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공생

2024. 1. 24. 19:17에르세르 대륙(完)/분쟁의 장 (아인)

 

 말 그대로 목숨을 건, 치열한 전투였다. 평범했던 내가 야생의 맹수들을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다. 그러나 방금 공부했던 기술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힘이 되어주있다. 몇 번의 고비를 넘긴 뒤로 나는 마침내 침착하게 늑대 무리를 제압할 수 있었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시험의 끝을 알리는 휘파람이 울리자 늑대 무리는 곧장 그 자리를 떠났다. 

 

[아인]

합격이다.

 그것도 칭찬이라고 잠시 기뻤지만, 애초에 나를 곤경에 빠뜨린 사람은 아인이었기에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나]

기습을 하다니! 비겁하잖아요! 

 

아인은 지그시 나를 바라보았다. 

 

[아인]

그래. 내가 기습할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 

 

 아아, 그러고 보니... 대답 없는 나를 보며 아인은 씩 웃었다. 

 

[아인]

적도 마찬가지야. 그들은 절대로 공격하기 전에 미리 알려주지 않아. 전투에 익숙해져야 해. 

 

[나]

전투보다 당신에게 익숙해지는 게 더 어려울 것 같은데요. 

 

 아인은 마음에 드는 말이라도 들은 듯 웃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인]

시간이 늦었으니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황궁으로 돌아가는 길, 아인은 마차 좌석에 기대 눈까지 감고서 편안하게 쉬었다. 그러나 나는 달랐다. 내가 마셨던 독약은 어찌 되는지 신경이 쓰여서였다. 온갖 것이 들어 있는 아인의 망토, 어쩌면 해독약은 그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 

 

[아인]

해독제는 여기 없어. 

 

 눈을 감고도 다 보이는 모양이다. 그나저나 어쩔 생각인 거야? 

 

[나]

곧 사흘이 돼요. 

 

 아인이 생각 없이 행동하진 않는다는걸 알지만,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아인]

죽음이 두렵나? 

 

 나는 가만히 내 목을 매만져보았다. 다가올 월계절과 지난번의 실패를 생각하니 불안감이 엄습했다. 아인은 눈을 뜨고서 가만히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인]

걱정 마. 널 죽게 두진 않을 테니. 

 

머릿속이 복잡했다. 

 

[나]

아인. 월계절의 강림 의식 때 로샤에게 복수할 생각인거죠? 

 

 월계절 당일 그가 중앙광장에 홀로 간 것은 아마도 강림 의식으로 경비가 허술해진 틈에 복수를 실행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그는 정체 모를 강한 적에게 가로막혔다. 다가올 미래는 모른 채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아인의 눈동자엔 강한 결의와 자신감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나]

그래요. 그러니 당신은 날 죽게 내버려두지 않겠죠. 나는 당신한테도 중요한 사람일 테니까요. 

 

[아인]

영리해서 마음에 들어. 그래. 중요하고말고. 너는 강림 의식의 제물이니까. 

 

 아인에게 이용당해도 괜찮다 생각했지만, 막상 그가 저렇게 말하니 서운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내가 다시 이 여정을 시작한 것은 내 세계와 이쪽 세계를 구하고, 동시에 아인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아인이 바라는 것은 오로지 복수와 응징뿐. 그의 눈에 그 외의 다른 것들은 전혀 보이지 않나 보다. 

 

[아인]

그놈에게 빼앗긴 것들을 모조리 가져올 거다. 기필코. 그날이 오면, 너에게도 주마. 모두 다시 내 것이 되면 그땐 네가 원하는 걸 주지. 뭐든지 다. 

 

 지난 여정에서 본 아인의 최후를 떠올리니 가슴 안쪽이 욱신거렸다. 나는 주먹을 꼬옥 쥐고서 나직이 말했다. 

 

[나]

내가 원하는 게 뭐냐고요? 당신이 살아남는 것. 

 

[아인]

뭐? 겨우 그게 다라고? 

 

나는 그의 눈동자 깊은 곳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선언하듯 말했다. 

 

[나]

네. 내가 원하는 건 에르세르의 황태자가 살아서 행복해지는 거예요. 

 

 어리등절해하던 아인이 돌연 활짝 웃었다. 저렇게 편안하게 웃는 그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아인]

그런 낮간지러운 소리를 잘도 하네. 좋아. 그 거장하고도 소박한 소원, 내가 이루어주지. 

 

 그는 가슴에다 주먹을 대 보였다 이쪽 세계에서 맹세를 의미하는 몸짓인 모양이다. 욱신거리던 가슴이 이번엔 두근두근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래, 나 역시도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 끝까지 노력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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