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꽃과 당신
알카이드 선배의 손에 이끌려 연극 동아리에 들어간 뒤로 일정이 하나 더 늘었다. 그건 바로 학교 공연장에서 그의 리허설과 연기를 보는 일이었다.
[알카이드]
연극 동아리는 선배 때문에 들어간 터라, 솔직히 말해 이쪽으로는 아는 게 없어. 로지타, 리허설 보러 와줘서 고마워. 이번 리허설에 대한 전반적인 네 의견을 참고하고 싶은데...
그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알카이드 선배가 공연 의상을 입고 연기하는 걸 보고 싶었다.
그 때문에 난 학교 공연장의 단골손님이 되어, 무대 뒤에서 알카이드가 의상을 입는 걸 돕거나, 대사와 연기에 대한 감상을 들려주기도 했다. 예를 들면 오늘처럼! 장미의 정령을 연기하는 알카이드 선배의 의상을 내가 직접 디자인해왔다.
[로지타]
깔끔하고 심플한 화이트 셔츠와 나비넥타이… 평범한 사람이 아닌 정령을 위한 의상이에요. 장미니까, 하안 장미 장식이 좀 더 많으면 좋을 것 같아요.
[안소니]
어째서 흰 장미를 골랐지?
안소니 교수님은 연극과 담당으로, 종종 연기를 지도해 주신다.
[로지타]
하안 장미는 순결함과 순수함의 상징이니까요. 알카이드 선배한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나도 모르게 대답하고 나서야 경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지타]
엇, 그러니까 제 말은 하안 장미가 장미의 정령을 떠올리게 해서...
[알카이드]
로지타, 네가 생각하는 장미의 정령은 순결함과 순수함을 상징 하는구나.
알카이드는 눈을 깜빡이며 진지하게 내 말을 따라 했다. 그 말을 듣자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안소니]
잘 봤군. 알카이드를 장미의 정령 역할로 캐스팅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지.
안소니 교수님이 가법게 미소를 지었다. 그는 연극과 교수님답게 상대가 민망해하지 않도록 자연스레 말을 받아주셨다.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장미의 정령이 잠든 소년을 구한 뒤 새벽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이내 커튼콜이 끝나고, 공연은 무사히 막을 내렸다. 무대 한가운데 선 알카이드를 보며, 나도 관객들을 따라 성공적인 공연을 축하하며 박수를 졌다.
[관객]
정말 멋진 공연이네요, 장미의 정령 역 배우의 감정 연기가 일품이었어요.
옆에 있던 아름다운 중년 여성이 날 향해 환하게 웃었다.
[로지타]
네, 저 배우가 제 선배님이에요!
[관객]
그 선배한테 관심이 있는 것 같은데요?
그 말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인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었다...
[관객]
부끄러워 할 필요 없어요. 두 사람, 정말 잘 어울려요.
기분 좋은 웃음을 건넨 그녀는 인파를 따라 공연장을 빠져나갔다.
-
공연이 끝난 뒤, 난 알카이드와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갔다.
[알카이드]
생각해둔 곳 있어?
[로지타]
선배가 골라주시면 안돼요?
[알카이드]
좋아. 상점가에 새로운 레스토랑 몇 군데가 생겼던데, 거기로 가보자.
잠시 뒤 알카이드는 하안 장미로 장식된 레스토랑 입구에서 걸음을 멈췄다. 간판에는 프랑스어가 적혀 있었다.
[알카이드]
La fleur to(꽃과 당신). 예전에 프랑스어를 공부할 때 배웠던 문구야. 감명 깊어서 기억하고 있어.
'인생에서 제가 사랑하는 것이 두 가지 있는데, 그건 바로 꽃과 당신이랍니다. 꽃은 하루가 지나면 시들겠지만, 당신은 제 곁에서 평생을 함께하겠죠.'
[로지타]
엄청 멋지네요...
[알카이드]
그럼 여기로 정할까?
[로지타]
좋아요!
-
알카이드가 고른 곳은 근사한 프렌치 레스토랑이었다. 테이블마다 장미로 장식된 유리병이 놓여 있었고, 섬세한 레이스가 초대장 모양의 메뉴판을 감싸고 있었다.
[알카이드]
트리프 아 라 모드 드 강, 에스카르고, 푸아그라, 부야베스... 멋진걸, 프랑스를 대표하는 음식들로 가득해.
[로지타]
선배는 프랑스에 가 본 적 있어요?
[알카이드]
응, 어릴 때 어머니랑 2년 정도 살았어. 그때 프랑스어를 조금 배위뒀지. 내가 주문할까? 정통 프렌치식이라면, 내 선택이 마음에 들 거야.
[로지타]
좋아요, 선배는 제 입맛을 잘 알잖아요!
알카이드는 날 위해 견과류가 들어간 푸아그라, 구운 오리와 다크 초콜릿 디져트가 나오는 코스를 선택했다. 푸아그라의 부드러운 풍미와 육즙 가득한 오리고기... 요리는 하나같이 환상적이었다.
[로지타]
정말 맛있어요!
[알카이드]
다음에 또 올까? 메뉴가 다양하니까, 다음번엔 다른 요리도 도전해보자.
계산하는데 직원이 경품 뽑기를 건넸다.
[로지타]
호음, 보통은 식사 이용권이던데... 선배가 뽑아주실래요?
알카이드는 빙그레 웃으며 한 장을 뽑았다.
[알카이드]
3등이다. 운이 좀 따라준 모양이야.
[식당 직원]
3등이시군요. 자, 받으시죠. 할인 쿠폰과 허그 베어입니다!
레스토랑을 나온 우리의 손엔 하안 장미 타이를 한 커다란 허그 베어가 들려 있었다.
-
알카이드는 인형을 품에 안은 채 날 집 앞까지 데려다줬다.
[알카이드]
로지타, 이 녀석은 네가 데려갈래?
[로지타]
선배가 뽑은 거잖아요...
[알카이드]
집에 오는 내내 곁눈질했잖아. 인형이 로지타 네 마음에 쏙 든 것 같은데?
알카이드가 인형의 귀를 쓰다듬었다.
[알카이드]
안고 있으면 포근해서 푹 잘 수 있을걸.
말을 마친 알카이드가 내 품에 인형을 안겨줬다.
[알카이드]
듬직한 허그 베어를 안고 자면 기분 좋은 꿈을 꿀 수 있을 거야.
알카이드는 손을 흔들며, 환한 미소와 함께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