고 속삭인다.

더보기

 급박한 찰나, 카이로스가 해주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마법사의 정신력을 이끌어내는 것은 욕망. 카이로스를 욕망에 집중하게 하면 마력도 제어할 수 있을 터. 

 

[나]

카이로스, 당신의 욕망은 뭔가요? 마음을 들여다봐요. 당신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맹렬한 바람이 나를 밀어내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어느 때든, 카이로스를 구할 수 있는 건 카이로스 자신뿐이다. 제발, 해내야 해! 일순, 카이로스가 이를 악물더니 중얼거렸다. 

 

[카이로스]

살아야... 해. 살아야지. 그래... 반드시 살 거다. 빌어먹을 얼음 나비 따위...! 

 

 카이로스는 이성을 되찾고 마력을 안정시키기 시작했다. 한참의 사투 끝에, 그의 몸을 뒤덮은 얼음 결정은 깨끗이 사라졌다. 극한의 정신력을 소진한 탓인지, 그의 무릎이 툭 꺾였다. 녹초가 된 카이로스는 결국 정신을 잃고 말았다. 카이로스가 또 한 번 해냈어.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나 역시 지쳐 그의 곁에 주저앉아버렸다. 얼마나 긴장했었는지 내 몸도 아팠다. 탈진해 기절한 줄로만 알았던 카이로스가 갑자기 손을 뻗었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 무언가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 카이로스•••, 설마, 나를 찾고 있는 거야?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살며시 손을 내밀 있고, 그는 단번에 내 손을 낚아채 꽉 잡았다. 절대로 놓지 않겠다는 듯 간절히. 

 

[카이로스]

잡았다...

 

 그는 지쳐서 반쯤 잡든 상태였다. 그럼에도 모든 힘을 쥐어짜 입을 떼었다. 

 

[카이로스]

이 손, 체온... 기억나. 그래, 그때도 너였어. 그건.. 꿈이 아니었어. 넌... 내가 형편없이 무너질 때마다 나타나는구나. 왜지...? 어째서 매번 날 구하는 거야? 

 

[나]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면 알려줄게요.

 

[카이로스]

역시, 쉽게 알려주지 않는구나. 정신을 자리면 넌 또 사라져 있겠지... 하나만 물어보지. 네게 은혜를 갚고싶어. 난 빚지고는 못사는 성격이라.

 

[나]

그럼요. 살아남으면 돼요. 계속 살아남아서 당신의 미래를, 운명을 바꿔요. 그 어떤 존재에게도 져선 안 돼요. 나는... 아주 먼 곳에서 왔어요. 당신을 찾을게요. 다시 만나러 가겠다고 약속할게요. 그러니까 당신도 그날까지 꼭, 살아남기로 약속해요. 

 

 더 이상은 말할 수 없었다. 카이로스는 눈을 감은 채 희미한 미소를 지 었다. 

 

[카이로스]

약속하지. 

 

[나]

카이로스...

 

[카이로스]

그래. 기다릴게. 언제까지나... 기다릴 거야. 네가 다시 올 때까지 반드시...

 

 카이로스는 내 손을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지금껏 외톨이로 살아온, 그리고 앞으로도 긴 세월 동안 쭉 고립된 재 살아갈 그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아파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수많은 여정에서 카이로스를 만나왔지만, 이렇게 깊이 그를 알게 되는 것도, 이런 마음이 드는 것도 처음이다. 카이로스가 힘겹게 말을 이었다.

 

[카이로스]

네가 선물한 삶인데 그저 기다리기만 하며 허비하면 안 되겠지... 나 역시 다른 이들을 살게 할 거다. 더 강해질게. 그리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하겠어. 네가 별 볼 일 없는 나를 구해준 것을 후회하지 않도록...

 

 당신은 이미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자랑스러운 마법사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와의 대화는 거기서 끝나고 말았다. 시야가 흐려지고 있었다. 청년 카이로스와 작별할 시간이 온 것 이다. 

 나는 시공의 틈을 헤쳐나갔다. 이 어둠의 끝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카이로스는 또 어떤 모습일까. 

 

>17화에서 계속...

>어쩔 줄 몰라 하며 카이로스를 끌어안는다.

더보기

​BE 4. 뒤엉킨 인과

 급한 마음에 나는 카이로스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나]

카이로스, 진정해야 해요! 제발! 

 

쉬지 않고 카이로스를 불렀지만, 내 목소리는 그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카이로스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폭주하고 말았다. 그의 몸이 얼음 결정으로 빠르게 뒤덮여갔다. 나는 끝내 카이로스를 구하지 못했다. 

 카이로스의 삶도 미래도, 그곳에서 모두 얼어붙어버렸다. 그리고 나 역시 마찬가지. 나는 이곳에 있을 수 없는 존재였다. 시공의 틈에 갇힌 나는, 길을 잃고 말았다. 

 

END.

'에르세르 대륙(完) > 전승의 장 (카이로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18화. 눈보라  (0) 2024.03.24
17화. 아이리스 마을  (0) 2024.03.23
15화. 소년시절  (0) 2024.03.23
14화. 운명의 시작  (0) 2024.03.23
13화. 별의 바다와 나비  (0) 2024.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