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도박

2024. 1. 23. 12:47에르세르 대륙(完)/분쟁의 장 (아인)

 뭐, 뭐라고? 나는 당황해 내게 손을 뻗은 집행인을 제압해버렸다. 아인은 흥미로워하며 팔짱을 낀 채 구경 중이다. 그는 내가 자객을 상대하던 모습을 보았던 게 틀림없다. 돌연 아인이 한 손을 들자 집행인들은 일제히 공격을 멈췄다. 그는 부하들을 물리며 뚜벅뚜벅 내게 다가왔다.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이다. 알카이드가 한 발짝 나서 내 앞을 가로막았다. 

 

[알카이드]

사령관이시여, 방해가 되었다면 죄송합니다. 황제 폐하와 카이로스 예하의 명을 받들어 신녀님을 보호하는 중이니, 신녀님은 제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아인]

황제의 이번 인형은 이름도 특이하군.

 

 또 인형이라고 하네.

 

[나]

그 인형조차도 못 이기는 부하들을 거느린 귀하께선 장난감 병정의 두목인가 보군요. 

 

 알카이드가 나서려 했지만 한발 늦었다. 아인은 알카이드를 거칠게 밀쳐내고서 단숨에 내 코앞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똑바로 눈을 마주하며 팽팽하게 대치했다. 아아, 이게 아닌데. 아인과 잘 지내야 하는데.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 이대로 밀려날 수 없어 나는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나]

나와 대화할 의향은 있는 거죠? 

 

[아인]

내가 누군지 알면서도 이런 짓을 하다니. 상당히 무모하군. 

 

 그의 수신호에 집행인 부대는 즉각 골목을 봉쇄하고 나와 알카이드를 떨어뜨려놓았다. 아인은 내게 따라오라는 몸짓을 하며 돌아섰다. 몹시 걱정하는 알카이드를 안심시기고, 나는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막다른 골목의 안쪽엔 녹지 않은 눈이 단단히 다져진 채 쌓여 있었다. 그곳엔 나와 아인, 오직 둘뿐이 었다. 

 

[아인]

황제의 반려시여, 신과 대체 무슨 말씀을 나누고 싶으신지요? 황궁의 뜬소문? 아니면 무슨 보물이라도 훔쳐 그 너절한 인형 옷 속에다 숨겨 오셨나이까? 

 

[나]

나를 조롱해서 기분이 나아질 것 같으면 얼마든지 하세요. 다만, 황제의 지금 계획대로라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을 거예요. 당신도 마찬가지고. 

 

 아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나]

나는 얼음 나비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들을 구할 방법을 찾고 싶어요. 당신도 나와 같은 생각이라면 내 계획에 함께해쥐요. 

 

아인은 한동안 말없이 나를 관잘했다. 촉감마저 느껴지는 듯한 눈빛에 몸이 가늘게 떨렸다. 

 

[아인]

스스로를 굉장히 과대평가하나 본데,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감당할 수 있겠어? 

 

아인의 눈빛이 돌연 사나워졌다. 내 마음속 가장 깊은 곳을 파헤치려는 눈빛이었다. 

 

[아인]

좋아. 자신 만만한 걸 보니 뭔가 대단한 패라도 든 모양이군. 어디 한번 보여봐. 어서. 표정이 왜 그래? 있긴 한 거야? 

 

 아인의 조롱은 계속되었다. 그는 뭔가에 화가 나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대상이 무엇인지는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지난 여행을 돌이켜 보건대 황제의 수족이라던 집행인 부대 사령관임에도, 아인은 결코 황제의 절대적인 충신은 아니었다. 아인과 로샤 사이에 감정의 골이 존재하는 게 분명하다. 

 

 

나는 그의 가능성에 베팅하기로 했다.

 

[나]

원하는 걸 말해봐요. 궁전에서 당신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게 하죠. 예를 들면 로샤...

 

 말을 맺기도 전, 아인의 눈에서 시퍼런 불꽃이 탁 튀었다. 그는 도끼를 들어올리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내게 휘둘렀다! 도망질 곳이 없는 난 그림을 소환해 아인에게 맞서 싸웠다.

 

하지만 난 알고 있었다. 내가 그의 정곡을 찔렀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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