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차
1. 아침 자율학습
교실 문 앞에는 금빛으로 반짝이는 새 반 명패가 걸려 있었다.
[선생님]
누가 반 명패를 바꿨지?
[로샤]
저예요, 선생님.
캠퍼스 문화제를 위해서 다른 반 친구들을 좀 더 끌어올 방법을 고민했거든요.
[선생님]
로샤의 열정은 좋지만… 교장 선생님께서 너무 눈에 띈다며 다른 반에 영향을 줄까 걱정하시더라. 되도록 철거하는 게 좋겠어.
[로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휴, 학교 다니면서도 광고법을 지켜야 한다니……
2. 수학 수업
[예신]
문화제 기대돼?
[로지타]
엄청 기대돼요! 오후에 두 시간이나 줄어들잖아요. 헤헤.
[예신]
……그걸 기대한 거였구나.
3. 쉬는 시간
정재한은 문화제를 앞두고 열심히 사전 준비 중이었다.
[정재한]
헤헤, 뭘 더 쓸까 고민 중이야.
[카이로스]
정재한.
[정재한]
왜, 왜요 반장?!
카이로스는 정재한이 써 놓은 작은 종이 뭉치에 손을 얹었다.
[카이로스]
숙제 도와주기, 방과 후 보충, 그리고… 물 떠다 주기? …난 그런 특별 서비스는 안 해.
[정재한]
그건 추첨함에 넣으려고 만든 거예요! 당첨 확률도 높지 않다구요!
[카이로스]
확률이 있어도 안 돼. 내놔, 전부 압수야.
4. 화학 수업
[카이로스]
[반장 전용 방과 후 보충권]에 당첨되셨습니다! 본 학기 내 사용 가능, 시간 자유 선택.
[로지타]
그럼 감사히 받을게요, 반장!
[카이로스]
천만에. 시간 되면 꼭 와.
5. 쉬는 시간
문화제 때문에 수업이 줄어든 걸 못마땅하게 여긴 국어 선생님이 다음 미술 수업을 차지하려 했다.
친구들과 함께 불평하며 불만을 가진 친구를 달랬다.
그러다 교실로 들어온 선생님에게 들키고 말았다…
6. 국어 수업
[로샤]
□급자족, □승자강, □업자득…
[로지타]
사자성어 빈칸 채우기구나…… 좋아, 생각해, 자, 다?
[로샤]
흥! ‘자’ 자 들어간 사자성어 찾느라 한참 걸렸어!
7. 쉬는 시간
강단 옆 창가엔 푸르게 자란 화분들이 몇 개 놓여 있었다. 쉬는 시간마다 알카이드는 평소처럼 화분에 물을 주었다.
[봉군우]
너한테 아직도 줄 서 있는 사람이 있네… 저기, 알카이드. 이 문제 어떻게 푸는지 알아?
[알카이드]
한 번 볼게. 좀 어렵긴 한데, 아, 마침 기억나네.
알카이드는 고개를 살짝 돌려 문제를 보더니 봉군우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아래층 학생]
야, 누가 창틀 물 다 흘렸냐?!
[알카이드]
……아.
문제 설명을 마친 알카이드는 그제야 손에 쥐고 있던 기울어진 물뿌리개를 내려놓았다.
8. 체육 수업
[체육 선생님]
오늘은 체력 측정이다! 남학생은 1000미터, 여학생은 800미터. 남학생부터 시작, 열 명씩 한 조다. 학번이 비슷한 로샤와 알카이드는 같은 조로 출발선에 섰다.
[로샤]
10초 정도는 봐줄까? 내가 키도 크고 보폭도 넓어서 말이지.
[알카이드]
괜찮아.
출발 총성이 울리자 로샤와 알카이드는 다른 학생들과 큰 격차를 두며 나아갔다. 줄곧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둘은 결국 알카이드가 근소한 차이로 승리했다. 체육 선생님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스톱워치를 내려놨다.
[체육 선생님]
너희 둘…… 교내 육상부에 들어올 생각 없니?
[알카이드]
……
알카이드는 벽에 기대어 숨을 고르며,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로샤는 180, 190cm쯤 되는 다리로 운동장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9. 점심시간
여름의 더운 교실 안, 아인은 에어컨을 24도로 설정했다.
[예신]
……
얼마 지나지 않아 예신은 온도를 28도로 올렸다.
[아인]
……왜 갑자기 덥지?
에어컨 리모컨을 찾지 못한 아인은 스마트폰에 리모컨 앱을 깔아 26도로 되돌렸다.
[카이로스]
하아…
카이로스는 그 순간 타이밍 좋게 나타나 아인의 핸드폰을 압수해버렸다.
10. 외국어 수업
[알카이드]
You had me at ( ).
• A. hello
• B. bye
[로지타]
우우… 더는 문제 풀기 싫네요…
[알카이드]
내가 잘못했어 TAT
11. 쉬는 시간
복도에 까만 강아지 한 마리가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작은 검은 강아지]
쭈쭈도 학교 다닐 수 있어?
로지타
당연히 되지, 쭈쭈쭈쭈쭈쭈!
[작은 검은 강아지]
그럼 또 너랑 놀 수 있는 거지! 멍!
12. 정보 기술 수업
[아인]
《TV in Black&White》 [웹페이지 링크], 이거 검색해봐.
로지타
와 이게 뭐야? 점박이 고양이 먹방?
[아인]
……혹시 오타 낸 거 아냐? TV를 CAT으로 썼지?
13. 문화제 준비
우리 반에서 준비한 음료는 직접 끓인 녹차였다.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 두 통 가득 담아냈다. 카이로스가 모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아인]
내가 할게.
아인은 그중 한 통을 들고 책상 위에 올렸다. 뚜껑을 열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알카이드]
나도…
알카이드는 두 번째 통을 들어올리려다 말고 손을 멈췄다.
[알카이드]
……안 보여.
[카이로스]
…………
아인은 아직 뜨거운 녹차를 쇠 국자로 휘휘 저었다.
14. 문화제
반 입구, 예신의 스케치 부스 앞에는 인파가 몰려 있었다.
[조급한 남학생]
도대체 언제쯤 내 차례야…
[기다리는 여학생]
야, 새치기하지 마!
[예신]
자, 이게 네 그림이야. 다음 분 오세요.
[로지타]
예신…… 펜촉이 불타고 있어! 근데 예신한테 초상화를 부탁하는 게 아니라… 다들 왜 예신 자화상을…… 사는 거지?
[기다리는 여학생]
예신, 나한테 to사인 해줄 수 있어?
[예신]
그게…… to사인이 뭐야?
예신은 다소 멍한 표정을 지었고, 옆에 있던 정재한이 튀어나왔다.
[정재한]
잠깐! to사인은 그 가격으론 안 돼!
15. 문화제
우리 반의 합창 공연은 선생님의 결정으로 급히 바자회 부스로 변경되었다. 그럼에도 아인은 교내 합창단의 피아노 반주자로 무대에 올라야 했다.
[아인]
오늘 왜 이렇게 사람이 많지…
공연이 시작되자, 세 개의 성부가 피아노의 맑은 선율 속에 어우러졌다. 합창단의 잔잔한 노래 사이로, 관중석 어딘가에서 누군가 ‘아인’ 이름이 적힌 밝은 색 팻말을 들어올렸다.
…솔직히 말해, 현장의 분위기랑은 좀 안 어울렸다.
[로지타]
합창보단 음악 페스티벌에서 더 잘 어울릴 것 같은데?
허창안은 정의로운 얼굴로 팻말을 든 학생에게 다가갔다.
[허창안]
안녕하세요, 실례합니다… 그 팻말 어디서 주문한 건가요? 도매로 하면 좀 더 저렴한가요?
16. 문화제
로샤는 예신 부스 옆에 따로 작은 부스를 차렸다.
[로지타]
로샤가 파는 건…… 자기 사인 사진?
사진 속 로샤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당당하게 양팔을 가슴에 안고 있었다.
[로샤]
뭐 써줄까? to사인이 뭔지는 나도 알거든. 아무거나? 그럼 학업성취? 다 썼어, 고마워~
한편, 알카이드가 급히 시작한 폴라로이드 사진 서비스도 성황이었다. 예신 부스 앞에 있던 긴 줄은 점차 그들 쪽으로 나뉘어갔다.
[로지타]
그런데 예신… 안도한 것 같지는 않은데… 왜 오히려 얼굴이 더 안 좋아 보이지?
17. 문화제
문화제도 거의 끝나갈 무렵, 반 친구들이 운동장으로 모여 단체 사진을 찍으려 했다.
[봉군우]
저기… 반장… 전부터 궁금했던 게 있는데……
[계리]
사실 나도. 우리 반 교복…… 진짜 통일 안 해도 되는 거야?
[로지타]
나도 하고 싶었던 말인데…
[카이로스]
…………
카이로스는 멀리 떨어진 곳을 바라보며 입을 열려다 말았다.
[아인]
나 이거 공연복이야, 갈아입을 시간 없었어.
[예신]
이런 특별한 날엔 좀 정식 복장이 낫다고 생각해.
[알카이드]
나는…
[로샤]
나는?
[사진사]
너희 반 준비 다 된 거야? 아니면 다음 반 먼저 찍을게.
[카이로스]
됐어…… 그냥 바로 찍자.
18. 문화제 마무리
작은 로봇 하나가 멀리서 천천히 다가왔다.
[작은 로봇]
로지타, 오늘 즐거웠어?!
[로지타]
문화제에서 이것저것 많이 해서, 꽤 즐거웠어!
[작은 로봇]
즐거웠다면, 그걸로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