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무리한 요구

2024. 1. 24. 19:14에르세르 대륙(完)/분쟁의 장 (아인)

 아인이 준 옷으로 갈아입은 후, 나는 그를 따라 별궁 뒤편의 숲으로 갔다. 그는 모친 퓨에나 황후의 책을 들고 있었다. 

 

[나]

그건 또 언제 들고 왔대요? 

 

 그 책은 내가 묵고 있는 방 화장대에 놓여 있던 것이다. 아인이 가져온 줄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아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다. 

 

[아인]

뭔가 빼돌리는 건 일도 아니지. 너처럼 느슨한 사람이 상대라면 더욱더. 어느 날 나한테 소중한 걸 빼앗길지도 모르니 조심하라고. 

 

 어울리지 않게 짓궂은 농담에 나는 망토 것을 꼭 여미며 도끼눈을 떴다. 

 

[나]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아인은 스스로가 빼어난 전사임을 넘어서 상당히 좋은 선생님이기도 했다. 그는 책의 몇몇 부분을 짚어주며 반복해서 읽고 이해하라고 했다. 이 전투 요령들은 검술을 기반으로 했지만 내게도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설명했다. 

 

[아인]

어머니의 검술은 작은 체구와 약한 전투력으로 강한 적에 맞서는 게 특징이지. 정면승부를 피하며 효율적으로 싸우는 법. 너에게 딱 맞는 전술이야. 

 

 나는 작고 약하지 않다고 항의하고 싶었지만, 객관적인 평가인지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 

 아인은 책을 내게 쥐여줬다. 

 

[아인]

꼼꼼히 읽고, 모르는 게 있으면 나한테 물어봐. 

 

 칼바람 부는 야외는 공부하기에 썩 좋은 환경은 아니 었다. 너무 추운 나머지 집중도 잘되질 않았다. 

 

나는 두 뺨을 짝짝 때리며 졸 음 을 물리치려 이뻤다. 아인은 그런 나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 모습이 꼭 비웃는 것 같아 약이 올랐다. 억울하기 싫거든 실력부터 쌓으라는 뜻이겠지. 오기가 생긴 나는 무서울 정도로 집중력을 발휘했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나는 자신 있는 태도로 아인에게 책을 돌려주었다. 

 

[아인]

벌써 다 끝냈다고? 

 

[나]

이래 봬도 장학생이라고요. 다 외웠으니까 문제 내봐요. 

 

 내가 살벌하게 시험 치르며 살아온 세월이 얼마인데! 돌연 아인이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그가 이유 없이 다정한 미소를 짓는 인간이 못 됨을 아는 나로선 등골이 오싹해졌다.아니나 다를까. 그가 짧게 휘파람을 불었다. 뭔가에게 보내는 신호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기다렸다는 듯, 뒤쪽 산비탈에서 무시무시한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늑대 무리가 산비탈에서 나를 향해 미진 듯이 달려 내려오고 있었다. 

 

[나]

진심이야? 이런 시험이 어딨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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