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마법사의 비밀

2024. 3. 1. 22:35에르세르 대륙(完)/전승의 장 (카이로스)

[호레스]

크윽! 예하, 저 좀 도와주십시오...! 

 

[카이로스]

마탑에서는 어떤 욕망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했지. 집념이 강하기만 하다면. 이번엔 이세계 신녀의 집념이 더 강한 듯 하군.

 

 호레스를 손봐주고 나니,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것만 같았다. 바닥에 쓰러진 재 끙끙거리는 호레스를 외면하고서 나는 카이로스를 돌아봤다. 

 

[나]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실은, 지난 여정에서 마법사가 얼음 나비로 변하는 걸 여러 번 목격했어요. 마법사와 얼음 나비에 뭔가 비밀스럽고 밀접한 관계가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내 추측이 맞나요? 

 

카이로스는 침묵했다. 하긴, 마법사의 비밀을 선뜻 답해줄 리 없지. 

 

[나]

주제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조금이라도 더 단서를 찾고 싶어요. 제발 도와줘요, 카이로스. 아니, 예하.

 

[카이로스]

여전히 말이 많군. 따라와라. 

 

우리는 계단을 따라 한참을 걸어 내려갔다. 카이로스가 나를 데려간 곳은 마탑의 가장 깊숙한 지하였다. 

 

[???]

으윽...

 

[???]

아악! 으아아악! 

 

 어두운 복도엔 여기저기서 새어나온 비명과 신음이 메아리처럼 울리고 있었다. 지옥이 이러할까. 

 

[카이로스]

이곳은 지하감옥이다. 

 

 카이로스는 육중한 철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엔 신체 일부가 얼음 결정화 되고 있는 마법사들이 무거운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 

 

[마법사]

크아악!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그들의 몸부림에 단단한 쇠사슬이 일부 끊어지기도 했다. 양팔을 벌린 채 매달려 있는 마법사들은 거미줄에 붙잡힌 나비처럼 보이기도 했다. 

 

[카이로스]

네가 추측했던 대로다. 마법사와 얼음 나비 사이엔 밀접한 관련이 있지. 엄밀히 말하자면, 얼음 나비의 근원이 바로 마법사다. 마법사가 되기 위해 먹는 약은 인간의 감정과 정신력을 극한까지 자극해 마력을 끌어내지. 그렇게 끌어낸 마력엔 한계가 있어서, 계속해서 쓰다 보면 정신력에 변화가 생긴다. 정신력을 상실하면 마력이 폭주해 몸을 통제할 수 없게 되고, 그 마법사는... 결국엔 얼음 나비로 변하고 만다. 

[마법사]

으아아아악! 

 

 카이로스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 한 마법사가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그의 몸은 곧장 새하안 얼음 결정으로 뒤덮였다. 

 정말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는 우리가 보는 앞에서 여러 마리의 얼음 나비들로 변해버렸다. 카이로스가 손을 들자 눈앞이 하얗게 밝아졌다. 얼음 나비들은 그 빛 속에서 너무도 허무하게 사라져버렸다. 카이로스의 눈에선 그 어떤 고통이나 연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일이 그에게는 일상이나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하니 몹시 안타까웠다. 그는 나를 돌아보며 나직이 말했다. 

 

[카이로스]

그래. 이것이 바로 마탑의 비밀이다. 여기선 날마다 마법사가 죽어나가. 보통의 마법사는 작은 얼음 나비가 되어 날아다니다가 다른 마법사들에게 쉽게 제거되지만... 강한 마력을 지닌 마법사들은 거대한 얼음 나비로 변하지. 

 

 카이로스가 다른 문을 여는 순간, 안에서 거대한 얼음 나비가 쏜살같이 튀어나오더니 내게로 달려들었다. 또야? 카이로스, 이 알미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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