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얼음나비의 비밀

2024. 2. 12. 15:43에르세르 대륙(完)/아이리스의 장 (로샤)

 예신의 손끝에서 눈부신 은색 빛이 피어올랐다. 저건, 마법...? 예신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던 거야? 내가 몰랐던 그의 능력이 또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반드시 그를 막아야 한다. 나는 재빨리 예신의 팔을 붙잡고 늘어졌다. 

 

[나]

멈춰요.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하면 소리 지를 거예요. 자는 사람들 다 깨울 정도로 크게. 그래요. 내가 어떤 짓을 해도 당신은 흔들리지 않겠죠. 그렇지만 과연 당신의 부하들도 같을까요? 황제의 신부를 납치해 온 것도 모자라 난폭하게 겁탈하려 하다니. 세상에, 실버나이트의 실체가 이런 파렴치한이라니! 

 

[예신]

......

 

마침내 예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기세를 몰아 더 밀고 나가려던 순간. 

 

[???]

실례합니다.

 

 문밖에 사람이 있었다! 방금 얘기, 혹시 들은 건가? 그저 위협하려고 해본 소리긴 했는데... 천막 입구의 반란군 마법사는 말할 수 없이 복잡한 눈으로 제 우두머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법사]

드릴 말씀이 있어 실버나이트 님을 찾고 있었습니다. 

 

[예신]

나가서 듣지.

 

[마법사]

아니요. 굳이 자리를 옮길 필요까진 없습니다. 저 여자도 알고 있는 것 같으니까요. 당신이 어떤 인물인지. 

 

 마법사는 돌연 입을 벌리고 치아 안쪽에 숨긴 무언가를 내보였다. 눈에 익은, 붉은 보석이었다. 

 

[마법사]

눈치를 보아하니, 거기 계신 신녀님도 이게 뭔지 아나 보군. 우리는 에르세르의 황실을 배신한 죄인이다. 실버나이트를 따르기 위해 모든 걸 저버렸지. 그러나... 구원의 빛인 줄만 알았던 실버나이트는 줄곧 우리를 기만했어. 이 붉은 보석은 저자가 우리에게 직접 나눠준 것이다. 위기 상황에 맞닥뜨리거든 이것을 깨물고 모든 힘을 방출하라고 했지. 우리는 그를 도와 권력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계를 여는 영웅이 될 거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착각이었어. 우리는 그저 얼음 나비를 생산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지. 지금껏 이용당하고만 있었다고. 

 

 마법사는 핏발 선 눈으로 예신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예신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예신]

얼음 나비는 제게 닿는 모든 생명체를 소멸시키는 확실한 무기지. 제아무리 막강한 군대를 가진 군주라 해도 일음 나비의 무차별 공격을 당해내진 못해. 너희가 탄생시킨 얼음 나비는 모든 것을 파괴할 터. 너희가 그토록 증오하던 그 권력까지도. 그것이 너희가 진정으로 바라던 바 아니었나? 기만이라니,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지 모르겠군. 

 

 예신은 지극히 태연하게 상대를 조롱했다. 그의 의도를 금세 눈치챈 나는 마법사를 진정시카려 했다. 

 

[나]

기다려요! 저 말을 귀담아들으면 안 돼요! 

 

 아아, 한발 늦고 말았다. 분노를 참지 못한 마법사는 보석을 깨물어 버렸고, 순식간에 일음 나비떼로 변해 날아올랐다.

 예신은 오싹하리만치 여유로웠다. 그가 소환해낸 은빛 구체는 일음 나비떼를 전부 빨아들였다. 눈 하나 깜짝 않고 얼음 나비를 제압해버리다니! 실버나이트가 전지전능하다는 게 허언은 아니구나.

 

그는 많은 사람들을 구할 능력을 충분히 갖춘... 아니, 잠깐! 뭐지...? 뭔가가 좀 이상해!

 

 얼음 나비는 에르세르 대륙 전체가 직면한 역사적 재앙이다. 그리고 황실은 그 재앙을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고. 그런데 저토록 쉽게 얼음 나비를 제압할 수 있는 실버나이트는 어째서 로샤와 협력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무너뜨리려 하는 거지? 지난 여정의 마지막에서 내가 본 것은 실버나이트와 반란군이 황성을 습격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잠시 기절했다 깨어났을 때 중앙광장은 폭설과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다. 아아, 이제 알겠어! 실버나이트의 목표는 에르세르인들을 재앙으로부터 구하는게 아니다. 그는 이곳 사람들의 탈출을 막고 몰살시키려는 것이다! 

 

 

모든 것의 앞뒤가 맞는다.

예신이 계속해서 나를 피해왔던 이유는 그의 진짜 목적을 숨기기 위해서였나 보다. 전부 내 꿈과는 반대였다.

황제는 끔찍한 폭군이 아니었으며, 실버나이트도 고결하고 정의로운 영웅이 아니었다. 

 

[나]

당신이... 재앙을 부추기는 사람이었다니. 

 

나는 실버나이트가 아닌, 예신을 항해 말했다. 

 

[나]

예신, 당신은 나보다 먼저 이 두 세계를 오갔던 사람이군요. 반란세력을 집결하고 에르세르의 황실에 대항하는 것은 그저 겉포장일 뿐. 당신의 진짜 목적은 뭐죠? 예신, 아니... 당신은 대체 누구인가요? 얼음 나비를 이용해 에르세르를 무너뜨려서 대체 뭘 하려는 거죠?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질문을 그저 쏟아내기만 하는 동안, 내 마음은 조금씩 차가워졌다. 그가 끝내 대답하지 않을 것을 나는 안다. 대답을 듣는다 하여도 내가 이해하지 못하리란 것도 안다. 내 지난날이 전부 거품처럼 느껴졌다. 실소를 참을 수가 없었다. 

 

[예신]

허튼 생각 하지 마. 집으로 돌아가도록 해. 바래다줄게.

 

 예신의 목소리는 평온하기만 했다. 일상이라, 아무것도 모르고 살던 때가 그리웠다. 그러나 진실을 안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러니... 앞만 보고 가는 수밖에! 나는 이를 악물고 그림 소울을 소환했다. 예신은 더없이 차가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예신]

내가 지금껏 널 무서워서 피했다고 생각하니? 이 반란군 진영 한복판에서 소란을 피우면 누가 이길지 네가 가장 잘 알텐데.

 

[나]

그래요. 당신을 이기기 힘들다는 건 알아요. 그렇지만... 진작 포기하진 않을 거야!

'에르세르 대륙(完) > 아이리스의 장 (로샤)' 카테고리의 다른 글

14화. 병중진담  (0) 2024.02.12
13화. 틀어진 관계  (0) 2024.02.12
11화. 진실  (0) 2024.02.12
10화. 치자꽃의 기억  (0) 2024.02.12
9화. 재회  (0) 2024.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