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감도 5. 산 정상으로

2024. 5. 15. 23:25호감도 이벤트

 별은 어두운 밤하늘에만 나타나지만, 알카이드는 내가 햇살 아래 딸기 아이스크림을 쥐고 있을 때도 나타난다.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불빛, 불빛이 끼진 후의 별, 그리고 밤하늘 아래 알카이드 선배의 눈. 

학교 축제에 함께 같이 별구경 가자!” ”좋아, 같이 가자.” 

다음 계절, 그다음 계절, 그 언제쟬을 보러 와도 여긴 같은 하늘일텐데, 내 곁에도 같은 사람이 있겠지? 

 

[남학생 1]

​시원한 카페, 신메뉴 출시 기념으로 선착순 서른 분께 무료 음료를 제공합니다! 빨리 오세요! 


​[여학생 1]

​클래식 음악회 티켓 절찬 판매 중! 화제의 동아리 비바체 클럽과의 연합 공연입니다! 

 

[남학생 2]

​공포 연극 〈최후의 색소포니스트〉가 세인트 셀터를 찾아왔습니다! 

 

[남학생 3]

​코믹과 공포와 비극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걸작! 지금 놓치면 1년을 기다려야 해요! 어서 예약하고 가세요! 


​[로지타]

으으, 다음에 할게요...


 연극부원의 열정적인 홍보를 피해 나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 내 가장 큰 관심사는 손에 들고 있는 이 딸기 아이스크림뿐. 
축제라면 역시 군것질거리지! 

 매해 세인트 셀터 학원은 사흘에 걸쳐 문화제를 연다. 오늘은 축제 첫날이라 다들 들떠 있었다. 학과마다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각자의 개성과 특기를 뽐내고 있다. 미술과의 테마 전시관 역시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붐비는 중이다.

 별다른 일정이 없어 나는 스케치북을 들고서 캠퍼스 안을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그림 소재가 곳곳에 가득했다. 문득 알카이드 선배가 떠올라 둘러보니, 천문학과는 보이질 않는다. 천문학과의 이벤트 장소는 천문대인가 보다. 

 천문학과에 한번 들러볼까? 나는 별을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에, 천문학과 이벤트를 꽤나 기대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스크림 맨 윗부분을 핥으며 걸음을 옮겼다. 바로 그때. 


'찰칵!'

 

[로지타]

어어? 선배! 


 카메라를 들고 나를 향해 웃는 사람은... 바로 알카이드 선배였다. 


[알카이드]

허락 없이 찍어서 미안. 하지만 놓치고 싶지 않았어. 


 알카이드는 만족한 듯 카메라를 챙기며 내게 윙크했다. 

 

[알카이드]

로지타, 축제는 어때? 재미있어? 

 

[로지타]

네! 맛있는게 정말 많네요.


 지나치게 솔직한 내 대답에 알카이드는 담담히 웃었다.

 

[알카이드]

맛있는 게 그렇게 많다니, 나도 먹어보고 싶은걸? 로지타, 안내 부탁해도 될까? 


 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로지타]

그럼요! 


 인파를 뚫고 지나갈 때, 알카이드는 내가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도록 막아주었다. 간식 거리를 사 들고서, 우리는 마주 웃었다. 순간, 잊고 있던 것이 떠올랐다. 

 

[로지타]

참, 알카이드 선배! 천문학과 이벤트는 학과 건물에서 단독으로 진행하나요? 한참이나 찾았는데 안 보이더라고요. 

 

[알카이드]

으음. 천문학과는 문화제에 참가하지 않는데. 로지타, 몰랐구나? 

 

[로지타]

네? 왜요? 

 

[알카이드]

문화제는 낮에 진행되는데, 낮엔 별을 볼 수가 없잖아. 관련 지식 계통으로 뭔가 하려고 해도 학술회가 되어버리니 지루할테고. 


 아아, 너무해. 알카이드의 말투가 너무 평온해서 더 슬펐다. 

 

[알카이드]

로지타, 천문학을 좋아해? 


 알카이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활짝 웃으며 물었다. 

 

[알카이드]

로지타, 나랑 별 보러 갈래? 

 

[로지타]

네? 정말요?


 잔뜩 기대하는 눈으로 올려다보자, 알카이드는 부드럽게 미소 지 었다. 

 

[알카이드]

저녁 8시. 천문대 앞 광장에서 기다릴게. 


 알카이드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오늘따라 하늘은 높고 구름 한 점 없다. 

 

[알카이드]

하늘도 로지타 편인가 보네. 오늘은 별이 잘 보일 거야. 


 아아, 정말 기대된다. 


-


 축제의 저녁 이벤트가 끝나자 사람들은 모두 돌아갔다. 희미한 가로등이 텅 빈 캠퍼스를 밝혔다. 

 알카이드와 약속한 저녁 8시, 나는 등산하기 편한 차림으로 천문대를 찾았다. 약속장소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알카이드는 가방에서 벌레 퇴치 스프레이를 꺼내 내게 뿌려주었다. 

 

[알카이드]

산에는 모기가 많으니까 조심해두는 게 좋아. 

 

[로지타]

고마워요, 선배. 


 세심한 알카이드가 있어 무척 든든했다. 등산 준비를 마친 우리는 함께 뒷산을 올랐다. 


-


 산길엔 희미한 달빛에 비진 그림자가 일렁였다. 밤 산행은 처음이지만, 알카이드가 손전등으로 앞을 비춰주고 능숙하게 가이드해준 덕에 무섭진 않았다. 산길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험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느낌이었다. 

 

[알카이드]

로지타, 조금만 더 힘내. 거의 다 왔어. 


 얼마나 걸었을까, 슬슬 체력의 한계에 달했다. 알카이드는 몇 번이나 걸음을 멈추고 나를 기다려 주었다. 그는 단 한 번도 나를 재촉하거나 짜증내지 않았다. 그런 그는 늘 한자리를 지키며 밝은 빛을 비취주는 별을 연상케 했다. 앞에 뭔가 있었는지, 알카이드가 돌연 발을 멈췄다. 제때 서지 못한 나는 그의 등에 가법게 부딪쳤다. 

 

[로지타]

아!


알카이드는 얼른 나를 부축했다. 

 

[알카이드]

괜찮아? 

 

[로지타]

아, 네. 

 

[알카이드]

지금부터는 길이 험해지니까 조심히 잘 따라와. 


 알카이드는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달빛을 머금은 그의 옅은 금발이 산바람에 나부꼈다. 그는 내 손을 잡고서 내 속도에 맞취주었다. 

 

[알카이드]

힘들었지, 로지타? 다 왔어. 


 어느덧 산 정상에 도착했다. 세인트 셀터 학원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알카이드]

이쪽으로 와. 


 알카이드가 가리킨 산기슭 아래엔 셀레인 섬 시가지와 해변 풍경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건물의 조명들이 마치 밤하늘의 별무리 같았다. 

 

[로지타]

와아, 예뻐요! 

 

[알카이드]

아름답지? 네게 세인트 셀터의 다른 모습도 보여주고 싶었어. 

 

[로지타]

선배는 여기 많이 와봤나봐요?

 

[알카이드]

그래, 하지만 올 때마다 매번 느낌이 달라. 

 

[로지타]

똑같은 풍경인데도요? 

 

[알카이드]

모든 아름다운 순간은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이야.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으니까. 


 맞는 말이다. 그림을 그리는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같은 풍경을 보고 같은 감동을 받는다 해도, 똑같은 그림을 두 번 그릴 수는 없는 법이다. 멋진 풍경, 뜻깊은 추억을 알카이드로부터 선물받은 기분이다.

 10시가 지나자 셀레인 섬 시가지의 등불들이 차례로 꺼졌다. 기분 탓인지 바람이 차게 느껴졌다. 그때 어깨 위로 따뜻하고 포근한 감각이 내려앉았다. 알카이드가 내게 제 옷을 둘러 준것이었다. 

 

[알카이드]

밤엔 제법 쌀쌀하지. 


 알카이드의 가디건은 무척 커, 긴 소매가 공중에서 덜렁거렸다. 그런 내 모습이 우스웠는지, 알카이드는 한참이나 웃었다. 

 

[로지타]

어두워졌으니 이제 별이 보일까요? 

 

[알카이드]

응. 그럼, 슬슬 시작해볼까? 로지타, 손전등 꺼도 되겠지? 

 

[로지타]

응, 나는 준비 다 됐어요! 


 '딸깍' 소리와 함께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내려앉았다. 알카이드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겁이 덜컥 났다. 

 

[로지타]

알카이드 선배...! 

 

[알카이드]

괜찮아, 나 여기 있어. 


 알카이드의 목소리는 아주 가까웠다. 그의 기척에 금세 안심이 되었다. 

 

[알카이드]

조금 기다리면 곧 어둠에 익숙해질 거야. 


그의 말대로, 잠시 후 주변의 사물들이 희미하게 분간되기 시작했다. 

 

[알카이드]

로지타, 저길 봐. 


보인다! 남색 하늘에 하안 별들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별이 이렇게 밝을 줄이야. 광공해로 가려지지 않은 별들은 반짝반짝 빛나는 다이아몬드 같았다. 

 

[알카이드]

로지타, 견우와 직녀 이야기 알지? 

 

[로지타]

당연하죠! 견우와 직녀는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헤어져 있다가 칠월칠석 날 까마귀와 까치가 놓은 오작교를 건너 만나잖아요. 

 

[알카이드]

 저기 저 별이 거문고자리의 알파인 '베가', 바로 직녀성이야. 그리고 저게 독수리자리의 알파성인 '알타이르', 즉 견우성이지. 

 

[로지타]

우와, 그렇구나! 


 알카이드의 손가락을 따라 별을 찾으며, 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가슴이 설렜다. 친절한 별자리 강의는 한참이나 이어졌다. 얼마나 재미 있는지, 깊이 빠져들어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어느새 밤이 깊었다. 

 

[알카이드]

이렇게 별이 밝은 날은 오랜만이야. 네가 온 걸 반겨주나 보네. 

 

[로지타]

​앗, 그거 영광인데요! 

​ 알카이드는 또 한 번 보기 좋은 미소를 지었다. 

 

[알카이드]

슬슬 돌아갈까. 

 

[로지타]

​아쉬워서 발걸음이 안 떨어질 것 같아요. 

 

[알카이드]

​이 밤하늘을 영원히 붙잡아둘 방법이 있어. 


​알카이드는 가방에서 DSLR 카메라 장비들을 꺼냈다. 

 

[로지타]

​선배 가방엔 뭐가 진짜 많이 들었네요. 엄청 무거워 보여요. 

 

[알카이드]

​혼자 멀리까지 다니는 습관이 돼서 그런가 봐. 언제든 돌발상황에 대비해야 하니까. 

​ 알카이드는 능숙하게 삼각대를 설치하고 카메라 시스템을 세팅했다. 복잡한 장비를 진지하게 다루는 그의 모습은 언제 봐도 멋지다. 

 

[알카이드]

​조리개 값을 낮춰서 별빛을 많이 붙잡을 수 있게 하고... 감도는 높이고 셔터 스피드를 늘리면 어두운 곳에서도 별을 찍을 수 있지. 셔터 스피드가 지나치게 길어도 안 돼. 별은 빠르게 움직이니까. 

​ 나는 긴장하며 결과물을 기대했다. 

 

[로지타]

잘 찍힐까요..

​알카이드는 대답 없이 미소만 지은 채 사진을 찍었다. 

 

[알카이드]

​확인해보자. 

 

[로지타]

좋아요!


​ 알카이드가 내게 카메라를 건넸다. 조금 전의 밤하늘이 작은 네모 안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로지타]

......

 

[알카이드]

​어때? 실패야? 

 나는 잔뜩 감동해 고개를 힘껏 저었다. 

 

[로지타]

​선배, 너무 멋진 경험이에요! 정말 고마워요! 

 알카이드는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알카이드]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경험을 나눠주고 싶은데... 사진은 내일 현상해서 줄게. 

 

[로지타]

​액자에 넣은 뒤 집에서 제일 잘 보이는 곳에 둘 거예요! 

 

[알카이드]

​ 돌아가는 길에도 나는 쉽사리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고, 알카이드는 그런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묵묵히 곁을 지켜주었다. 


​-

다음 날

 

[로지타]

자, 완성이에요. 

​[여학생]

​우와, 세상에! 너무 귀여워요! 고맙습니다! 

 

[로지타]

천만에요. 그럼 다음 분...

 문화제 둘째 날, 나는 미술과 이벤트 중 무료 캐리커처 쪽에 배정되었다. 내 캐리커 처는 금세 입소문을 타, 부스 앞의 행렬이 줄어들지를 않았다. 

[???]

우리 로지타, 인기 폭발이네. 

 

[로지타]

앗, 알카이드 선배! 여긴 웬일이에요? 

 

[알카이드]

웬일이라니? 네 그림 얻으려고 오래도록 줄 서 있었는데. 

 

[로지타]

나중에 따로 그려주면 되는데 말을 하지...

 알카이드가 내 앞에 앉는데, 긴장되고 식은땀이 났다. 그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는 게 처음도 아닌데도 말이다. 바로 앞에서 뚫어져라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알카이드를 보니 괜스레 어색하고 기분이 묘했다. 

 

[로지타]

저기, 선배. 옆으로 돌아앉는 게 좋겠어요. 

 

[알카이드]

왜?

 

[로지타]

그리는 사람 맘이죠. 

 

[알카이드]

그래? 그렇다면...

 알카이드가 빙긋 웃으며 돌아앉자 여기저기서 여학생들의 감탄이 새어나왔다. 왠지 더 신경 쓰이는데. 

 

[로지타]

완성!

 캐리커처를 건네받은 알카이드는 무척 만족한 듯 환하게 미소 지었다. 

 

[알카이드]

정말 멋지네. 고마워. 그리고 이건 보답. 

 그가 내민 서류봉투에서 커다란 사진을 꺼내자 주변에서 웅성거렸다. 

[여학생 1]

별 사진이네? 와아, 진짜 예쁘다! 

 예쁘고 신기하다며 감탄하고 부러워하는 사람들을 보니 괜스레 뿌듯해졌다. 나는 가만히 알카이드를 바라봤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경험을 나눠주고 싶다던 알카이드.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로지타]

선배! 좋은 생각이 있어요! 

뒤에서 누군가가 재촉하고 있어, 나는 다급하게 덧붙였다.

 

[로지타]

이따가 화실에서 만나요! 

​-

 일정을 마치자마자 나는 바로 화실로 달려갔다. 

 

[알카이드]

천천히 와도 되는데 뭐가 그렇게 급해? 

 

[로지타]

선배, 선배! 모두에게 별을 보여줘요! 선배의 가이드에 따라 다 함께 산에 올라 별을 구경하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에게 경험을 나눠주고 싶다고 했잖아요. 어때요, 

 

[알카이드]

그거 좋은 생각이네. 

 

[로지타]

아, 혹시 너무 막무가내라 싫으면 편하게 거절해도 돼요. 

 

[알카이드]

무슨. 내가 꿈뀌왔던 일인걸. 로지타 덕분에 이룰 수 있게 됐으니 고맙지. 

 

[로지타]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알카이드는 잔뜩 들떠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나를 시종일관 따스한 미소로 대해 주었다. 

 

[알카이드]

일단 홍보물을 만들어야겠네. 

 

[로지타]

그건 제게 맡기세요. 

 나는 서둘러 간이 홍보물 카드와 포스터를 만들었다. 내가 작업에 열중하는 동안 알카이드는 큰 가방에서 이런저런 책과 자료들을 꺼내 내일 일정을 짰다. 

 

[로지타]

일단 이 정도면 될 것 같아요! 

 집중한 덕인지, 빠른 속도로 홍보카드 수십 장을 완성했다. 

 

[알카이드]

예쁘다. 문구는 뭐라고 썼어? 

 

[로지타]

'함께 별빛 산책 가실래요?' 

내가 홍보물의 문구를 또박또박 읽자, 알카이드가 대뜸 대답했다 

 

[알카이드]

좋아요, 같이 가죠! 

 우리는 마주 보고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로지타]

정말 기대돼요! 같이 힘내요, 선배! 

 내일의 일기예보 '맑음'. 

​-

대망의 그날

​ 나는 캠퍼스를 누비며 알카이드와 홍보가드를 돌렸다. 문화제도 어느덧 막바지라 우리가 준비한 이벤트는 모두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여학생 1]

​7시에 천문대 앞으로 가면 되는 거죠? 

 

[로지타]

​네, 맞아요. 

[여학생 2]

​행사 진행은 누가 해요? 

 

[알카이드]

​제가 직접 할 거예요. 잘 부탁합니다. 

[여학생들]

​저요, 저요! 꼭 참가할게요! 

 

[알카이드]

​운동화는 필수, 산 위는 추우니 외투를 준비 하세요. 손전등과 물도 챙기고요. 

 

[여학생들]

네!

 

[로지타]

알카이드 선배는 정말 만인의 연인이네요.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나를 그가 빤히 내려다봤다. 그러더니 몸을 숙여 내 귓가에 속삭였다. 

 

[알카이드]

나는 지조 있는 사람이라, 만인이 아닌 단 한 사람만의 연인이고 싶은데. 

 돌연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무슨 뜻인지 묻는 눈으로 돌아봤지만, 그는 천연덕스럽게 미소 지을 뿐이다. 

 

[로지타]

아, 저, 저는 저쪽을 맡을게요. 

 알카이드의 목소리는 그 후로도 한참 동안이나 머릿속에 울렸다. 예상 외로 사람들이 별구경에 많은 관심을 보여, 준비해온 홍보 카드는 금세 동이 나고 말았다. 

-

 나는 일찌감치 천문대로 나갔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타날 때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참가 인원은 점점 늘어나 사방이 북적거렸다. 드디어 알카이드가 나타났다. 등에 평소보다 한층 무거워 보이는 '보물상자'를 지고서 말이다. 

 

[로지타]

선배, 왜 이렇게 늦게 와요! 

 

[알카이드]

미안, 이것저것 준비하다 보니 조금 늦었네. 내가 안 올까 봐 격정했나 보구나. 

 알카이드는 참가자들에게 안전수칙을 고지했고, 8시 정각에 산으로 출발했다. 

-

 산 정상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모두 지쳐 자리에 주저앉았다. 알카이드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주변에 설치했다. 

[여학생 1]

앗, 저기 봐! 

 나뭇잎 사이로 작은 불빛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알카이드가 준비 해 온 캠핑용 알전구 조명이었다. 부드럽고 따스한 빛이 주변을 물들이고 있었다. 

 

[여학생 1]

우와, 정말 예쁘다...! 

 

[여학생 2]

낭만적이야...

 산불 걱정 없이 간단하게 분위기를 살리는 방법이다. 역시 알카이드. 센스 있어. 

 

[알카이드]

조금 쉬었다가 시작할게요. 질문은 언제든 환영입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주저하지 말고 불러주세요. 

 알카이드의 목소리와 태도에는 독특한 온화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없는 그만의 매력이었다. 이렇게 있으니 캠핑이라도 온 것 같았다.

 황량한 산꼭대기는 어느덧 활기로 가득했다. 사람들의 질문에 상냥하게 답해주고 있는 알카이드는 굉장히 기뻐 보였다. 나는 그런 그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짓궂게도, 주변의 누군가가 귀신 이야기를 시작했다. 무서운 이야기 질색인데! 조명이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선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공교롭게도, 배터리가 다 됐는지 알전구 조명까지 깜박이다 꺼져버렸다. 공포에 질린 나는 다짜고짜로 옆 사람을 붙잡았다. 

 

[알카이드]

로지타, 괜찮아 ? 

 

[로지타]

선배! 

 

[알카이드]

그래, 나야. 

 언제 왔는지, 알카이드는 내 곁에 앉아 있었다. 가슴이 조금 진정되고 난 후에가 내가 그의 팔뚝을 꽉 붙잡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화들짝 놀라 손을 거두자 알카이드는 나를 안심시키고 일어나 사람들 사이로 걸어갔다. 

 

[알카이드]

시작할 시간이 되니까 알아서 조명이 꺼지네요. 빛이 없어도 주변을 보는 데는 지장이 없을 거예요. 

 

[여학생 1]

와, 진짜네...

모두 각자 편한 자세로 하늘을 올려다보세요. 바닥에 누울 분들은 옷이나 매트를 깔도록 해요. 감기 들지 않도록. 

 

[여학생 2]

아아, 알카이드 선배는 정말 다정해. 

 

[여학생 3]

어쩜 저렇게 믿음직스럽고 멋질까. 

 주변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왠지 불편했다. 나는 공연히 심통이 나 바닥에 아무렇게나 드러누워버렸다. 광활한 밤하늘이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있다. 손을 뻗으면 우주에 닿을 것만 같았다. 

 

[알카이드]

저기 뚜렷하게 보이는 은빛 강이 바로 은하수랍니다. 순우리말로는 미리내. 바로 우리 지구가 속해 있는 은하의 모습이죠. 상상해보세요. 저 별들 어딘가에 우리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사는, 또 다른 세계가 있을지도 몰라요. 

[남학생 1]

정말 신비롭다. 

 

[남학생 2]

별이 원래 저렇게 밝았구나. 

 모두 어린아이로 돌아간 듯 초롱초롱 눈을 빛내고 있었다. 내가 알카이드에게서 받았던 선물, 이 감동을 많은 사람들에게도 맛보게 해주고 싶었다. 계획은 대성공이었다. 알카이드의 흥미롭고 친절한 강의가 끝나자, 모두들 아쉬움에 한숨을 내쉬었다. 

 

[로지타]

​정말 굉장했어요! 알카이드 선배, 이거 내년에도 꼭 하셔야 해요! 


​ 알카이드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알카이드]

​내년 문화제에도 함께해요. 학교에 제안서를 올려서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볼게요. 

 봄바람처럼 온화한 사람, 알카이드. 알카이드와 나는 대열의 맨 뒤에서 하산했다. 내내, 그는 수시로 사람들의 안전을 살폈다.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더할 나위 없었다. 

 

[로지타]

제가 괜한 짓을 해서 선배가 고생한 건 아닌지 걱정이네요. 

 

[알카이드]

무슨 소리야? 네 덕분에 나도 정말 즐거웠어. 솔직히... 너와 함께해서 좋았던 거지. 

오늘 밤을 나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로지타]

종종 둘이서 별 보러 와요, 선배. 

 

[알카이드]

그거, 데이트 신청이라고 생각해도 되는 거지? 

 

[로지타]

안 될 거 있나요? 그것도 좋죠. 

 나는 떨고 있다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일부러 그를 똑바로 마주 봤다. 

 

[알카이드]

약속해. 

 

[로지타]

네? 뭘요? 

[알카이드]

방금 한 말, 절대 바꾸지 않기로. 약속. 

 바다 냄새를 품은 미지근한 밤바람이 우리 사이를 스쳤다. 새끼손가락을 걸고서 가만히 흔드는 우리 머리 위로는 찬란한 별들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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