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역, 에덴/안내 (로샤)

14화. 달빛 아래

ろ_ 2025. 6. 16. 21:22

달빛 아래, 로샤가 깨어나기를 기다리며 방 안을 돌아다녔다. 이틀 동안 분주하게 뛰어다니며 정보를 모으느라, 여긴 제대로 둘러볼 틈도 없었다.

이제야 둘러보니, 로샤의 취향은 꽤 고전적이다. 하지만 그 고전이라는 게 전혀 촌스럽지 않았다.
미술 전공자의 시선으로 보면, 어느 곳 하나 허투루 꾸며진 곳이 없다.

만약 이 에덴에 빈티지틱한 라디오가 있다면, 난 그걸 이 방에 꼭 들여놓으라고 추천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여행 중 이런 방에서 묵게 된다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일이었다. 이곳을 떠난다면, 정말로 아쉬울 것 같다. 

 

로샤는 막 잠에서 깬 듯한 코맹맹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로샤]
왜 깨우지 않았어…

 

[나]
좀 더 자게 해드리고 싶어서요.

 

그는 눈을 비비며 나를 똑바로 바라보더니 웃었다. 나는 제이슨에게서 산 새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움직이기 편한 용병 복장이었다.

 

로샤가 골라준 옷답게, 재단도 치수도 딱 맞았다.

 

[나]
옷, 사주셔서 고마워요. 마음에 들어요.

 

로샤의 시선이 내가 정리해 둔 여행가방 위에 머물렀다.

 

[로샤]
뭐뭐 챙겼는지 좀 봐도 될까?

 

그는 다가가 가방을 열었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잠시 후, 예상했던 질문이 들려왔다.

 

[로샤]
네 짐은 어디 있어?

 

로샤는 눈살을 찌푸렸다. 열린 가방 안에는, 오직 그가 쓸만한 물건들만 들어 있었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미안한 듯 웃었다.

 

[로지타]
로샤, 저는 같이 가지 않기로 했어요.

 

짐을 챙겨주겠다고 말한 순간부터 이미 결심했던 일이었다.

 

[로샤]
왜…… 왜 안 가? 왜 이런…… 끔찍한 곳에 남으려는 거야?

 

그는 초조하게 손을 휘저으며, 이곳이 얼마나 위험한지 설명하려 했다.

 

[로샤]
여긴 정말 위험해. 너도 그 녀석을 봤잖아. 그가 뭘 하든 그냥 하게 둬. 예전부터 계속 그래왔어! 그는 늘 이해할 수 없는 짓을 하잖아! 그동안 난 에덴 밖에서 충분한 자원과 인맥을 마련했어. 우리 둘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은 마련해놨어. 나는 이곳을 차지하려는 생각은 없어. 그냥 사막으로 돌아가고 싶어. 다시 내 여행을 계속하고 싶다고!

 

[나]
로샤, 말해줘요. 그때…… 무엇이 당신을 에덴에서 떠나게 만든 거죠?

 

그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억누른 분노가 느껴졌다.

 

[나]
그게 마지막 질문이에요.

 

로샤는 그 질문에 방 안을 왔다 갔다 하며 진정하지 못했다. 그러다 털썩 의자에 주저앉아 머리를 감쌌다.

 

[로샤]
그땐…… 어린아이였던 나의 직감이었어. 여기에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느꼈거든……

 

-

 

그의 말에 따르면, 에덴에서 깨어난 지 3년째 되던 해, 그는 우연히 알카이드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어린 로샤]
……알카이드, 이건…… 뭐야?

 

[어린 알카이드]
로샤 형, 이분들은 에덴을 지키는 분들이야. 아주 중요한 손님들이지.

 

그때 어린 로샤는 처음으로, 자신과 알카이드 외에도 ‘방랑자’ 같은 괴물이 오아시스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이 자신이 믿었던 모습과는 다르다는 걸 깨닫고, 그는 도망치고 싶어졌다.

 

첫 탈출 이후, 로샤는 끝없는 사막을 처음 마주했다. 두려움에 휩싸여 그는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알카이드는 그의 탈출을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심지어 매우 관대하게 대해줬다.

로샤는 다시 사막으로 떠났고, 그 이후 긴 여정을 이어가게 되었다.

 

[로샤]
나는 알아. 내가 이곳에서 어떤 특권을 받고 있다는 걸. 알카이드는 날 다치게 한 적 없어. 하지만 그 특권이 오히려 날 불안하게 만들었어. 늘 생각했지. 왜 나만 특별할까? 아마 내가 상인이어서 그런 걸까…… 대가 없는 호의는 믿기 힘드니까.

 

경계심 가득한 얼굴을 보며, 그동안 내가 품었던 의문들이 자연스레 풀려나갔다. 다른 이들이 목숨 걸고 들어오려는 이곳을, 로샤는 떠나고 싶어 했던 것이다.

 

[나]
로샤, 이번에 돌아온 건…… 마음속에 의문이 남아서였죠? 혹시 그 특권이, 당신이 잃어버린 기억과 관련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요?

 

로샤는 머리를 긁적였다.

 

[로샤]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어……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더는 머무르고 싶지 않다는 듯 말했다.

 

[로샤]
정말…… 나랑 안 갈 거야?

 

그의 말은 나를 두렵게 만들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난 이제 에덴의 진실에 거의 다가왔다. 지금 물러서면, 그간의 노력은 모두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나]
로샤, 당신이 여길 싫어한다는 거 알아요. 당신은 사막을 고향이라고 했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당신은 단지, 억압된 규칙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그 자유를 고향처럼 느낀 거예요. 그동안 준비해온 걸 포기하지 마세요. 저는…… 당신이 바깥세상 이야기를 할 때 보여주던 그 미소, 정말 좋아했어요. 이 며칠간 정말 많이 도와주셨어요. 당신이 없었다면, 전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예요. 당신을 만나서 정말 기뻤어요. 당신과 헤어지는 게 정말 아쉽지만, 이건 제 선택이에요. 저는 제 선택에 책임질 거예요. 그러니까…… 제 결정을 존중해주세요.

 

이별이 다가오자, 하고 싶었던 말을 모두 털어놓았다.

 

[나]
로샤, 멋진 여행이 되길 바랄게요. 다음에 만날 땐, 또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꼭, 다 듣고 싶어요.

 

로샤의 숨소리는 깊고 무거웠다. 눈빛은 밤하늘보다 더 짙어졌다.

 

[로샤]
……정말 결정한 거야?

 

[나]
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결심이 확고하다는 걸 알았기에 더는 설득하지 않았다. 가방을 들어 문 앞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섰다.


몇 걸음에 나에게 다가오더니, 조심스럽게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 입맞춤은 정말 가볍고 조심스러웠다. 물 위를 스치는 잠자리 같았다.

 

[로샤]
몸조심해.

 

이제 정말 나 혼자다. 로샤는 자신이 직접 그린 에덴의 지도를 내게 남겼다. 나는 정신을 다잡고 책상에 앉아, 지도에 남긴 표식을 다시 살펴보려 했다.


하지만 오늘 하루가 너무나도 무거웠다. 수많은 사실이 내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지금껏 알고 있던 진실을 부수고 있었다.

 

방랑자는, 능력자가 실종되거나 폭주하면서 괴물로 변한 존재.

알카이드는 에덴의 주인, 그는 방랑자들을 조종할 수 있다.

그리고…… 로샤는 떠났다. 이제 남은 건 나 하나다. 나는 주먹을 꼭 쥐고, 눈을 감았다. 이 모든 게 악몽이라면, 눈을 뜨기만 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텐데…

 

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온몸이 얼어붙었다. 전날에도 같은 식으로 문이 두드려졌다.

알카이드인가? 또 무슨 일이지? 그를 상대할 자신이…… 있을까?

 

문 두드리는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나는 일어섰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나]
……왜 당신이……

 

달빛 아래에서 그 모습을 확인하자,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는 아직도 가방을 들고 서 있었다.

 

[나]
왜 돌아오신 거예요? 뭘 두고 가신 거라도……?

 

로샤는 잠시 침묵한 뒤, 가방을 발밑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늘 장난스럽던 미소를 지으려 했지만, 실패한 얼굴이었다.

 

[로샤]
…웃기게 들릴지 몰라도…… 길모퉁이까지 가다가, 문득 무서워졌어… 다시는 너를 못 볼 것 같아서. 그래서 외부에 있던 동료한테 메시지를 보냈어…… 이번 여행, 가지 않겠다고.

 

그 말들은 낮고 빠르게 흘러나왔다. 내가 듣지 못하길 바라는 듯한 속도였다. 하지만 나는 또렷이 들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봤다. 그는 긴장한 얼굴로,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서 총성과 폭발음이 울렸다. 밤의 전투가 다시 시작되었다.

 

눈앞의 로샤를 보며, 나는 문득 “잃었다가 되찾은 것”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미소 지었다.

 

[로지타]
로샤, 집에 환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