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스토리-2021/사계 사냥터

봄의 장 3화. 늦봄의 별하늘

ろ_ 2024. 2. 19. 19:41

 그렇게 사냥터를 떠나 알카이드와 함께 황성의 거리로 돌아온 건, 내 예상 밖의 일이었다. 

 

[로지타]

알카이드, 우리 아직 아무것도 못 했는데, 돌아가기엔 아직 이른 거 아닌가요? 

 

 알카이드는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그저 내게 주변을 둘러보라 말했다. 오후의 거리엔 장사 준비로 분주한 노점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그 중엔 고기를 팔고 있는 사냥꾼과 백정들도 있었다. 알카이드가 생각해낸 방법이 뭔지 알 것 같았다. 나를 향해 눈을 깜빡이는 그를 보니, 내 예상이 맞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알카이드]

저쪽에서 필요한 것들을 팔고 있군요. 

 

 노점에는 안 파는 것이 없어 보였기에, 쪽지에 적현 식재료를 모두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발상의 전환인 셈이지. 로샤도 식재료를 반드시 직접 사냥해서 구해오라고 명령한 건 아니니까. 나 역시 숲 속을 헤매는 것보다는 알카이드와 함께 거리를 돌아다니는 편이 더 좋았다. 내 마음은 이미 알카이드에게 기울었다. 아... 심판 자격 부족이라니까. 

 

[로지타]

이래도 되나요? 그리고... 식재료를 살 돈은요? 

 

물론 나 역시 숲속을 헤매며 동물들을 쫓다 땀범벅 이 될 바에야, 알카이드와 함께 거 리를 돌아다니는 편이 더 좋았다. 

 불안해하는 나를 보고 알카이드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려는 듯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의 손은 허공에 멈추었고, 이내 고개를 숙이며 웃음을 짓더니 손을 거두었다. 

 

[알카이드]

여기서 잠시 기다려주세요. 

 

 그는 거리 한복판으로 걸어갔다. 워낙 눈에 띄는 외모였기에, 거리의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갑자기 바람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알카이드의 손이 지나간 곳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그 나비는 유유히 앞으로 날아가, 허공에 금빛 궤적을 남기며 알카이드의 어깨에 앉았다. 거리 건너편에서 한 소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알카이드는 미소를 지으며 아이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알카이드]

만져볼래?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내 불안한 듯 어깨를 움츠렸다. 

 

[소녀]

…그래도 돼요? 

 

 알카이드가 허락하자, 소녀는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그러나 소녀의 손이 금빛 날개에 닿으려던 그 순간, 나비는 바람을 타고 날아올랐다. 소녀는 낙담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금빛 요정에게 농락이라도 당한 듯한 모습이었다. 

 

[알카이드]

손을 펼쳐보렴. 

 

 소녀가 알카이드의 말대로 여린 두 손을 펼치자, 금빛 나비가 다시 날아왔다. 그리고 그녀의 눈앞에서 갑자기 퐁 하고 사라져버렸다. 나비는 사라지고, 분홍색 꽃잎이 아이의 손 위에서 흩날리며 떨어져 내렸다. 

 

[알카이드]

봄이 왔단다. 

 

 주변을 둘러싼 구경꾼들 사이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들은 은화와 동전을 던졌고 , 나는 조심스레 그 동전들을 주위 주머니에 넣었다. 나는 꽃과 리본을 만들어내 사람들을 웃음 짓게 하는 알카이드의 아름다운 마법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

 

 노을이 지고 사람들이 흩어질 때쯤, 내 주머니는 이미 두둑하게 채워져 있었다. 우리는 쪽지에 적힌 재료들을 확인해가며 음식을 잔뜩 사들였다. 양손 가득 식재료를 챙겨 황궁으로 돌아가려는데, 무언가 말하려다 마는 듯한 모습의 알카이드가 보였다. 

 

[로지타]

...왜요? 빠트린 거라도 있어요? 

 

[알카이드]

이건 정당하게 얻은 것들입니다. 편법은 사용하지 않았어요. 

 

 잠시 멍하니 그를 바라보던 나는 그의 진지한 얼굴에 결국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로지타]

그럼요.

 

-

 

저녁 식사를 한 뒤, 나는 황궁 테라스에서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황성의 등불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기온은 낮보다 조금 떨어졌지만, 바람은 오히려 더 부드러워졌고, 꽃향기는 한층 더 짙어졌다. 늦봄이 도래한 것이다. 

 

[알카이드]

봄도 이제 끝나가는군요. 

 

[로지타]

그러게요, 시간 참 빠르네요. 

 

잠시 머뭇거리던 알카이드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알카이드]

보여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시간을 내주시겠습니까? 

 

나는 뭔가에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카이드가 나를 이끌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말 한 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밤이 완연히 내려앉은 황궁의 담을 넘었다. 나와 아주 가까운 곳에서 뛰고 있는 그의 심장은 단단하고도 힘찬 고동 소리를 내며 나를 안정시켰다. 

 

-

 

 우리는 사냥터로 돌아왔다. 황성의 등불이 이미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진 탓에, 이 곳을 비추는 건 하늘에 뜬 달빛뿐이었다. 

 

[로지타]

여긴 무슨 일이에요? 

 

 알카이드는 뒤로 몇 걸음 물러서며 나와 거 리를 두었다. 달빛 아래로 보이는 그의 웃음은 영원히 잊지 못할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알카이드]

당신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그 순간, 마치 칠흑 같던 하늘이 통째로 쏟아진 것처럼 별빛이 흩어지고 달빛은 일렁이며 우리를 덮쳐왔다. 그러나 알카이드가 손을 들자, 별빛이 저절로 모여들더니 대열을 맞춰 뭔가를 그려냈다. 이 모든 것을 느끼기라도 한 듯, 꽃송이들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히아신스가 흔들리고, 수레국화는 별빛을 받아 활짝 피어났다. 봄날의 모든 생명체가 비밀을 속삭이고, 바람은 그 비밀을 저 멀리로보내주었다. 새의 지저귐이 사방에서 들려오고, 짐승들은 떼를 지어 달려 나갔다. 소란스럽지만 현란하고 화려한 모습을 내 두 눈에 전부 담았다.

 별들이 제자리로 돌아갈 때까지, 그는 마치 하나의 기적처럼 그곳에 서 있었다. 

 

[알카이드]

선물을 하나 더 드릴게요. 

 

 나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동물 그림자, 꽃과 리본, 하늘을 가득 채운 별빛까지. 이미 많은 것을 받았는데... 이 밤이 지나가려는 지금, 그는 또 내게 무엇을 안겨다 주려는 걸까? 그의 눈동자는 밝은 대낮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는 내 손을 가법게 쥐더니, 그의 손으로 내 손바닥을 덮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오늘 난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받았다. 동물 그림자, 꽃과 리본, 하늘을 가득 채운 별빛까지... 

 

[로지타]

알카이드, 이미 충분해요. 더 이상 다른 걸 줄 필요는 없어요.

 

그의 눈동자는 밝은 대낮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는 내 손을 가법게 쥐더니, 그의 손으로 내 손바닥을 덮었다. 그가 내 손을 놓아주자, 차가운 무언가가 내 손에서 느껴졌다. 손바닥을 확인해보니, 금빛 별이 놓여 있었다.

 

[알카이드]

쉿... 깨우지 말아요. 영원히 꺼지지 않을 이 별빛은 당신을 향한 나의 마음입니다. 

 

 나는 늦봄의 밤이 내게 남긴 마지막 기억인 그 별을 침대 머리맡에 두었다. 황궁의 등불이 하나둘 꺼진 뒤에도 그 별은 느릿느릿 나의 꿈을 비춰주었다.