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스토리-2020/꿈과 환상의 밤 (트릭나이트)

그윽한 달과 샛별 (알카이드 편)

ろ_ 2023. 12. 25. 13:18

그건 밤하늘로부터 멀리. 달이 지고 난 뒤, 아침 해가 떠오르기 전-- 흩날리는 하얀 날개에 둘러싸여 작은 소래로 노래한다.

여명의 명성이여, 너는 어째서 가라앉는 것이냐--

 

 
끼익-
 
무거운 대문을 연 나는 별의 극장 [각주:1] 에 발을 들여놓는다. 극장 입구는 어둠이 깔린 통로를 따라 두꺼운 카펫이 깔려있다. 나는 커다란 캐리어를 끌며 벽을 따라 조심스레 통로를 걸어간다. 잠시 뒤, 어둠 속에서 알카이드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알카이드]
로지타, 너야?
 
[로지타]
응.
 
[알카이드]
미안해, 입구의 조명이 아직 조정 중이라서. 조심해서 이쪽으로 와.
 
[로지타]
응, 알겠어요.
 
어둠에 휩싸여 나는 천천히 알카이드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도 이쪽으로 다가오는 걸 소리로 느끼며 몇 걸음을 내딛자, 누군가 내 팔꿈치를 받쳐주는 걸 느꼈다. 알카이드였다. 딱히 어둠이 무서운 건 아니지만, 알카이드가 잡아준다는 것 만으로 마음이 편안해진다. 선배는 내 팔을 잡고, 한 걸음 씩 어둠 속을 나아갔다.
 
[알카이드]
여기서 왼쪽으로 돌면 도착이야.
 
그렇게 말하며 그는 날을 부축하고 왼쪽으로 돌았다. 그러자, 갑자기 눈앞에 반짝반짝 빛나는 달빛이 펼쳐졌다. 높은 돔 지붕으로 옅은 별빛이 비쳐 들어오며 정적이 깔린 극장은 다정히 감싸고 있다. 그 밑으로 구름과 산들 사이로 초승달이 얼굴을 내밀고, 먼 호수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마치 다른 세계의 발을 들여놓은 것 같았다. 밤하늘과 달빛 사이, 그 환상 속에 내가 서 있다.
 
[로지타]
와, 너무 아름다워요...
 
알카이드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극장을 반짝이는 별빛이 그의 눈동자 속에서 흐르고 있다.
 
[알카이드]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 기쁘네.
 
빛과 영상의 투영으로 만들어진 배경이라는 걸 알면서도 달과 호수의 그림자, 그리고 만천의 별들은 숨을 멎게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 한 때를 조용히 즐기다, 문득 이곳에 온 목적을 떠올렸다.
 
[로지타]
맞다, 선배 의상 가져왔어요.
 
나는 가지고 온 거대한 캐리어를 알카이드에게 건넸다.
 
[로지타]
일단 시착해보는 건 어때요? 사이즈가 맞는지 아직 모르겠어서.
 
캐리어를 받은 알카이드는 조금 곤란해 보였다.
 
[알카이드]
로지타,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네게 이런 큰 짐을 들고 오게 해서.
 
[로지타]
괜찮아요. 이렇게 보여도 꽤 힘이 세다고요.
 
[알카이드]
응, 그래도 다음에 올 때는 미리 알려줬으면 해. 데리러 갈 테니까.
 
나는 알카이드의 호의에 어리광을 조금 부려볼까.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로지타]
응, 약속이야.
 
알카이드는 미소를 지으며 캐리어를 들고 탈의실로 향하며 멈칫, 하고 뒤를 돌아 내게 말했다.
 
[알카이드]
맞다, 극장 안은 자유롭게 둘러봐도 돼. 저쪽 테이블엔 과자랑 주스도 있으니깐.
 
알카이드가 가리킨 테이블 위에는 스텝들을 위해 준비된 많은 과자와 음료가 있었다.
 
[로지타]
응, 고마워요.
 
알카이드가 옷을 갈아입는 동안, 나는 휴식 장소로 향했다. 알카이드가 신경을 써준 건지, 과자 중에는 내가 좋아하는 종류가 많이 들어있었다. 마침 허기가 진 참이라 곰돌이 모양 비스킷과 생수를 조금 먹기로 했다.
비스킷을 다 먹고 나니 시간이 한참 지나있었다. 알카이드의 의상은 갈아입는데 시간이 꽤나 걸리기는 하지만...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걸까.
 
그렇게 생각한 나는 탈의실로 향했다.
 
-
 
똑똑똑-
 
[로지타]
알카이드 선배, 괜찮아요?
 
알카이드의 대답 대신 들려온 건 옷감이 스치는 소리였다. 나는 괜히 부끄러워졌다. 갑자기 노크해서 이상하게 생각되는 건 아닐까... 잠시 뒤, 알카이드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알카이드]
로지타, 미안한데 잠깐 들어와 줄 수 있어? 이 의상, 나 혼자서는... 쉽게 입기가 힘들어서,
 
역시 갈아입는 게 어려운 걸까? 그렇지만 내가 안으로 들어가도 괜찮을지... 가슴이 두근두근거린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는 중이라는 것은... 스톱!! 이상한 걸 상상하면 안돼!
 
[로지타]
으, 응, 그럼, 들어갈게요.
 
문 손잡이를 돌려, 나는 탈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눈 앞에 펼쳐진건, 천사 의상을 입은 알카이드의 모습이었다. 알카이드는 살짝 허리를 숙이고 서 있었다. 은은한 빛이 그의 등으로 떨어져 걸쳐진 날개가 살살 흔들리는 것마냥 보였다. 어렸을 때 꿈꾸던 광경이 그대로 눈앞에 현신한 것 같았다.
어라, 날개가 한 쪽밖에 달려있지 않네... 알카이드는 멋쩍은 기색을 띄며 말했다.
 
[알카이드]
나 혼자서는 한쪽 날개밖에 달지를 못해서. 다른 한쪽 다는 걸 도와줄 수 있을까?
 
[로지타]
미안해요, 내 실수야... 디자인할 때 입는 법도 고려했어야 했는데...
 
[알카이드]
으응, 정말 잘 만들었다고 생각해. 이 의상, 정말 마음에 들어.
 
[로지타]
그랬다면 다행이에요.
 
미소를 짓는 알카이드를 앞에 두고, 점점 빨라지는 심장 고동을 어떻게든 억제한다.
 
[로지타]
다른 쪽 날개도 달아드릴게요.
 
나는 날개를 잡고, 그의 등에 붙이기 시작했다.
 
[로지타]
날개를 둘 다 달면 잘 안 떨어지니깐요.
 
알카이드에게 설명하며 나는 자신만만하게 날개를 달아준 뒤, 내 말을 증명하기 위해 날개를 살짝 잡아당겨 본다. 응, 고정은 잘 되어있군.
 
[로지타]
아...
 
확실히 고정은 되어있다. 하지만...
 
[로지타]
날개가 빠져버렸네...
 
잡아당기자 쉽게 빠져버린 흰 날개를 손에 들고, 나는 빨개진 얼굴로 알카이드를 바라보았다. 그는 별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미소를 지어보였다.
 
[알카이드]
괜찮아, 그 부분은 내가 나중에 붙여둘 테니, 그럼 극장으로 돌아가자.
 
알카이드는 빠진 날개를 가지런히 정리해주었다.
 
[로지타]
고마워요.
 
극장 안으로 돌아오자, 알카이드가 어떤 스위치를 작동시켰다. 그 순간--

 

 
극장 안 조명이 켜지며 빛과 그림자가 만나 알카이드의 주위에 빛의 고리가 떠오른다. 그리고 별빛이 그에게 쏟아진다. 허리를 조금 숙이고 내게 손을 뻗은 알카이드의 등에서는, 흰 날개가 돋아있다. 내 생각엔, 알카이드 이상으로 이 의상이 어울리는 사람은 이 세상엔 없을 것이다.
 
[알카이드]
로지타, 조금 따라와 줄래?
 
무대 위는 마치 거울처럼 매끄러워 천장의 별빛을 그대로 반사하고 있다. 그 위를 걷자, 마치 파문이 일 듯 별들이 번져간다. 어떤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해...
 
[알카이드]
시험하고 싶은 게 있어. 여기, 별의 극장에서 체험형 연극을 하려고 하거든. 여기에 온 관객은, 그저 극을 보러 온 게 아닌, 자유롭게 무대를 걸으며 연기자와 교류를 하는 거야. 자신이 연극의 일부가 되어,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거지.
 
[로지타]
재밌어 보이네요. 선배는 무슨 역할이에요?
 
[알카이드]
나는 별님이야.
 
[로지타]
별?
 
[알카이드]
별은 저 멀리서 이 세상을 망라하고 있지. 사람들이 별에 소원을 빌면, 별은 소원을 이뤄주는 거야. 그 와중, 별님에게도 소원이 태어나는 거야.
 
[로지타]
어떤 소원인데요?
 
나도 모르게 그에게 다가갔다.
 
[알카이드]
어떤 여자아이를 만나고 싶다는 소원이야. 소원이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별님은 먼 하늘 위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어.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그녀를 만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거지.
 
[로지타]
제법 로맨틱한 이야기네요.
 
[알카이드]
응, 로맨틱하지? 그렇지만, 극본가와 상의한 결과, 다른 버전의 대본으로 상연하기로 했어. 방금 말한 스토리는 조금 내 의견이 많이 들어간 스토리라서. 방금 이야기도 아마 한 번 정도는 공연할 거라 생각하지만...
 
알카이드의 말에 조금 아쉬워졌다. 하지만 동시에, 단 한 번 뿐인 특별한 연극이라는 말에 조금 설레기도 했다.
 
[로지타]
그 버전은 언제 공연하는데요?
 
그렇게 물으며 그의 눈을 바라보고 있자니, 벌써 답을 알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고요 속에서 별빛이 일렁이고, 반짝반짝 빛나는 그림자가 우리 둘 주위에 모여들며 작은 은하를 만들어낸다. 알카이드는 내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다른 질문을 내게 던졌다.
 
[알카이드]
트릭 나이트 당일엔, 별의 극장에 와주지 않을래? 그 밤에, 어떻게 해서든 만나고 싶은 여자아이가 있거든.
 
-
 
알카이드가 공연을 하는 별의 극장은 상당한 인기를 끈데다 한 공연당 입장할 수 있는 인원은 10명까지인지라 티켓은 불티나게 팔렸다. 공간이 부족해 줄을 설 수는 없었기에 티켓은 초대와 추첨 등으로 배포되었다. 나는 의상 디자이너로서 알카이드로부터 사전에 티켓을 받았기에, 티켓을 들고 당당히 극장으로 들어갔다.
 
이 공연만의 특징은, 관객참여형으로서 관객들이 연극을 볼 뿐만 아니라 자유롭게 무대 위를 돌아다니고, 배우와 대화를 나누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무대가 시작되자 광장 중앙을 제외한 모든 불빛이 꺼지고, 나는 알카이드를 찾으러 돌아다녔다. 알카이드는 빛나는 별을 손에 쥐고, 초승달에 걸쳐 앉아있었다. 연기 중이라 그런지, 평소와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평소 온화한 알카이드 선배가 찬 바람이 부는 초겨울 먼 하늘에서 빛나는 별처럼 보였다. 그의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으며 그저 별빛이 뿜어내는 희미한 빛이 그를 감싸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선배를, 나는 무대의 어둠 속에서 조용히 바라보았다.
이 아름다운 정적을 깨고 싶지 않았기에.
 
[알카이드]
그건 밤하늘로부터 멀리. 달이 지고 난 뒤, 아침 해가 떠오르기 전-- 흩날리는 하얀 날개에 둘러싸여 작은 소래로 노래한다 여명의 명성이여, 너는 어째서 가라앉는 것이냐--
 
마치 더러움이 없는 하얀 날개처럼 알카이드는 대사를 읊었다. 그의 목소리가 하늘에서부터 내 마음으로 내려와 고요한 안식을 선사하는 기분이다. 그의 연기에 감탄하고 있는 것도 잠시, 고개를 들자 초승달에서 내려온 그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의 눈동자에 비친 나의 모습. 그리고 무대 위 빛의 파장이 그의 걸음에 맞춰 퍼져나가고, 별을 걷듯 그는 내 눈앞에 내려앉는다. 그리고는 아련하고 환상적인 분위기 속, 그의 손에 이끌려 극장 안을 걷는다.
 
극장 안에선 많은 사람들이 배우, 관객을 불문하고 각자 자신만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알카이드는 이따금 얼굴을 내 귀에 가까이 대고 대사 한두 마디를 속삭이곤 했으며, 나는 그 외에도 자유롭게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주변을 관찰했다. 극 이야기에 관객을 끌어들인다기보다는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는 걸 감상하는 여행이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사람들은 각자 이별을 고하고, 이야기를 떠나기 시작했다. 각자의 이야기로 떠들썩했던 무대는 어느새 나와 그를 남겨둔 채, 달과 별이 기울기 시작한다. 저 멀리서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는데, 알카이드가 왼쪽 가슴에 손을 얹고 한쪽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알카이드]
로지타, 슬슬 헤어질 시간이네.
 
알카이드가 시선을 떨어뜨리자, 별빛 아래 그의 날개가 미세하게 흔들린다. 그 광경을 바라보다, 문득 슬픔이 솟구쳐 오르는 걸 깨닫는다.
아아, 나는 이 연극에 깊이 빠져있었구나.
알카이드가 이대로 별들과 함께 떨어져 눈앞에서 사라져 버릴까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는 나를 보며 생각했다. 나는 극 안에 있다는 것도 잊고 본심에서 우러난 말을 내뱉는다.
 
[로지타]
>또 함께할 수 있을까요?
>어디에도 가지 말아줘요
>이대로 함께 가요.
 
[알카이드]
응.
 
알카이드는 잔잔한 눈빛으로 흔쾌히 승낙했다.
 
[알카이드]
만약 싫지 않다면, 손을 빌릴 수 있을까?
 
[로지타]
응.
 
이야기의 분위기가 조금 바뀐 기분이었다.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알카이드에 손을 내밀었다. 알카이드는 가볍게 내 손을 쥐고, 살포시 얼굴을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들려온 희미한 입맞춤 소리-

 

겹친 손등 너머로 알카이드는 내 손에 키스했다. 알카이드는 결코 예의를 잃지 않았다. 비록 연기일지라도. 하지만 나는... 알카이드의 입술이 가볍게 닿았을 뿐인데도, 몸에 열기가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알카이드의 장면이 끝나자, 배경의 별빛이 흐르기 시작한다.
 
배우들과 관객이 우리에게 박수를 보내는 소리를 들으며, 공연이 끝났음을 깨달았다.
 
[로지타]
이걸로 끝인가요?
 
가볍게 목례를 하며 작은 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알카이드]
그래, 로지타. 둘이서 아름다운 엔딩을 만들 수 있었네.
 
[로지타]
 원래는 어떤 결말을 맞이하려고 했었어요?
 
[알카이드]
내 대본에는 이렇게 적혀있었어-

‘소녀는 별님이 사라지는걸 원치 않았기에, 별님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시는 하늘로 돌아가지 않고 별님은 언제까지나, 소녀의 곁에 있었다고 합니다.’

 
라고 말이야.
 
[로지타]
해피엔딩을 맞은 인어공주 같네요.
 
알카이드 선배는 나의 비유가 웃겼는지 쿡쿡 웃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알카이드]
응, 그렇지.
 
그 순간, 누군가가 알카이드를 불렀다. 잠시 뒤를 돌아본 그는 가볍게 격식을 차리며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알카이드]
아, 미안해. 잠시 다녀올게.
 
알카이드는 미안하다는 얼굴을 짓고는, 다른 배우들과 함께 커튼콜을 마무리 지었다. 나는 조용히 구석으로 내려가 다른 관객과 함께 박수를 보냈다. 무대는 대성공이었고 나 역시고 다른 손님들처럼 아주 아름다운 시간을 보냈다. 커튼콜이 끝나자,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다음 무대 준비를 시작했다. 곧 다음 관객이 올 테니 선배의 휴식 시간을 방해해서는 안 되겠지.
나는 조용히 극장을 벗어났다.
 
[로지타]
다 끝나면 만나러 오자!
 
행사에는 이 밖에도 다양한 행사가 많이 준비되어 있다. 일단 이것저것 둘러본 뒤, 별의 극장의 막이 완전히 내리면 다시 돌아와야겠다.
 
-
 
시간이 지나고 별의 극장에 다시 돌아와보니, 회장은 막이 내려져있고, 관객도 배우도 없이 조용했다. 그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알카이드 선배뿐이었다.
 
[알카이드]
로지타.
 
[로지타]
미안해요, 조금 늦어져 버려서.
 
[알카이드]
아냐, 이쪽도 방금 해산한 직후야.
 
[로지타]
실은, 커튼콜이 끝나고 꽃다발을 주고 싶었어요. 근데 만들려고 보니 생각보다 어려워서, 조금 늦어졌어요...
 
미리 연습을 해뒀어야 하는데... 조금 면목이 없어서 어깨가 움츠러든다. 방금 스쳐 간 배우들은 모두 꽃다발을 안고 있었다. 내가 늦는 바람에 알카이드 선배만 못 받았다면... 이 생각에 도달하자, 나는 알카이드에게 물었다.
 
[로지타]
저기 선배, 혹시 누군가에게 꽃다발을 받았나요?
 
[알카이드]
응, 지금은 대기실에 모아뒀지만.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알카이드의 인기를 생각하면 아무한테도 꽃다발을 받지 못했다니 말도 안 되지. 방금 발언으로 생각해보면 그가 받은 꽃다발은 하나가 아닌 것 같다.
 
[알카이드]
하지만, 나는 그 누구보다도 네가 준 꽃다발을 갖고 싶어.
 
[로지타]
미안해요, 나...
 
방금 알카이드의 말은 평소의 그와는 조금 달랐다. 그의 말투보다도 이상한 건... 서서히 빨라지는 나의 심장 고동.
 
[알카이드]
네가 준 꽃다발은 그 어떤 것보다도 값진 선물이야. 네 선물이라면 언제 받아도 기뻐. 오히려 지금 받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 너와 나, 둘 뿐이니깐.
 
조용한 극장 안에서 나를 바라보는 알카이드의 눈빛은 어딘가 열기가 담긴 듯한, 진지한 눈빛이었다. 나는 그 눈동자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얼어붙듯이, 목구멍에서 막힌 단어들이 입 밖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알카이드]
혹시, 놀래켜버린 걸까나? 미안, 아직 극의 여운이 남은 건지 조금 들떠버렸네. 하지만... 전부 진심이야.
 
뺨이 달아오르는 게 느껴진다. 그에게 빨개진 뺨을 보여주기 부끄러워 다급하게 화제를 돌려본다.
 
[로지타]
그, 그럼 제가 어떤 꽃다발을 만들었는지 보고 싶으신 건가요?
 
[알카이드]
응, 기대되는걸?
 
알카이드의 부드러운 눈빛이 내게 향한다. 나는 등 뒤로 숨기고 있던 꽃다발을 그에게 내민다. 꽃다발이라고는 해도 전부 꽃은 아니었다. 별 모양 캔디를 한알 한알 모아 꽃처럼 연출한 한 뒤, 라벤더와 흰 안개꽃을 섞어 만든 별사탕 꽃다발이다. 은은한 꽃향기가 물씬 풍기고, 캔디는 극장의 별빛을 반사하며 마치 은하의 떠다니는 별빛같이 반짝인다. 생각보다... 극장에 잘 어울리는 느낌이라,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건네줬다면 아쉬울 정도였다.
 
[알카이드]
고마워. 너무 예쁘고... 맛있어 보여.
 
꽃다발을 받아든 알카이드에게도 별빛이 쏟아져 내린다. 빛 아래 밝게 웃는 알카이드는, 환상적인 동화 속 등장인물 같았다. 그러나 나는, 알카이드가 동화 속 등장인물이 아닌 현실 속 사람임을 알고 있다. 그는 언제나 나를 신경 써주고 있다. 지금도 배고플까 봐 걱정하며 내게 별사탕을 건네주고 있으니.
 
[알카이드]
네게 받은 걸 다시 주다니, 조금 예의가 아니지 않을까 싶지만, 그래도 너랑 함께 먹고 싶어.
 
포장지를 열기 전부터 알고 있는 맛이지만,
그와 함께 먹는 사탕은 분명, 어지러울 정도로 달콤하겠지.

  1. 아스트셀레네 극장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