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R] 하늘 위 비행운 3화. 비행운
[로지타]
아...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알카이드 기장님.
결국 알카이드의 데이지 화분은 받지 않았다.
[알카이드]
네, 그럼 하시는 일 잘 되길 바랄게요. 기자님은 아주 훌륭한 기자님이세요.
웃으면서 말하는 알카이드에게 로지타 역시 진심 어린 미소로 화답했다.
[알카이드]
그리고... 로지타 기자님, 글씨가 아주 예쁘시더라고요.
제 글씨가요? 그냥 평범한테요...
그녀는 난감한 얼굴로 노트를 쳐다봤다. 그런 로지타의 오른쪽 손바닥에서 옅은 흉터를 무심코 보게 됐다. 추락 사고로 손을 못움직이게 될 뻔했지만, 일곱 살 아이는 자신의 의지로 부상을 이겨냈다. 오른쪽 손바닥에 상처를 남기긴 했지만, 오른손으로 또박또박 글씨를 쓸 수 있었다.
...저 흉터. 그리고 로지타의 이름. 알카이드는 앞에 있는 사람이 바로.. 어렸을 때 그의 앞에서 떨어졌던, 그가 잡아주지 못해 지키지 못했던 그 소녀라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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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이드가 아홉 살이던 해, 사정이 생겨 부모님을 따라 변두리 마을에 보름 정도 잠시 머물게 되었다. 도작한 첫날, 부모님은 그를 두고 나가셨고 혼자 남은 그는 집에 남아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장난감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에어쇼의 비행기 대열이었다. 그다음에 보인 것은 열정적으로 자신을 항해 손을 흔드는 소녀였다.
[어린 시절의 로지타]
기다리라구... 앗!!
[어린 시절의 알카이드]
...!
소녀의 비명은 듣지 못했지만, 놀란 소녀의 모습에서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소녀는 그의 앞에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그대로 떨어졌다.
[어린 시절의 로지타]
도와주세요!!
그를 바라보는 소녀의 모습은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마지막 나무판자를 붙잡는 모습 같기도 했고, 추락하는 사람이 비행기 날개를 잡으려는 것 같기도 했다...
[어린 시절의 알카이드]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 줘!
그러나 알카이드가 소녀에게 달려갔을 때는 이미 일이 벌어지고 난 뒤였다. 소녀는 떨어져서 크게 다쳐버렸고, 그는 한발 늦었다.
하지만 알카이드가 어른을 불러온 덕에 빠른 시간 안에 구급차가 도착할 수 있었다. 소녀는 제시간에 치료를 받았고, 어른들은 착하고 영리한 아이라며 알카이드를 칭찬 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로지타]
저기... 오빠는 이름이 뭐야?
병상에 누워 움직이지 못하는 소녀는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보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어린 시절의 로지타]
꽃 선물 고마워. 보이진 않지만, 냄새를 맡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져. 우리 엄마랑 아빠는 회사에 가야 해서 내 옆에 있어 주지 못하는데... 오빠가 같이 있어주니까 너무 좋다. 내 이름은 로지타! 오빠 이름은 뭐야?
[어린 시절의 알카이드]
......
알카이드는 그 질문에 끝까지 대답하지 않았다. 아무도 로지타의 추락 원인을 알지 못했으나, 알카이드도 그 일에 대해 차마 말하지 못했다.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에 대해 잘 모를 수도 있지만, 감각이 예민한 알카이드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죄책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로지타]
오빠가 가지고 있던 비행기 엄청 예쁘던데. 내일... 그 비행기 가져오면 안 돼?
[다음 날]
[어린 시절의 알카이드]
비행기 가져왔어... 가지고 놀래?
[어린 시절의 로지타]
응! 음... 근데 손을 뻗을 수가 없어서, 오빠가 내 손 위에 좀 놔줄래?
알카이드는 멈칫거리며 두껍게 동여맨 소녀의 오른손을 쳐다봤다.
[어린 시절의 로지타]
의사 선생님이 그러는데, 조금씩 움직여도 된대... 그리고 앞으로 열심히 오른손을 써 보래. 나 하나도 안 무서워! 그러니까 조심해서 비행기를 내 손에 놔 줘!
알카이드는 깨지기 쉬운 보물을 다루듯이 소녀의 손바닥에 새하안 비행기를 조심스럽 게 올렸다.
[어린 시절의 로지타]
...내가 비행기를 잡았어? 느낌이 안 나는데.
[어린 시절의 알카이드]
응, 잡았어. 내가 봤어, 년 아주 잘 잡고 있어... 그 누구보다도. 네가 잡고 있는 그 비행기는 분명 하늘을 날 수 있을 거야.
알카이드는 화초 가꾸는 것을 좋아하고, 비행기를 좋아하고, 하늘을 좋아한다. 로지타 역시 좋아한다고 하자, 알카이드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그것들을 전부 가지고 왔다. 그리고 머리맡의 데이지 꽃다발은 한 번도 시든 적이 없었다. 알카이드가 계속해서 새 것으로 바꿔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카이드의 어머니]
알카이드, 이제 내일이면 집으로 돌아가서 좋겠네? 진구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알카이드는 이 마을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에 불과했다.
[어린 시절의 알카이드]
엄마... 나 집에 가기 싫어요. 그 여자에 옆에 있을래요...
[알카이드의 어머니]
알카이드는 마음이 정말 따뜻하구나. 이렇게 작한 아들이 있어서 엄마는 너무 행복해. 하지만 우린 보름만 집을 빌렸기 때문에 곧 다른 사람이 이 집으로 이사 올 거야. 그 애가 그렇게 걱정되면, 그 아이 부모님에게 연락처를 물어봐 줄까?
[어린 시절의 알카이드]
......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그 경험으로, 알카이드는 때로는 스쳐 지나가는 인연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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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빠져나왔지만, 알카이드의 시선은 여전히 데이지를 향하고 있 었다. 로지타에게 데이지 선물을 거절당한 그는 그녀가 자신을 기억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 다.
[알카이드]
...잘 가요, 기자님.
알카이드가 갑자기 나지막이 웃었다. 자신을 비웃는 듯한 웃음이었다. 거의 20년이 흘렀다... 20년 전의 인연에 집착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그는 창가로 걸 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매일 수많은 비행기가 이 비행장에서 이륙해 하늘에 긴 꼬리를 남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꼬리는 천천히 투명해지면서 사라진다.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