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스토리-2022/아득한 앞길

현세편 5화. 별의 제독

ろ_ 2025. 6. 2. 00:24

대강당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고, 별의 제독의 느릿한 목소리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별의 제독은 함장과 여러 훈련생들 앞에서 이번 돌발 사건에 대한 불만을 거리낌 없이 드러냈다.

 

[별의 제독]

훈련생 분쟁 사건… 그렇지, 중대한 사건이군. 중추에 가서 보고할 명분은 충분하겠어.

 

별의 제독의 말투에서 풍기는 냉소를 알아챈 함장이 옆에서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함장]

제독님께서는 반역자 호송 임무에만 집중하셔도 됩니다. 여기 일은 다른 전담 인원이 처리할 수 있습니다…

 

[별의 제독]

그러고선 내가 여기서 기다리라는 건가? 조사 보고서가 단계별로 올라올 때까지? 그건 사양하지.

 

별의 제독이 손가락을 까딱이며 상대에게 기지의 자료를 모두 가져오라는 듯 신호를 보냈다.

 

[별의 제독]

효율이 우선이지. 오늘 끝낼 수 있는 일은 굳이 내일까지 끌 이유가 없어.

 

그는 자료를 몇 번 훑어본 뒤 곧바로 옆 사람에게 무언가 지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함장은 모든 훈련생을 대강당으로 불러모았다.

 

별의 제독은 한 손을 군복 바지 주머니에 넣고, 다른 손으로 공중에 투명한 연두색 패널을 띄웠다. 그의 손끝은 하얀색의 수많은 떠 있는 버튼 위를 빠르게 누비고 있었다.

 

동시에 그는 곧바로 훈련생들 사이로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걸어갔다. 두 줄로 늘어선 훈련생들은 그가 지나가자 자연스럽게 길을 터주었다. 군화가 바닥에 부딪혀 묵직한 소리를 냈다. 하나, 둘, 셋…

그는 한 훈련생 앞에서 멈춰 서서 턱을 들어 올렸다.

 

[별의 제독]

네가 그를 죽였나?

 

주변에서 희미한 탄식이 들려왔다. 이윽고 수은이 창백한 얼굴로 앞으로 나섰다.

 

[수엔]

맞아요, 제가 했습니다.

 

수은은 그렇게 말하며 창백한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별의 제독은 그를 힐끗 바라봤다.

 

[별의 제독]

나와. 금고실로 따라와.

 

이 기지에는 금고실이 한 군데만 있는 게 아니었다. 지금 이 방의 한가운데에는 탁자가 놓여 있었고, 수엔은 어색하게 별의 제독 맞은편에 섰다. 별의 제독은 자리에 앉아 수은을 바라봤고, 한참이 지나서야 수은도 조심스레 앉았다.

 

[별의 제독]

이유를 말해봐. 왜지?

 

수은은 창백한 얼굴로 침묵을 지켰다. 별의 제독은 어디선가 은색의 종이호일 같은 작은 물건을 꺼내들었다. 금속 같은 촉감이었지만 그는 그것을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뒤집으며 접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별의 제독]

내 시간을 얼마나 더 낭비할 생각이지?

 

수은은 잠시 더 침묵하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수은]

그가 저를 죽이려 했기 때문입니다. 라이트의 일기를 봤습니다… 그가 저를 해치려 한 지 며칠 전부터요.

 

[별의 제독]

오? 뭘 봤다는 거지?

 

[수은]

라이트는 일기에 자신이 반드시 저를 죽일 거라고 썼어요. 그는 감정은 쓸모없는 것이며 일찍 버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반복해서 강조했어요. 제국에는 동료애도, 우정도 없고 오직 강약과 승부만이 있을 뿐이라고요. 그는 심지어 제 이름까지 적어뒀어요…

 

수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말했다.

 

[수은]

라이트의 일기 속 단어들은 늘 격렬했고, 그의 마음이 얼마나 초조하고 불안했는지 느껴졌어요… 그가 말하길, 자신은 가장 충성스러운 제국의 아들이며, 타고난 제국 군인이라고 했어요. 저와는 달리 말이죠, 제독님. 저는 조심스럽고 나약했어요. 늘 라이트가 저를 이끌고, 몰아세우며 앞으로 나아가게 했죠.

 

별의 제독은 여전히 별다른 흥미를 보이지 않다가 그제야 무심하게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별의 제독]

훈련장을 나와서도 온종일 그런 걸 궁리했다니, 나약한 게 아니라 정신이 나갔구만.

 

[수은]

제독님, 치밀하게 계획한 사람은 바로 그였어요. 시간, 장소, 습격 계획… 모든 게 그의 일기에 적혀 있었어요. 저는 단지 그 순간이 닥쳤을 때 반격을 가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알겠어요. 늘 저보다 더 확고하고 단호했던 그가 마지막 순간에 망설일 줄은… 그런데 제 칼날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그의 심장을 꿰뚫었어요.

 

수엔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등불 아래에서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수은]

제독님, 왜 그랬을까요?

 

별의 제독은 대답하지 않고, 손끝에서 장난감 같은 은색 물건을 계속 만지작거렸다.

 

[별의 제독]

스스로 알고 있는 일은 굳이 내게 묻지 마라.

 

[수은]

…네, 알고 있어요. 라이트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단호하고 냉정하지 않았어요. 그가 저를 설득하려 했던 모든 순간은…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었어요. 라이트가 한 번도 망설이지 않았다면, 굳이 계획을 일기에 적을 필요가 없었겠죠. 그래서 그는 규정을 어기면서까지 몰래 먼저 손을 쓰려 했던 거예요. 그는 저에게 동료를 죽일 각오가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저는 대답하지 않았어요… 그의 심장을 제 칼이 꿰뚫었을 때 다시 대답하기엔 이미 늦었죠.

 

[별의 제독]

후회하나?

 

[수은]

라이트를 죽인 것 말인가요? 아니요. 제국이 우리를 서로 죽이게 만들었을 뿐이에요. 저는 마지막에야 제 자신의 본심을 깨달았을 뿐입니다.

 

[별의 제독]

그럴 리 없지.

 

[수은]

당신이 제 마음을 어떻게 아시겠습니까.

 

[별의 제독]

전반부 말에 대해선 틀렸다는 거다. 졸업 대결이 “상대를 죽이기”와 “뒷통수 치기”만 있는 건 아니야. ‘미리’ 손을 쓰는 건, 순전히 자원 낭비일 뿐이지.

 

수은의 동공이 좁아지며, 자신이 들은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별의 제독]

몇십 년 전에도 동료를 배신하고 싶지 않아서, 오히려 파트너와 손잡고 교관에게 도전한 꼬마 녀석들이 있었지.

“결투장에서 한 명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면, 왜 최강자를 상대로 시도해 보지 않겠어?” 

죽을 각오를 하는, 그게 바로 사냥꾼의 긍지란 거다.

 

[수은]

그 사람들… 나중에 어떻게 됐습니까? 이겼나요?

 

[별의 제독]

너…. 머리 진짜 나쁘구나?

 

[수은]

…교관이 그들을 처형했나요?

 

[별의 제독]

적당히 손봐줬지. 다만 두 녀석의 결말은 좋지 않았어. 하나는 이미 오래전에 죽었고, 다른 하나는 아직도 갇혀 있지.

 

이쯤에서 별의 제독은 완전히 흥미를 잃은 듯 손가락 사이에서 갖고 놀던 작은 은박지를 접어 넣고, 일어나 문 밖으로 향했다.

 

[수은]

…저를 처형하지 않으십니까?

 

[별의 제독]

네가 그 친구를 죽이지 못한 덕분에 목숨을 부지했으니, 이후의 일은 알아서 하라고. 난 간다.

 

[수은]

잠깐만요.

 

별의 제독이 발걸음을 멈추고, 살짝 짜증이 묻어난 시선으로 수은을 바라보았다. 수은은 입술을 달싹였으나 마음속 말을 끝내 내뱉지 못하고,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수은]

방금 하신 이야기… 당신과 관련된 얘기인가요?

 

별의 제독은 직접 대답하지 않고, 문을 열며 밖으로 나갔다.

 

[별의 제독]

예전에 심심풀이로 어느 외딴 기지에서 강의한 적은 있지.

 

문이 닫혔다.

 

수은은 멍하니 그 문을 바라보며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입을 살짝 벌렸다가 다시 다물며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끝내 하지 못했다.

 

‘라이트는 항상 당신을 존경했어요.’

‘우리 교관이 당신이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지 못한 채, 수은은 가만히 서 있었다. 별의 제독이 떠난 , 방의 불이 꺼지고 어둠만이 남았다. 캄캄한 안에는 오직 수은 혼자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