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스토리-2022/여경서

[SSR] 지켜야 하는 것 6화. 밝은 달을 안아

ろ_ 2025. 3. 27. 16:22

화친 행렬이 출발한 지 며칠이 지났을까. 시간이 지나 마차는 상경을 떠나 길가의 여관에서 숙박했다. 대연 황실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임시 숙소조차 온통 화려한 장식과 꽃들로 가득 차 있었다.  
 
누군가 나무 상자를 내 앞에 가져와 열었다. 안에는 각종 진귀한 요리가 가득했다. 진한 향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능균]  
전하께서 한 끼도 드시지 않기에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았던 듯합니다. 미천한 신이 상경의 맛과 비슷한 음식점을 찾아보았습니다. 혹시 전하께서...  
 
[로지타]  
내가 한 끼도 먹지 않고 도망갈 힘도 없는 것이 도통의 바람이 아니었나요?  
 
손목을 감고 있는 사슬을 들어 보이며 그의 호의를 받을 생각이 없다는 듯 냉담하게 말했다. 능균은 사슬을 보았음에도 태연하게 미소를 지었다.  
 
[능균]  
전하를 호송하는 것이 제 임무이니 당연히 무사히... 용적에 도착하도록 해야 합니다.  
 
'용적'이라는 말이 들리자 나는 그를 싸늘하게 쳐다보았다. 북두영이 용적을 국경 밖으로 몰아낸 것은 대승이었다. 그러나 능당의 전횡으로 치욕스러운 조약이 체결되었다.  
 
용적은 대연 주둔군이 국경 안으로 철수하고 배상금을 지불해야 하며, 나 역시 인질로서 '화친을 맺기 위해' 보내지기로 했다. 당시 황성은 이미 그들의 손에 거의 장악된 상황이었다. 나는 정면 대항이 불가능해 일단 응할 수밖에 없었고, 상경에서 멀어진 후 다시 방법을 찾기로 했다.  
내가 용적에 대한 적개심을 보이자 능균은 다시 미소 지었다.  
 
[능균]  
전하께서 그리 하실 필요 없습니다. 용적은 비록 외족이나 전하께 진심입니다. 사신들 말로는, 한왕이 전하를 오래전부터 사모해 왔다고... 적어도 루요광이 전하께 보이는 그 겉으로는 진심인 척하면서 속으로는 가식적인 마음보다는 낫습니다.  
 
나는 이미 눈을 감고 이 자의 말을 무시하고 있었지만, 그 말을 듣자마자 눈을 떴다.  
 
[능균]  
전하. 제 이야기를 들어보시지요. 20년 전, 월씨가 대연에 헌납한 성녀가 사정상 궁에 들지 못하고 마침 개선한 평원후에게 하사되어 황실의 은혜를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당시 평원후는 병권을 장악하고 명성이 드높았음에도 어째서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아 후대의 앞길을 막으려 했을까요?  그것은 스스로 공이 지나치게 커 황상을 위협할 수 있다고 생각해 스스로 칼을 거둬들이려 한 것이었습니다. 20년 후, 루 소장군에게도 '칼을 거둘' 기회가 있었지요. 그날 상부에서는 우리와의 밀담에서, 그가 전하와 혼인하여 신혼의 명목으로 용적과의 전쟁을 피하도록 하자 했지만 그는 거부했습니다.  
 
그가 냉소를 지었다.  
 
[능균]  
그가 전하와 혼인했다면, 두 분이 지금처럼 스스로를 지키지 못할 처지에 놓이지는 않았을 텐데...  
 
[??]  
도통께서 생각하시기에, 누가 스스로를 지키지 못한다는 겁니까?  
 
이 소리는 맑은 시냇물처럼 방 안에 울렸다. 빛과 불꽃을 두른 내 장군이 도착했다.  

나는 그가 손을 잡는 것을 허락했다. 칼날이 반원을 그리며 바람을 가르는 소리 속에서 은빛 검날이 어둡고 차가운 검은 철에 부딪쳤다. 짤랑이는 금속음과 함께 불꽃이 튀었다.  
 
다음 순간, 내 손목을 감싸고 있던 사슬이 소리 없이 풀려 땅에 무겁게 떨어졌다.  
 
[알카이드]  
다친 곳은 없어?  
 
나는 힘껏 고개를 저었다. 그제야 그의 눈에 금철처럼 날카롭던 기세가 누그러지며 무한한 온화함이 깃들었다.  
 
[알카이드]  
그럼 다행이야. 고생했어.  
 
다정한 속삭임이 오가는 사이, 등 뒤에서 한 줄기 서늘한 빛이 날아들었다.  
 
[로지타]  
요광 오라버니, 조심하세요!  
 
내가 놀라 외친 순간, 알카이드는 이미 몸을 돌려 등 뒤로 날아온 하얀 화살을 손가락으로 붙잡았다.  
 
능균이 그가 오감이 손상된 것을 알고 나와 대화하는 틈을 타 몰래 습격을 감행한 것이었다. 일격이 빗나가자 능균은 허리춤에서 보검을 뽑아 알카이드에게 빠르게 찔러 들어왔다.  
그러다 중간에 방향을 틀어 찌르던 칼끝을 위로 치켜들며 그가 대응하지 못할 것에 모든 걸 걸었지만, 알카이드는 단 한 번의 칼질로 안정적으로 막아냈다.  
 
불과 몇 합 만에, 조정에서 무예로 이름난 능균은 이미 열세에 몰렸다. 알카이드의 한 번의 내려치는 검격에 칼날이 산산이 부서지고 무릎을 꿇었다. 다시 일어서려 할 때, 알카이드의 칼끝이 그의 어깨에 닿아 있었다.  
 
[능균]  
루 장군, 당신 혼자서 뛰어들었다는 건 설마...  
 
[알카이드]  
난 혼자가 아니야.  
 
알카이드는 말투가 나직하고 차분했지만, 궁지에 몰린 능균 앞에서는 수만 대군이 함께하는 듯한 여유가 돋보였다.  
 
[알카이드]  
이곳이 번화가라 수십 명의 하찮은 자들을 처리하는 데 주민들을 놀라게 할 필요는 없으니까.  
 
즉, 나를 호송하던 사람들은 이미 알카이드가 데려온 병사들이 조용히 제압한 상태였고, 여관 근처 주민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의미였다.  
 
[능균]  
그럴 리가 없다. 북두영의 군권은 이미 박탈되었고, 너는 규정을 어기고 병사를 동원했으니...  
 
[알카이드]  
도통께서 걱정하실 일이 아닙니다.  
 
알카이드는 손목을 돌려 바닥에 떨어졌던 사슬의 한쪽 끝을 칼끝으로 들어 올려 밧줄처럼 능균의 팔꿈치를 단단히 감아 그를 꼼짝 못 하게 했다.  
 
[알카이드]  
도통께서 조정의 안정을 염려하신다면, 당파를 지어 국정을 농단하고, 적국과 내통한 죄를 어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해 보시죠.  
 
병사들이 들어와 능균을 단단히 제압한 후 밖으로 끌고 나갔다.  
 
모든 일이 끝난 순간, 내 마음속에 있던 수많은 의문은 단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알카이드의 옷자락을 붙잡고 그를 가까이 끌어당겼다.  시선을 따라 그의 얼굴, 옷깃, 무기를 살핀 후 다시 그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그 눈은 맑고 투명했으며, 이내 한 점의 장난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알카이드]  
전하의 조사 결과는? 이미 다 나은 것 같나요?  
 
그가 말을 꺼내자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그가 상처를 숨긴 것은 아닌지, 독이 재발하지는 않았는지 걱정했지만... 이렇게 옷깃을 꽉 잡고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행동이...  
 
마치 미인을 희롱하는 것 같았다. 희롱당한 미인이 태연한 표정을 짓자 오히려 나만 민망해졌다.  
 
[로지타]  
일, 일단은 그래요. 하지만 만약 또 제게 상처를 숨긴다면...  
 
나는 말하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 그의 손을 놓으려 했다. 그러나 그는 가볍게 내 손을 눌렀다.  
 
[알카이드]  
전하께서 마음대로 하세요.  
 
청량한 웃음기가 묻어나는 목소리는 한 글자 한 글자 또렷하게 들려왔다. 마치 내 마음에 불꽃을 일으키려는 듯. 나는 얼굴이 뜨거워지며 애써 무심한 듯 그의 손을 흔들었다.  
 
[로지타]  
됐어요... 본론을 말하죠. 방금 능균이 한 말들은...  
 
능균이 떠들어댄 말들은 전혀 듣지 않은 것도, 듣고 이해하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 묻지 않은 것은 내 마음속에 알카이드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능당이 그에게 전쟁을 피하라고 강요했을 때, 그는 분명하게 선을 긋고 거부했다. 그들이 그를 고립시키고 전장에서 죽이려 했을 때조차 그는 절망 속에서 길을 찾고 살아남았다.  
그래서 능균이 그의 군권이 해임됐다고 하든, 규정을 어기고 병사를 동원했다고 하든, 나는 그를 믿고 기다릴 수 있었다. 그가 직접 내게 모든 내막을 들려주리라 믿고.  
 
[알카이드]  
아마, 이 일은 제가 감옥에 있을 때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네요.
 
감옥 안
 
[월씨 무리]  
원컨대 전하께서 심상인을 되찾고, 원래대로 돌아가 왕으로 자립하시길!  
 
월씨의 사신들이 그의 앞에 일제히 무릎을 꿇고 외쳤다. 그 목소리는 마치 밀려오는 파도처럼 거세었다. 알카이드는 한 걸음씩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의 걸음걸이는 그 '마음 가는 대로, 스스로 결정하는' 선택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알카이드는 그들을 스쳐 지나갔다.  
 
월씨의 사신들이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알카이드는 평온한 표정으로 옆에 서서 입을 열었다.
 
[알카이드]  
여러분께서 대연에 대한 원한으로 복수를 꾀하신다면, 사람을 잘못 찾으신 것입니다. 월씨는 전쟁의 혼란에서 벗어난 지 오래고, 백성들은 평안히 살고 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제가 바라는 바입니다. 저는 대연의 백성들이 월씨의 근래처럼 이별과 전란의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랍니다. 어찌 제 한 몸으로 두 지역의 분쟁을 일으키겠습니까?  
 
이십 년 전, 동희는 홀로 대연으로 향해 두 나라의 휴전과 백성들의 평안을 이끌어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라, 그녀의 고심 어린 결정이었다.  
이십 년 후, 알카이드 또한 자신의 결정을 내리고 지킬 것이었다.  
 
진심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태평성세를 위한 것이었다. 로지타를 구하러 가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으나, 결코 수많은 백성들을 휘말리게 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  
역시나, 루 요광이군.  
 
맑은 박수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가 그림자 속에서 걸어 나왔다.  
 
[알카이드]  
폐하!  
 
그 모습을 확인한 알카이드는 놀란 기색을 띠었으나, 예를 갖추려는 동작은 황제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황제]  
능당의 세력이 커져서 어쩔 수 없이 이런 위험한 수를 써야 했소.  
 
황제는 이미 능당의 무리가 몰래 적과 내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이 비밀스럽기에 증거를 찾기가 어려웠다. 오직 병을 핑계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적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야만 그들의 야심이 부풀어 오르고 실체가 드러날 터였다.  
 
[황제]  
이제 증거는 확실하니, 경에게 금장을 내리고, 옥새가 새겨진 참도를 주겠소. 검이 닿는 곳은 모두 짐의 의중이오.  모든 일이 끝나면, 경과 로지타의 혼인을 허락하겠소. 경의 뜻은 어떠하오?  
 
금장과 옥새가 새겨진 참도, 최고 권력자의 지위에 더해 공주까지 얻는 것이니, 이보다 더한 영예와 호사는 없었다. 경성에서 전해지는 '금대에 올라 장군을 알현한다'는 영광도 이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었다.  
 
권력과 권세가 마치 거대한 홍수처럼 그를 향해 밀려왔지만, 알카이드의 마음은 한없이 맑고 깨끗했다. 곁에 있던 월씨의 무리들은 분명히 그의 마음을 떠보려 했을 터였다. 만약 그가 조금이라도 동요하여 '왕으로 자립'하는 요청에 응했다면, 황제는 지금 어떻게 나왔을까?  
필시 천하의 주권자가 손에 쥔, 자신이 알지 못하는 더 많은 수가 있었을 것이다.  
 
조정의 암투는 끝이 보이지 않는 깊고 어두운 바다와 같았다. 누군가는 곧 가라앉을 것이고, 누군가는 그를 그 혼란 속으로 끌어들이려 했다.  
이 모든 것을 깨달은 알카이드는 잠시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살며시 웃었다. 짙고 깊은 안개는 사람을 헷갈리게 하고 길을 잃게 만든다.  
 
그러나 세상에는 이미 밝고 맑은 달빛이 있어, 그의 마음의 바다를 비추고 그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어쩌면 언젠가… 그는 온 세상의 먼지를 씻어내고, 그 달빛이 하늘 가득 펼쳐지게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알카이드는 황제에게 깊이 예를 갖추었다.  
 
[알카이드]  
폐하를 위해 목숨 바쳐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다만 제게 있어 전하는 누구의 거래 대상도 아니며, 주고받을 물건도 아닙니다. 그녀는 검의 기개와 거문고의 정취를 지녔으며, 마음이 맑고 고결한 분입니다. 그분은 제 마음속의 인간 세상의 밝은 달빛입니다. 만약 언젠가 그분과 혼인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분 앞에서 제 입으로 직접 묻는 순간일 것입니다.  
 
-
 
[알카이드]  
전하, 제 아내가 되어주시겠습니까?  
 
[로지타]  
네. 저는 언제나……  
 
수없이 마음속으로 상상해왔던 장면이었지만, 내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 목소리는 떨림이 묻어났고,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로지타]  
언제나 원했어요……  
 
떨어지는 눈물이 그의 입맞춤에 의해 조용히 닦여졌다. 말로 다하지 못한 감정이 그의 입술에 잠겨버렸다.  
 
나는 눈을 감았다. 나의 초록 잎 같은 사람, 나의 요광, 나의 은빛 갑옷을 두르고 금빛 고삐를 쥔 바람 같은 소년 장군이 내 마음속에 새롭게 영토를 넓히며, 숨결로 나를 감싸는 것을 느꼈다.  
 
비록 앞날에 수많은 고난과 위험이 기다리고 있어도, 그의 손을 잡고 함께 나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