ろ_ 2025. 6. 16. 21:03

알카이드의 정원을 나온 뒤, 나는 줄곧 로샤를 따라가며 물었다.

 

[나]
당신과 알카이드는 무슨 이야기를 한 거죠? 그가 당신에게 뭘 하라고 했나요?

 

로샤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
몇 번이나 되풀이된 끝에, 로샤는 결국 멈춰 섰다.

 

[로샤]
지금은 안전 시간이 지났어. 자꾸 말하면 적들을 끌어들일 수도 있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했다는 뜻을 보였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입을 벌려 조용히 물었다.

 

[나]
알·카·이·드·가·당·신·에·게·시·킨·일·은?

 

[로샤]
……

 

로샤는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내게 다가왔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쳤고, 그가 손을 들어 내 뒤통수를 잡으며 도망칠 길을 끊었다.

 

[로샤]
에덴을 떠나 사막으로 돌아간다고. 오늘 밤에 출발해. …너도 같이 가자.

 

그는 말을 마친 뒤, 돌아서서 걸어갔다. 그 후로는 내 질문에 어떤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기 전, 우리는 다시 한 번 금석의 상점을 찾았다. 문을 열자 로샤는 내게 맞는 옷이 있는지 물었다.


제이슨은 꽉 찬 보따리 속에서 여자 용병 복장을 꺼냈다. 로샤는 그중 두 벌을 골라 들었다.

 

[로샤]
너는 어떤 게 마음에 들어?

 

나는 아직도 아까 들은 말에 정신이 팔려서, 대충 손으로 방향만 가리켰다. 로샤는 내 태도를 눈치챘지만 따지지 않았고, 양옆을 비교하더니 말했다.

 

[로샤]
그래도 이게 더 낫겠네. 이걸로 포장해 줘.

 

새 옷 외에도 그는 여러 가지 필수품을 골랐다. 한눈에 봐도 여행 준비물이었다. 계산할 때 로샤는 빵 하나를 더 담았다.


제이슨은 매우 신난 얼굴로 말했다.

 

[제이슨]
다음에 또 오면 가장 좋은 걸 주지!

 

로샤는 웃었다.

 

[로샤]
아마…… 당분간은 못 올 거야.

 

집에 들어오자마자, 로샤는 물건을 문가에 내려놓고 저녁 준비를 빠르게 끝냈다.

 

[로샤]
먼저 국부터 마셔. 그다음에 다른 거 먹고.

 

식사 전에 그는 조용히 나에게 말했다. 하루 종일 굶었던 터라, 국부터 먹는 게 속에도 부담이 덜했다. 우리는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하지만 내 머릿속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정말 로샤와 함께 떠날 수 있을까?

 

접시의 마지막 음식을 먹고 로샤는 일어섰다.
그가 찬장 쪽으로 가면 나도 따라가고, 짐가방을 꺼내면 나는 옆으로 비켜섰다.

 

[로샤]
……이렇게 곁에 있어줘서 정말 고마워. 하지만 지금은 짐을 싸야 해. 너도 필요한 걸 챙겨. 큰 가방이 있으니 거기에 한번에 싸자. 얼른 해치우고 눈 좀 붙이자. 먼 길을 가야하니까.

 

 

 

>짐은 제가 정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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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앞으로 나서서 짐가방의 손잡이를 잡았다.

 

[나]
로샤, 제가 할게요.

 

그가 의아한 눈으로 나를 보자, 나도 지지 않겠다는 눈빛으로 응시했다.

 

[나]
……이래 봬도 저, 짐 싸는 데 능숙해요. 여기 올 때 가져온 것도 전부 제가 직접 챙긴 거라구요.

로샤는 내 작은 배낭을 힐끔 쳐다보았다. 당황한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로샤는 고집부리지 않았다. 그는 일어나며 말했다.

 

[로샤]
그래, 좋아. 나는 딱히 챙길 게 없어. 여행 중에 여자에게 필요한 것들…… 그건 내가 잘 모르니까. 필요한게 있으면 말해. 아, 맞다. 집 안을 둘러봐.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챙겨. 다시 이곳에 언제 올 수 있을지 모르니까.

 

그는 기지개를 켜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로샤]
그럼 나는 잠깐 눈 좀 붙일게. 딱 10분이야. 10분 뒤에…… 날 깨워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락했다.

 

[로샤]
좋다…… 이렇게 누가 내 짐 챙겨주는 건 처음이야…… 행복한 기분이 천천히 밀려오는 걸!

 

[니]
……그건 졸린 거예요. 얼른 가서 주무세요.

 

그는 마음속 무거운 짐이 내려간 듯 아주 깊이 잠들었다.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가 이곳을 떠나 사막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는 걸. 어쩌면 알카이드의 제안은 그의 결정을 앞당긴 계기일 뿐이었을지도 모른다. 약품을 로샤의 여행 가방에 넣으려던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랑 그, 아직 제대로 이야기해본 적이 없다는 걸……

 
 

 

다음 화에 계속…

 

 

>좋아요, 지금 정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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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샤는 사막을 자유롭게 오가는 여행자이며, 계산에 능한 상인이었다. 그와 함께 이곳을 떠나면 에덴 안의 다툼과 피를 피할 수 있다. 그리고 이건 에덴의 주인의 뜻이기도 하다.

 

며칠 동안 나는 분명히 깨달았다. 카운트다운이 끝나는 날까지 버티려면,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걸. 그리고 나는 그 과정에서 죽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이 잔혹함을 정면으로 마주하기보다는, 낙원 외부에서 정보를 수집하거나 최후에 어부지리를 얻는 게 오히려 나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나는 로샤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짐을 챙긴 뒤 그와 함께 밤사이 낙원을 떠났다.


처음엔 로샤를 따라 사막에 있는 그의 물자 보급소까지 아주 쉽게 도착했다. 거기서 나는 다시 페더를 만났다.

 

보급소의 식량은 우리가 꽤 오랫동안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을 만큼 충분했다. 방랑자들의 소란도, 능력자들의 위협도 없었다.


나는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그 잠은 아주 깊고 길었다. 깨어났을 때, 위쪽의 카운트다운은 거의 끝에 다다르고 있었다. 시간은 초 단위로 깜빡이며 흘러갔고, 마침내 내 눈앞에서 0으로 귀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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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02
0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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삑——————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아니야. 

 

하늘 전체가 마치 먼 곳에서부터 빛으로 물든 듯 보였다. 순간, 텐트로 가려졌는데도 눈앞이 하얗게 되어 거의 실명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게 뭐야?!!

 

그 소란이 멈추고 시야가 정상으로 돌아오자, 나는 텐트 밖으로 달려가 로샤를 찾았다.

 

[나]
로샤… 방금 그건 대체 뭐였어요?!

 

로샤는 약간 당황한 듯 보였고, 그때 페더가 달려왔다.

 

[페더]
너희들 저것 좀 봐!

 

페더는 저 멀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쳤고, 나는 그의 시선을 따라 에덴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처음엔 아무 변화도 없어 보였지만, 곧 이상함을 감지했다.

 

에덴은 마치 거대한 생명체를 지닌 식물처럼 아무 소리 없이 그 경계를 밖으로 확장해가고 있었다.

 

페더는 기뻐하며 깡충깡충 뛰었다. 겉보기엔 낙원의 운명에 별로 관심 없어 보이던 로샤도, 그 순간만큼은 미소를 지었다.


보아하니, 에덴은 이 세계의 모두가 바라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했다. 적어도 지금은, 더 많은 사람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카운트다운이 끝났을 때의 그 이상한 현상이 마음에 걸렸다. 에덴의 변화는, 그 이례적인 사건과 관련이 있는 걸까?

 

[로샤]
아가씨, 너무 걱정하지 마. 봐, 모든 게 정상으로 보이잖아?

 

로샤는 나를 다독였지만, 내 마음속에는 계속해서 불길한 예감이 맴돌았다. 마치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아주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는 예감이었다.

 

-

 

그날 밤, 나는 뒤척이며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결국 어떻게든 다시 에덴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모두가 잠든 틈을 타 몰래 짐을 챙겨, 우리가 왔던 길을 따라 에덴으로 향했다.
가는 길 내내, 다시 에덴에 들어갈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입구에 도착하자 나는 익숙한 사람의 실루엣을 보게 되었다.

 

알카이드였다.

그는 마치 내가 올 걸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했다. 나의 초조한 모습을 보며, 그는 부드럽게 웃었다.

 

[알카이드]
돌아온 걸 환영해요. 궁금한 게 많아보이는데, 조용한 데 가서 천천히 이야기할까요?

 

지독한 불안이 나를 그의 제안에 따르게 만들었다. 나는 단지 알고 싶었다. 그 카운트다운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했는지, 그 끝에 나타난 빛은 무엇이었는지를.

 

내 마지막 기억 속에서, 그는 나를 그의 정원으로 데려갔다. 그는 제라늄차를 끓여주었고, 그다음 일은 조각난 유리처럼 흐릿한 단편으로만 남아 있다.


그 파편들은 아무리 해도 다시 맞춰지지 않았다.

그저 매일 눈을 뜨면, 그 다정한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알카이드]

여기서 편히 지내요. 내 에덴에서.

 

…익숙하다. 이 말을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기억해낼 수 없었다.

지금 내가 아는 건 단 하나.

 

여기가 내 집이라는 것.

그리고 나를 꼭 안아주는 이 사람은, 이곳에서 내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

 

BE 3. 집에 환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