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패전의 기쁨
아인과 '나'의 꼭두각시는 함께 로봇 어쌔신을 쓰러트렸다.
['나']
신호를 추적할까요?
[아인]
됐어, 가자.
[서훈]
으악! 회장님, 이렇게 가시는 겁니까!?
서훈이 머리를 감싼 채 울먹이며 외치는 목소리에, 굳이 보지 않아도 울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자 아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인]
당신과 쓸데없는 대화만 나누지 않았어도 벌써 목적지에 도착했을 겁니다.
[서훈]
하, 하지만... 회장님, 그러면 저는...
[아인]
당신이 그러지 않았습니까? 장관도 나도 자비로운 사람들이라고.
비행선에 몸을 실은 아인은 서훈을 뒤로한 채 멀리 사라져버렸다.
[아인]
내가 좋은 사람이라면, 당신이 알아서 자숙하는 걸로 충분하겠지.
-
서훈이 사라지자, 드디어 비행선에 고요함이 찾아왔다. 아인은 인간이 패배하여 용의 도시로 밀려났다고 했다. 그것이 바로 이 도시의 이름일 것이다. 전쟁 상대는 경계 밖 손님일 테고. 중간에 나온 약속이라는 단어로 미루어 볼 때, 전쟁 끝에 인간과 경계 밖 손님들이 어떤 조건을 걸고 담화를 나눈 것 같다. 그리고 그 조건은 바로... 용성 그룹이 경계 밖 손님에게 조공을 바치는 거고. 그 조공품이 바로 감정의 힘이겠지.
조금 전 아인을 급습한 로봇은 음룡회라는 조직에서 보낸 것이었다. 서훈은 그 조직이 아인과 경계 밖 손님을 배신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인은 자신을 배신한 음룡회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항해 통제 시스템]
항해 시스템이 가동됩니다. 목적지를 입력해 주세요.
항해 시스템의 소리가 나를 생각의 바다 위로 건져 올렸다. 아인은 창가에 서서 무심한 눈으로 창밖의 세상을 보고 있었다.
[아인]
3구역, 19호. 자동 운행.
[항해 통제 시스템]
접수 완료. 즐거운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비행선이 고층 빌딩 사이를 지나자, 조종 장치의 지도도 천천히 움직였다. 지도를 통해 알아낸 사실은... 용의 도시가 바로 작은 지하 도시라는 점이다. 가장 높은 곳과 가장 낮은 곳의 높이가 5km가 채 되지 않았고, 현재의 도시 하나 정도의 크기에 불과했다. 생명은 이 작은 공간 안에 짓눌려 있었다.
사람들이 이 도시에서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건, 화려하지만 미약한 벽면의 네온사인 불빛과 광고, 혼잡한 길 안내 표지판이다. 하지만 그 화려한 색깔 뒤로 새까만 창틀을 뒤덮은 빨래 건조봉과 제멋대로 연결된 전선, 낡은 신호선, 조금이나마 마음을 외로해 주는 종 등. 여러 요소가 뒤엉키며 만들어낸 풍경이 필쳐져 있었다. 이 도시는 한정된 공간 속에서 옅은 호흡을 이어가며 살아가고 있었다. 이게 정말 인간이 패배한 후의 풍경이라고? 지하로 숨어들어와 햇빛조차 볼 수 없는 이 광경이?
똑같은 풍경에 싫증이 났는지, 아인이 몸을 돌렸다. 창틀 사이로 차가운 잿빛 안개가 스며들어왔지만, 붉은빛을 내는 그의 몸은 덮을 수 없었다.
[아인]
모든 이를 쫓아낼 필요는 없어.
['나']
명령의 우선순위를 바꾸면 되겠지만... 그래도 인간의 '성장'이란 것은 제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주인님께서 저를 만드실 때 자신의 인격을 일부 넣으셨어요. 지금 이건 아마도 그 것 때문이겠죠.
저 꼭두각시를 미래의 내가 만들었다는 건가?
[아인]
하지만, 거짓말도 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아까는 조금 놀랐어.
['나']
제 가상 인격에 따르면, 회장님은 거짓과 아첨을 싫어하더군요. 서훈을 처벌하기 위해 거짓 조항을 만들어봤습니다. 제가 거짓말하는 걸 원치 않으신다면,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아인]
...그럴 필요는 없어. 그런 뜻이 아니야.
['나']
그럼 제 프로세스를 어떻게 바꾸면 될까요?
[아인]
...바꿀 필요도 없어. 지금 그걸로 됐다.
아인의 시선이 다시 창밖으로 향했다.
[건물 벽면 광고]
즐거운 인생, 행복한 삶. 용성 그룹에 투자하라.
거대한 스크린에 용성 그룹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인이 재단의 회장이란 것을 떠올린 나는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건물 벽면 광고]
시간을 투자하신 만큼 영원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물자 부족도, 삶의 의의도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여러분의 투자로, 용의 도시가 더욱 환하게 빛납니다. 명석한 두뇌로 난제를 풀고, 계산능력을 중앙 네트위크에 공헌해주시면 저희가 물자 생산을 책임지겠습니다. 용성 그룹은 여러분의 투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광고를 보다 보니, 아인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제서야 광고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이곳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방에 들어가 얼굴을 가릴 정도로 큰 고글을 쓰고 있었다. 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자는 것처럼 보였다. 간혹 움직이거나 말을 하는 이도 있었지만, 모두 잠꼬대 같았다.
[소녀]
미궁... 너무 어려워...
미궁? ...광고 속에 등장한 '명석한 두뇌'와 '난제'라는 말이 떠올랐다. 설마 고글을 쓰고 나서 해야 하는 일이 미궁을 탈출하는 거였나?
[뚱뚱한 중년 남성]
아... 어서 오세요! 공간이 너무 작아서 마땅히 모실 곳이 없군요. 회장님, 나가서 이야기를 나누시는 게 어떻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