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R] 전쟁의 흔적 3화. 벌레의 심장

2024. 5. 19. 19:55이벤트 스토리- 2021/목표 전쟁 도시

다음 날


 나는 알카이드와 약속한 장소에 도착했다. 각자 장비를 확인하고 던전에 들어가려는데, 알카이드가 날 붙잡았다. 

 

[알카이드]

로지타, 어제 밤새웠지? 

 

[로지타]

아니에요...


 반사적으로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목소리의 떨림은 감추지 못했다. 

 

[알카이드]

목소리만 들어도 피곤한 게 느껴지는데. 정말 괜찮아? 


 조금의 비난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걱정이었다. 그 목소리에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로지타]

커뮤니티에서 공략을 좀 찾아봤어요. 다만 공략이 조금 엉망이라 정리하는 데 시간이 걸린 것뿐이에요. 내가 클리 어해 주겠다고 약속했잖아요...


 사실 별일이 아니었지만, 내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다 못해 마지막에는 나조차 뭐라고 말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를 걱정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알카이드가 내 손바닥 위에 자신의 손을 살며시 올렸기 때문이다. 나에 대한 그의 믿음이 느껴졌다. 알카이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온전히 날 믿고 있었다. 

 

[로지타]

그... 선배! 로딩이 끝난 것 같은데...


 쓸데없는 걱정이지만, 힘차게 요동치는 심장 소리를 감추기 위해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알카이드가 작게 웃었다. 헤댔을 통해 들려온 따스한 웃음소리가 그대로 내 귀를 파고들자, 심장이 위험할 정도로 빨리 뛰기 시작했다. 

 

[알카이드]

로지타, 안 가? 


 넋 나간 나를 부르는 그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나는 다시 모든 정신을 던전에 집중했다. 알카이드에게 클리어하게 해준다고 약속했다. 겨우 웃어준 걸로 멍하니 여기서 끝낼 수는 없지! 숨을 깊게 들이마신 나는 앞장서서 던전에 들어갔다. 


-


 황량한 폐허가 눈앞에 펼쳐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번 랜덤 지형이 어떤 건지 대충 알 것 같았다. 공략에 적힌 대로, 던전 입구부터 위험이 가득했다. 저 멀리 보이는 회색 그림자는 벌레의 사체였다. 여길 처음 온 대다수의 플레이어는 그저 일반적인 사체로 생각해 경계를 풀곤 한다. 하지만 사실상 저 사체는 중간 보스다. 녀석들을 잡는 건 필수가 아니기에 그냥 적당히 피해 가면 된다. 하지만 사체들 탓에 길이 막혔다. 어떻게 피해가나 고민하고 있는데, 고개를 돌려보니 알카이드가 사체 코앞까지 다가가 있었다. 

 

[로지타]

선배, 조심...


 목이 막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알카이드가 허리를 숙이더니 사체 사이에서 뭔가를 주웠다. 그의 손가락 사이로 희미한 붉은빛이 새어 나왔다. 전투 돌입 메시지는 뜨지 않았다. 이내 알카이드가 손에 뭔가를 쥐고 내게 돌아왔다. 그리고는 내게 손을 펼쳐 보였다.


 조금 전에 봤던 붉은빛은 착각이었던 걸까, 그의 손에 있는 건 검은 돌이었다. 조금씩 금이 가 있는 곳엔 눈에 잘 띄지 않는 파란색 무늬가 있었다. 내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점은 이내 그의 설명을 듣고 사라졌다. 

 

[알카이드]

벌레의 심장이야. 특정 고급 무기를 제런할 때 쓰는 무척 희귀한 재료지. 

 

[로지타]

심장이요? 게임 설정상 벌레에게는 심장이 없는 줄 알았는데. 

 

[알카이드]

맞아. 하지만 녀석들이 스스로를 동료에게 제물로 바칠 경우 그들의 사체에 이런 결석이 생겨. 체내에서 빼낸 직후에 결석에서 심장과 비슷한 붉은빛이 나서 벌레의 심장이라고 부르지. 이런 재료는 대부분 녀석들의 제사가 진행되는 곳에서만 볼 수 있어. 


 벌레에 관한 소개가 거의 없다 보니, 녀석들에게서 나은 고급 재료를 구분할 수 있는 이는 더욱 드물었다. 그렇다고 알카이드의 말을 의심하는 건 아니었다. 레벨이 높은 고고학자가 이런 걸 판별해 내는 게 이상한 건 아니었으니까. 

 

[로지타]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알카이드]

왜 그래? 

 

[로지타]

 공략대로라면 벌레의 사체는 살아 있는 몬스터고, 녀석들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플레이어를 공격하는 게 맞다. 알카이드의 손에 놓인 검은색 돌을 보던 나는 잿빛 사체로 시선을 돌렸다. 심장도 사라졌고 움직이지도 않는 걸 보니 완전히 죽은 모양이다. 의아해하는 날 보며 알카이드가 상냥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알카이드]

제물로 바쳐서 목숨을 잃은 녀석들은 다시 살아나지 않아. 그래서 그런 선택을 하는 녀석들이 잘 없지. 


 나는 알카이드를 쳐다봤다. 원래대로라면 위험했을 사체는 조용히 그의 뒤에 널브러져 있었다. 알카이드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부드럽게 웃었다. 

 

[알카이드]

이번에는 우리가 운이 좋았던 모양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