ろ_ 2024. 1. 3. 00:06

 목걸이는 예신이 내게 준 증표였다. 그리고 예신은 요정의 숲에서 나를 이끌어주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후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떠나겠다고 한 건 예신이었지만, 실제로 고향을 떠난 건 나였다. 그것도 아무런 기억도 없이 마법 공방에 와 있다니. 
 난 어떻게 예신과 헤어지게 된 걸까. 검은 안개가 피어오르더니, 수정 목걸이의 기억이 다시 펼쳐졌다. 
 
-
 
난 예신을 위해 숲의 연회를 준비했다. 연회가 열리기 전날, 예신과 어릴 때 자주 가던 숲에서 만나기로 했다. 겹겹의 덩굴 숲을 지나자 나풀대는 꽃과 풀, 맑고 차가운 시냇물이 눈에 들어왔다. 

시냇물에 손을 담그고 있던 예신이 고개를 들었다. 때마침 다람쥐 한 마리가 쪼르르 지나갔다. 
 
[예신]
네가 아직도 여길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어. 
 
[나]
잊었을 리가요... 어렸을 때 혼자 오두막에 숨어 있는데, 예신이 문을 두드렸죠. 내가 다른 사람이 못 찾는 곳으로 가야 한다고 했더니, 예신이 날 이곳으로 데려와줬잖아요. 정말 아무도 날 못 찾았죠. 
 
우리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따사로운 햇살이 우리를 과거의 추억 속에 흠뻑 빠져들게 했다. 곧 헤어지게 될 미래 따위,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예신]
네가 놀다 치쳐서 이 나무 아래서 졸았던 게 기억난다. 
 
[나]
...내가 처음으로 예신의 무릎을 베고 잤던 날이죠. 이 나무 아래서 예신이 요정 마법도 가르쳐 줬잖아요. 그리고... 내 손목을 잡고 요정의 룬도 하나씩 가르쳐줬고요.
 
고개를 숙여 내 손목을 바라보던 나는 왼손으로 오른손을 잡았다. 
 
[나]
그때, 예신이 여길 잡았어요. 나한테 가르쳐줬던 거,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 전부 잊지 않았어요. 
 
난 어릴 때처럼 예신에게 다가가 살며시 그의 소맷자락을 잡았다. 
 
[나]
예신, 정말... 날 위해 여기 남아줄 순 없어요? 
 
내가 그의 소매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다가오지도 물러서지도 않은 채 가만히 내 앞에 서 있었다. 한참 후, 그가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예신]
내가 계속 네 옆에서 비바람을 막아주는 건 너에게도, 나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야. 넌 앞으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일을 겪게 될 거야. 그렇게 이 세상은 아주 넓다는걸 알게 되겠지. 내가 너와 함께 걷는 여정은 아주 짧은 순간에 불과해. 우리 운명은 그렇게 정해져 있어. 
 
나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
알았어요. 이런 슬픈 이야기는 일단 접어두죠. 
 
난 가만히 손을 내밀어 예신의 손가락을 잡았다. 
 
[나]
예신, 내일 연회는 내가 잘 준비할게요. 
 
-
 
 어느덧 연회 당일이 되었다. 난 각 종족의 사절단을 숲으로 초대했다. 
 연회장은 내가 직접 꾸몄다. 자연을 승상하는 요정들이 이렇게 성대한 연회를 여는 건 드문 일이다. 연회장은 요정의 숲에 자라는 온갖 꽃들과 인간 세상의 화려한 장식들로 가득했다. 술과 과일이 모두에게 나뉘졌다. 그러나 연회의 주인공만은 떠들썩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고 혼자 있었다. 
 
[나]
이거 기억나요? 예신이 나한테 담그는 법을 가르쳐줬던 과실주예요. 한 잔 마셔요. 
 
 내가 예신에게 술을 권하자, 그는 날 쳐다보며 한 입에 털어넣었다.  연회가 끝난 뒤, 예신은 뒷문으로 조용히 나갔다. 그는 늘 주목받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의 삶이자 그의 선택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나도 내가 원하는 걸 선택했다. 문 앞에서 기절해 쓰러져 있는 예신을 살며시 부축했다. 의식을 잃은 예신의 몸이 온전히 내 어깨에 실렸다. 난 그가 가르쳐준 부유 마법을 시전해, 어둠 속에서 날 따라오게 했다. 
 
[나]
예신은 이미 먼 길을 떠났어요. 연회에 참석하신 여러분이 모두 그 증인이죠. 
 
연회에 참석한 모두가 예신이 이미 떠났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니 연회가 끝나면... 아무도 그를 찾지 않을 것이다. 
 
[예신]
음....? 지금 몇 시지? 
 
[나]
아직 날이 밝지 않았으니 더 자도 돼요. 
 
[예신]
너...
 
그는 순간 정신을 차렸다.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 건지 깨달은 듯했지만,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예신]
이게 너의 결정이니? 
 
동족들은 모두 예신이 이곳을 떠난 줄로 알고 있다. 아무도 내가 그를 이곳에 가두고 있다는 걸 모른다. 
 
[나]
내가 이렇게 한 건, 그저 예신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예신]
......
 
그의 침대맡에 엎드려 있던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지금 우리는 주문이 그려진 금속 난간을 사이에 두고 있었다. 난간의 쇠사슬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그는 천천히 손을 거뒀다. 
 
[예신]
속박 주문인가? 
 
[나]
맞아요, 이것도 예신이 가르쳐준 거죠. 나한테 가르쳐줬던 것들, 전부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예신을 내 곁에 남겨두고 싶어요. 당신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아요. 
 
난 아주 침착하게 말했다. 
 
[예신]
너도 이만큼 컸으니 너만의 생각이 있을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이 세상엔 네가 강요할 수 없는 것들이 있는 법이야. 
 
예신이 손을 내밀어 마법진을 살짝 건드리자, 마법의 힘이 그를 가로막았다. 
 
[나]
그거 알아요? 난 오래전부터 이날을 준비해왔어요. 이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지만요. 아주 오래전부터 준비했어요... 여기 있는 주문 부적 하나하나가 모두 예신을 위해 만들어진 거예요. 난 항상 예신과 더 가까워지고 싶었어요. 예신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닌, 예신의 옆에 설 자격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다시 마음을 돌리고, 나랑 같이 예전으로 돌아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