ろ_ 2025. 2. 21. 00:14

[로지타]  

나는 어둠이 짙게 깔린 곳으로 내려앉았다. 발밑에서 자갈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주변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것들이 도사리고 있는 암흑으로 가득했다. 차가운 공기가 남아 있던 졸음을 순식간에 몰아냈다.  

 

[로지타]  

여기는……  

 

어둠에 익숙해지자 주변의 풍경이 서서히 드러났다.  

나는 황량하고 음침한 심연 한가운데 있었다. 사방에 쇠사슬과 형구가 걸려 있어, 마치 감옥처럼 보였다.  

바닥에는 희미한 붉은 문양이 뒤엉켜 있었는데, 자세히 보면 일정한 규칙이 있는 듯했다.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나를 엿보고 있었다.  

낮고 거친 목소리가 아래쪽에서 들려왔다.  

 

[악의 가득한 목소리]  

새로운 영혼이다, 새로운 영혼이 심연에 왔다!  

 

[악의 가득한 목소리]  

신선한 혈육…… 아니, 강자다!  

 

그들은 선한 존재가 아니었다.  

몸을 돌려보니, 저 멀리 바위 뒤에서 몇 개의 검은 형체가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내 시선이 닿자마자 그들은 황급히 몸을 숨겼다.  

 

그들은 나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도대체 누구의 목소리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분별 불가한 그림자]  

너는 천인인가, 귀족인가, 아니면 마신인가? 어째서 여기에 온 거지?  

 

그들의 목소리에는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다른 그림자들도 그 말을 따라 반복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목소리가 차례로 울려 퍼지며, 이 음산한 심연을 가득 채웠다.  

 

'천인, 귀족, 마신'…… 어딘가에서 들어본 적 있는 단어들이 암벽 사이에서 울려 퍼졌다.  

그림자들은 내 힘을 경계하면서도 쉽게 나를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분별 불가한 그림자] 

네가 왜 심연에 왔는지 말해라! 여기는 죄인의 땅, 누구도 심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서로를 집어삼키고, 강자에게 다시 잡아먹힌다——  

 

[분별 불가한 그림자] 

너는 누구지? 심연에 온 목적이 무엇이냐?  

 

[분별 불가한 그림자] 

약자의 기운이 나면서도 강자의 힘을 지녔군! 여기에 올 수 있었다면, 너는 천인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게 분명하다!  

 

그들의 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앞으로 나아갔다.  

발아래 길은 불길한 붉은 빛을 내며 하나의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

 

길 끝에서 한 청년을 발견했다.  그는 온몸이 상처투성이었고,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어둠 속의 그림자들을 피해 도망치고 있었다. 몸 곳곳이 뜯겨 나가고 있었고, 피로 얼룩져 있었다.  

 

나는 급히 다가가 그림자들을 몰아내기 위해 화령을 불러냈다. 청년은 핏발이 선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더니, 깊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청년]  

정말 놀랍군요…… 심연에서 다른 이를 도와주는 강자가 있다니.  혹시 성함을 여쭈어도 될까요? 보아하니 천인도 아니고, 귀족도 아니신 것 같은데요.  

 

[로지타]  

저는 로지타입니다. 제가 왜 여기에 오게 된 건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나는 그를 부축하여 근처 바위에 앉혔다. 청년은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 있었지만, 잠시 앉아 있으니 긴장이 조금씩 풀리는 듯했다.  

 

[청년]  

처음 듣는 이름이군요. 여기에 오셨다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요.  

 

그는 내 곁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더니, 나를 보고 말했다.  

 

[청년]  

방금 도착하신 것 같군요. 궁금한 것이 있다면, 제가 아는 한 답해드리겠습니다.  

 

나는 이곳이 온통 적의로 가득한 그림자로 둘러싸여 있었기에,나에 대한 정보를 쉽게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로지타]  

괜찮으시다면, 당신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어째서 이곳에 오게 되셨는지, 저 그림자들은 대체 당신에게 무슨 짓을 하려던 건지……  

 

청년의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처한 상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청년]  

괜찮으시다면, 제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그는 조용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본래 천인이었으나, 선견성에서 추방되어 심연으로 떨어졌다. 십선업도가 그를 무용한 자로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청년]  

천인은 이계에서 온 존재이며, 영신체로 인해 강한 힘을 지닙니다. 하지만 제 영신체는…… 아마 오래 버티지 못할 겁니다.  

 

슬픈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절망이 서려 있지 않았다.  

 

[청년]  

도와주고 싶었던 이웃이 있었지만, 결국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군요. 그 사람도 당신처럼, 세상에 대해 잘 모르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나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더 묻고 싶었지만, 그가 갑자기 말을 멈추고 손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로지타]  

이, 이게……?!  

 

그의 영신체가 말 그대로 조금씩 부서지고 있었다. 청년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더니, 나를 향해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청년]  

이제 곧 심연에게 삼켜질 것 같군요…… 저는 상관없으니, 어서 도망치십시오.  

 

그는 나에게 손짓하며 어서 떠나라고 했다. 그 순간, 뒤쪽에서 폭풍과 함께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들은 어둠과 광기를 품고 있었으며, 이내 우리를 갈라놓아 버렸다.  

 

나는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거센 바람 속에서 수많은 그림자가 날카로운 발톱을 뻗으며 나를 덮쳐왔다.  

 

나는 화령을 소환해 막으려 했으나, 그림자의 수는 점점 늘어만 갔다.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다른 방향으로 몸을 돌려 계속 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저 멀리 한 줄기 빛이 보였다.  

 

[???]  

……  

 

그 빛과 함께, 내가 누구보다도 잘 아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카이드]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